- 05 Jan, 2026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나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나 조직도를 볼 때마다 조직도 파일을 열었다.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맨 위에 나. CEO 박창업. 근데 내 밑에 괄호가 있다. (기술 고문 겸임) (영업 총괄 겸임) (재무 담당 겸임) 투자자한테 보여줄 때는 이 괄호를 지운다. "8명의 탄탄한 조직"이라고 말한다. 혼자 있을 땐 괄호를 다시 넣는다. 현실이니까.월요일 아침 9시 팀원들이 출근한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나는 이미 두 시간 전부터 있었다. 주말 동안 밀린 개발팀 이슈 확인했다. 깃헙 PR 10개, 코멘트 달았다. 9시 30분, 위클리 미팅. 개발팀장 민수가 보고한다. "API 연동 일정이 3일 밀렸습니다." 고개 끄덕였다. "괜찮아, 어떤 부분이 막혔어?" 기술적인 얘기가 10분. 나도 전 개발자니까 이해한다. 아니, 이해해야 한다. "그럼 내가 그 부분 코드 한번 봐볼게. 오늘 중으로 방향 잡자." 민수 표정이 밝아진다. "감사합니다!" CEO가 기술 고문도 하는 회사. 8명 스타트업의 현실이다.화요일 오후 2시 영업팀 지호가 노크한다. "대표님, 잠깐 시간 되세요?" 회의실로 갔다. "○○기업 미팅 어땠어?" "관심은 있는데, 기술 검증을 원합니다." 알았다는 표정 지었다. "언제?" "이번 주 금요일요." 캘린더 확인했다. VC 미팅 2개, 개발 스프린트 리뷰, 급여 이체. "내가 갈게." 지호가 미안한 표정이다. "제가 같이..." "너는 다음 주 ○○ 미팅 준비해. 그게 더 중요해." 영업 2명인데 둘 다 주니어다. 시니어 뽑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큰 딜은 내가 직접 나간다. CEO가 영업 총괄도 하는 회사. 런웨이 8개월의 현실이다. 수요일 밤 10시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다. 노트북 두 개 켰다. 왼쪽: 엑셀. 현금흐름표. 오른쪽: 슬랙. 개발팀 채널. 현금흐름표 먼저 봤다. 이번 달 매출 1200만원. 지출 5800만원. 급여 3600만원. 사무실 180만원. AWS 220만원. 기타 1800만원. 마이너스 4600만원. 통장 잔고 3억 6800만원. 8개월. 정확히는 7.9개월. 계산기 두드렸다. 시나리오 3개. 보수: 매출 월 5% 성장 → 6개월 후 투자 필요 중립: 매출 월 15% 성장 → 5개월 후 투자 필요 낙관: 매출 월 30% 성장 → 그래도 4개월 후 투자 필요 어떻게 해도 투자 받아야 한다.목요일 오전 11시 회계사한테 전화 왔다. "대표님, 부가세 신고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메일 열었다. 첨부파일 5개. 30분 걸렸다. 매입 매출 확인하고. 계정 분류 체크하고. 승인 버튼 눌렀다. CFO 없다. 경리 직원도 없다. 세무사가 정리는 해주지만.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CEO가 재무 담당도 하는 회사. 시드 스테이지의 현실이다. 점심시간. 팀원들이랑 같이 나갔다. 성수동 파스타 집. 다들 편하게 얘기한다. "주말에 영화 봤는데요." "요즘 이 게임 재밌어요." 나도 웃으면서 듣는다. 근데 머릿속은 다르다. '금요일 미팅 자료 준비했나?' 'API 이슈 해결 방법 찾았나?' '다음 주 VC 미팅 시나리오는?' "대표님, 괜찮으세요?" 디자이너 수진이 물었다. "응? 아, 괜찮아. 파스타 맛있다." 다시 웃었다. 팀원들 앞에서는 불안한 티 내면 안 된다. 리더의 불안은 전염된다. 그래서 밥 먹을 때만큼은. 진짜로 편한 척한다. 금요일 오후 4시 ○○기업 미팅. 강남역 근처 그들의 사무실. 상무님, 팀장님, 담당자 3명. 우리 쪽은 나 혼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30분 발표했다. 제품 데모 보여주고. 기술 스택 설명하고. ROI 계산해서 보여주고. 질문 20개 받았다. 기술 질문 10개. 영업 질문 10개. 다 답했다. CEO니까. 기술 고문이니까. 영업 총괄이니까.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익숙한 멘트다. 악수하고 나왔다. 지하철 탔다. 성수역 도착. 사무실 가는 길. 편의점 들렀다. 커피 하나 샀다. 오늘 여섯 번째다. 금요일 밤 11시 급여 이체했다. 8명. 총 3600만원. 한 명씩 확인하면서 이체했다. 민수, 지호, 수진, 영희, 태양, 준석, 미래, 현우. 통장 잔고 3억 3200만원. 다음 달 급여일까지 30일. 그 사이에 매출 1200만원 더 들어온다. 지출은 2200만원 나간다. 다음 달 이맘때쯤엔 3억 2200만원. 계산이 자동으로 된다. 매일 보는 숫자니까. 슬랙 열었다. 개발팀 채널. "다들 수고했어요. 주말 푹 쉬세요!" 단톡방에도 썼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주에 봬요!" 팀원들 답장 왔다. "대표님도 쉬세요!" "주말 잘 보내세요~" 노트북 덮었다. 가방 챙겼다. 불 끄고 나왔다. 택시 탔다. 집까지 15분. 창 밖을 봤다. 금요일 밤 성수동. 불 켜진 사무실들. 저 안에도 나 같은 사람 있겠지. 토요일 오전 10시 딸이 깼다. "아빠!" 안아줬다. "우리 공주 잘 잤어?" 아내가 부엌에서 나왔다. "어제도 늦었어?" "응. 급여 이체하고." 더 이상 안 물었다. 아내도 안다. 매달 똑같으니까. "오늘은 같이 있어줄 수 있어?" "오전까진 괜찮아. 오후에 IR 자료 좀..." 아내 표정이 굳었다. "미안. 다음 주엔 꼭..." "됐어. 알아서 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딸이 내 얼굴 봤다. "아빠, 놀아줘!" "그래, 놀자. 뭐 하고 싶어?" "공원!" "좋아, 공원 가자." 노트북은 가방에 넣었다. 공원 벤치에서 열 수도 있으니까. 일요일 새벽 2시 잠이 안 왔다. 노트북 열었다. VC 미팅 자료. 50번째 수정. 슬라이드 15장.문제 정의 솔루션 시장 규모 비즈니스 모델 트랙션 팀 소개 재무 계획 투자 제안팀 소개 페이지에서 멈췄다.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CEO. "전 네이버 출신 대표, 5년간 PM 경험" "시니어 개발자 4명으로 구성된 탄탄한 기술팀" "B2B 영업 경험자로 구성된 영업조직" 거짓말은 아니다. 과장도 아니다. 그냥 괄호를 뺀 것뿐이다. (CEO 겸 기술 고문) (CEO 겸 영업 총괄) (CEO 겸 재무 담당) 이 괄호들. VC들이 알까? 8명 스타트업의 CEO가. 얼마나 많은 걸 혼자 하는지. 아니, 알 것이다. 그들도 다 겪었을 테니까. 그래도 IR 자료엔 안 쓴다. "우리는 약합니다" 같은 소리니까. "우리는 효율적입니다"라고 쓴다.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들린다. 월요일 아침 7시 출근했다. 아직 아무도 없다. 커피 내렸다. 첫 잔. 깃헙 열었다. 주말 동안 올라온 이슈 3개. 하나씩 봤다. 코멘트 달았다. 해결 방향 제시했다. 슬랙 열었다. 영업팀 채널. 지난주 미팅 결과 정리했다. 다음 주 목표 썼다. 액션 아이템 배분했다. 엑셀 열었다. 현금흐름표. 이번 주 예상 입금 800만원. 예상 출금 1200만원. 마이너스 400만원. 잔고 3억 2200만원에서. 3억 1800만원 될 예정. 7.8개월. 시계 봤다. 7시 50분. 팀원들 오기 10분 전. 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36세. 눈 밑에 다크서클. 흰머리 몇 개 보인다. 웃어봤다. 연습. "좋은 아침!" 자연스럽다. 다시 자리로 왔다. 9시까지 10분 남았다. 그 10분 동안. 재무 계획 시나리오 하나 더 만들었다. 비관: 매출 정체, 직원 1명 감축 고려 → 9개월 버팀 만들고 나서 지웠다. 팀원들이 볼까봐. 8시 58분. 민수가 들어왔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웃으면서 말했다. 자연스럽게.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CEO 겸 기술 고문 겸 영업 총괄 겸 재무 담당인 나. 괄호는 IR 자료에 안 쓴다. 현실엔 있지만.
- 28 Dec, 2025
프리A 투자 준비, 두 번째 등반을 시작하며
프리A 투자 준비, 두 번째 등반을 시작하며 시드는 베이스캠프였다 시드 투자 받은 게 1년 6개월 전이다. 그때는 이게 정상인 줄 알았다. 3억 받고 '드디어 시작이다' 했다. 팀원들이랑 고깃집 가서 '우리가 해냈다' 건배했다. 아내한테 전화해서 "여보, 투자 받았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그건 출발선이었다. 아니, 등산로 입구 매점이었다.시드 투자자들은 착했다. 트랙션 없어도 팀만 괜찮으면 투자했다. "네이버 출신이시네요, 좋습니다" 이 정도로 통했다. IR 자료 20페이지면 충분했다. 프리A는 다르다. 지난주 VC 미팅에서 들었다. "MRR이 1200이면... 좀 더 성장하고 다시 연락 주세요." 웃으면서 말하는데 칼이었다. 다른 투자사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유닛 이코노믹스는 어떻게 되죠?" 준비 안 한 질문이었다. 버벅였다. 미팅 끝나고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주먹 쥐었다. 시드는 가능성에 투자한다. 프리A는 증명에 투자한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더 가파르다. 숫자가 전부다 요즘 나는 숫자에 파묻혀 산다. MRR, ARR, CAC, LTV, 처음 듣는 건 하나도 없다. 근데 우리 회사 숫자로 채우면 초라하다.월 매출 1200만원 (목표는 3000이었다) 고객사 23곳 (기업 고객 타깃인데 이건 좀...) 이탈률 12% (허용 범위긴 한데 더 낮춰야 한다) CAC 회수 기간 8개월 (투자자들은 6개월 이하를 원한다)새벽 3시에 엑셀 시트를 만진다. '만약 다음 달 MRR이 15% 성장하면... 6개월 후엔...' 시나리오를 돌린다. 보수적 시나리오, 중립 시나리오, 낙관적 시나리오. 보수적으로 봐도 런웨이는 8개월이다. 프리A 받으려면 최소 4개월은 걸린다. 여유는 4개월. 4개월 안에 MRR을 2배로 만들어야 한다. 가능한가? 모르겠다. 해야 한다. 시드 때는 "우리 이런 거 만들고 있어요" 하면 됐다. 지금은 "지난 분기 대비 성장률 47%입니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그래프의 기울기를 본다. 각도가 가파를수록 좋다. 우리 그래프는 완만하다. 성장은 하는데 느리다. "대표님, 이 정도 성장률이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팀원이 물었다. "괜찮긴 한데... 투자받기엔 부족해." 솔직했다. 팀원 표정이 어두워졌다. IR 자료는 50번을 고쳤다 IR 덱을 다시 만들고 있다. 시드 때 썼던 건 버렸다. 그때는 '우리의 비전'이 앞에 있었다. 지금은 '트랙션'이 첫 페이지다. 투자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명확하다.얼마나 빨리 크는가 돈을 벌 수 있는가 시장은 큰가 팀은 해낼 수 있는가순서도 이거다. 팀이 제일 뒤다. 시드 때는 반대였다. 팀이 먼저였다.IR 자료 11페이지. "지난 6개월 MRR 추이" 그래프를 그렸다. 우상향이긴 한데 각도가 아쉽다. 색을 바꿔봤다.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초록색이 제일 긍정적으로 보인다. 아니다. 속임수다. 색 바꾼다고 성장률이 바뀌나. 지웠다. 다시 파란색으로. IR 자료 18페이지. "고객사 인터뷰" "귀사의 솔루션 덕분에 업무 효율이 30% 향상됐습니다." 실제 고객이 한 말이다. 녹취록을 6번 들었다. 확실하다. 이런 게 필요하다. 정성적 피드백. 숫자만으론 부족하다. IR 자료 25페이지. "향후 12개월 로드맵" 여기가 제일 어렵다. '신규 기능 3개 출시, 고객사 80곳 확보, MRR 5000만원 달성' 이렇게 썼다가 지웠다. 너무 낙관적이다. '신규 기능 2개 출시, 고객사 50곳 확보, MRR 3500만원 달성' 다시 썼다. 그래도 도전적이다. 투자자들은 안다. 스타트업 로드맵은 대부분 안 맞는다는 걸. 근데 없으면 안 된다. 계획 없이 가는 배는 투자 안 한다. 밤 11시. 저장하고 껐다. 내일 다시 본다. 분명히 또 고칠 게 보인다. 미팅은 20개를 잡았다 프리A 준비하면서 VC 리스트를 만들었다. 국내 VC 50개. 이 중에 B2B SaaS에 투자하는 곳은 20개 정도. 여기서 프리A 단계 투자하는 곳은 15개. 15개 전부 컨택했다. 답장 온 곳은 12개. 미팅 잡힌 곳은 8개. 실제로 만난 곳은 지금까지 5개. 결과는 이렇다.1곳: "관심 있습니다. 다음 미팅 잡죠." 2곳: "트랙션 좀 더 보고 연락 주세요." 2곳: "저희 포트폴리오랑 안 맞을 것 같네요."1곳이라도 관심 보인 게 다행이다. 근데 그 1곳도 확정은 아니다. "관심 있다"는 "투자한다"가 아니다. 이건 시드 때 배웠다. "대표님, VC들이 보통 몇 번 미팅해요?" 팀원이 물었다. "3~5번? 길면 더." "그럼 이제 시작이네요." 맞다. 시작이다. 투자자 미팅은 소개팅이 아니다. 결혼 상대 고르는 거다. 서로 신중하다. 미팅 때마다 느낀다. 내가 설득하는 건지, 내가 검증받는 건지. 아마 둘 다다. "그래서 대표님은 왜 이걸 하시는 건가요?" 갑자기 본질적인 질문이 날아온다. IR 자료엔 없는 질문. "...고객사들이 수작업으로 하루 3시간 쓰는 일을 10분으로 줄여줄 수 있어서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투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했다. 이런 순간이 중요하다. 숫자만으론 안 된다. 이 사람이 왜 이걸 하는지, 끝까지 갈 사람인지. 그게 보여야 한다. 팀원들 앞에선 웃는다 월요일 아침 스탠드업 미팅. "이번 주 목표는 신규 고객 5곳 컨택, 기능 개발 QA 완료, 그리고..." 말을 이었다. "투자 관련해서도 좋은 소식 있을 거예요." 팀원들이 웃었다. "대표님, 투자 잘 되고 있어요?" "응, 진행 중이지. 괜찮아." 거짓말은 아니다. 진행은 하고 있다. 잘 되고 있냐고 물으면 모르겠지만. 팀원들 앞에선 불안한 티를 내면 안 된다. 특히 투자 관련해선. 이건 대표의 몫이다. 직원들은 월급을 믿고 일한다. 그 믿음을 흔들면 안 된다. 개발팀장이 물었다. "대표님, 런웨이는 충분하죠?" "충분해. 걱정 마." 8개월이 충분한가? 아니다. 근데 말했다. 충분하다고. 미팅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슬랙에 투자사에서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희 내부 검토 결과 현재 단계에서는 투자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정중한 거절이다. 읽고 지웠다. 다음 투자사 메일을 확인했다. 답장이 없다. 3일째다. 괜찮다. 15개 중 5개 만났다. 10개 남았다. 통계적으로 보면 프리A 투자 받으려면 평균 30개 정도 VC를 만난다고 한다. 이제 1/6 온 거다. 숫자로 보면 담담해진다. 감정을 빼고 확률로 본다. 아내는 모른다 저녁 8시. 집에 전화했다. "여보, 오늘도 늦어. 미안해." "또? 밥은 먹었어?" "응, 먹었어." 거짓말이다. 안 먹었다. "딸이 아빠 보고 싶대. 주말엔 시간 돼?" "...주말에 투자사 미팅 하나 있어. 토요일 오전만. 오후엔 같이 놀아줄게." 한숨 소리가 들렸다. 뭐라 하진 않았다. "알았어. 조심히 들어와." 끊었다. 아내한테 말 안 한 게 있다. 프리A 못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런웨이 8개월. 그 안에 투자 못 받으면 두 가지 선택이다. 팀 줄이거나, 문 닫거나. 말하면 걱정한다. 잠 못 잔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 받는데 집에선 괜찮아야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다. 딸 얼굴이 떠올랐다. 3살. 아빠가 뭐 하는지 모른다. "아빠는 회사 가" 이 정도만 안다. 나중에 크면 말해줄까. "아빠가 너 3살 때 엄청 힘들었어. 근데 해냈어." 이렇게. 아니면 "아빠가 도전했다가 실패했어. 근데 최선을 다했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숨기고 싶진 않다. 두 번째 등반이 더 어렵다 시드는 첫 등반이었다. 장비 챙기고, 날씨 보고, 출발했다. 힘들었지만 설렜다. '드디어 시작이다' 그 느낌. 프리A는 다르다. 이미 한번 올랐다. 힘든 걸 안다. 더 가파른 걸 안다. 그래도 가야 한다는 걸 안다. 설렘보단 각오다. 어제 밤에 창업 실패 사례를 검색했다. 안 좋은 버릇이다. 근데 자꾸 찾아본다. "프리A 투자 받지 못해 폐업" 기사가 나왔다. 읽었다. 우리랑 비슷한 회사였다. B2B SaaS, 시드 투자 3억, 팀 10명. MRR이 정체되면서 투자 못 받았다고 한다. 런웨이 끝나고 6개월 버티다가 결국 문 닫았다. 대표 인터뷰가 있었다. "좀 더 빨리 피봇할 걸 그랬습니다." 창을 껐다. 우리는 피봇해야 하나? 아니다. 방향은 맞다. 속도가 문제다. 빨리 가야 한다. 새벽 4시.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할 수 있다.' 속으로 말했다. '할 수 있어.' 매일 하는 주문이다. 시드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프리A는 성장을 증명해야 한다. 두 번째 등반. 더 높다. 더 가파르다. 더 춥다. 그래도 간다. 정상은 저기 있다.런웨이는 8개월. 시간은 흐른다. 숫자를 만들어야 한다.
- 27 Dec, 2025
VC 미팅 20개, 거절 10개, 보류 10개, 진행 중 5개의 수학
월요일, 11번째 미팅 VC 미팅이 11시였다. 강남역 근처 카페. 2층 구석 자리. IR 덱은 어젯밤에 또 고쳤다. 51번째 버전. 트랙션 슬라이드에 지난달 MRR 그래프 추가했다. 상승 각도가 좀 더 가파르게 보이게. "안녕하세요, 박창업 대표입니다." 악수. 명함 교환. 커피 주문. 30분 발표, 20분 질의응답. "고객사 리텐션은 어떻게 되나요?" "경쟁사 대비 차별점이 뭔가요?" "런웨이는 얼마나 남았죠?" 대답했다. 준비한 대로. "네, 좋습니다. 내부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안다. 90%는 거절이다. 카페 나왔다. 1시 20분.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 3시에 또 미팅.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 샀다.엑셀 파일, 20줄 사무실 돌아와서 엑셀 켰다. 파일명: "투자유치_진행현황_2024.xlsx" 20개 행. 각각 VC 이름.A열: VC명 B열: 미팅일 C열: 상태 D열: 후속 액션 E열: 메모C열을 본다. "거절" 10개. "검토중" 10개. "2차 미팅" 3개. "DD 진행" 2개. 계산했다. 성공률 25%. 아니다. DD 진행도 떨어질 수 있다. 실제 성공률은 10%일 수도. F2 셀에 커서 놨다가 지웠다. 숫자로 계산하면 더 우울해진다. 거절 메일의 패턴 "검토 결과, 현 단계에서는 투자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트랙션이 더 나온 후 다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부 투심에서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거절 메일은 대부분 비슷하다. 정중하고, 짧고, 이유는 애매하다. 첫 거절 메일 받았을 때는 3일 동안 멍했다. 다섯 번째는 하루. 열 번째는 한 시간. 이제는 30분. 읽고, 상태 업데이트하고, 다음 메일 쓴다. 적응이라고 해야 하나. 둔감해진 건가. 카페인이 필요하다. 네 번째 커피.보류의 의미 "검토중"이라는 상태가 제일 애매하다. 기대해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2주 지나면 문자 보낸다. "안녕하세요, 박창업입니다. 검토 진행 상황 여쭤봐도 될까요?" 답장은 반반이다. "아직 내부 논의 중입니다." 또는 무응답. 무응답이 답이다. 사실상 거절. 그래도 엑셀에서는 "검토중"으로 남겨둔다. "거절"로 바꾸면 숫자가 너무 적나라해진다. 자기기만인 걸 안다. 그래도 필요하다. 이 정도 완충은. 4주 지나면 그때 바꾼다. "거절"로. 통장 잔고는 매달 줄어든다. 런웨이는 7개월 남았다. 아니다. 다음 달 급여 나가면 6개월. 목요일, 17번째 미팅 여의도였다. 대형 VC. 30층 오피스. 엘리베이터에서 넥타이 매만졌다. IR 발표는 이제 외운다. 51번 했으니까. 이번에는 파트너급이 들어왔다. 좋은 신호인가. 아니면 그냥 루틴인가. "시장 규모는?" "6500만원 MRR이면, CAC는 얼마죠?" "번율은?" 대답했다. 숫자로. 숫자가 약하다는 걸 안다. 나도. 그래도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고객사 인터뷰 결과 보면, NPS는 68입니다." "작년 대비 MRR 성장률 340%입니다." 파트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 2차 미팅 잡겠습니다." 엘리베이터 내려오면서 한숨 쉬었다. 긴장 풀린 거다. 기대감 아니다. 아직 모른다. 2차도 떨어질 수 있다. 편의점 들렀다. 삼각김밥 또 샀다. 저녁 7시인데 이게 첫 끼다.금요일 밤, 혼자 팀원들은 다 퇴근했다. 10시 30분. 나만 남았다. 회의실에서 노트북. 다음 주 미팅 3개 준비해야 한다. 각 VC마다 IR 덱을 조금씩 바꾼다. 이 VC는 B2B 중심이니까 기업 고객 비중 강조. 저 VC는 기술 중심이니까 특허 슬라이드 추가. 52번째, 53번째, 54번째 버전. 창밖을 봤다. 성수동 불빛. 다른 스타트업도 불 켜져 있다. 다들 비슷하겠지. 투자 받으려고 뛰어다니고. 휴대폰 진동. 아내 문자. "저녁 먹었어? 딸이 아빠 보고 싶대." "응, 먹었어. 조금만 더 하고 갈게." 거짓말이다. 아직 안 먹었다. 컵라면 하나 끓였다. 회의실 정수기 물로. 먹으면서 엑셀 또 켰다. 20줄. 10거절, 10보류, 5진행. F2 셀에 커서 놨다. "=COUNTIF(C:C,"진행중")/COUNTA(C:C)" 엔터. "25%" 지웠다. 계산하면 더 힘들다. 그냥 하나씩. 내일 미팅, 모레 미팅. 될 때까지. 토요일 아침, 21번째 준비 주말인데 노트북 켰다. 딸이 옆에서 그림 그린다. "아빠, 뭐 해?" "일." "또?" "응, 또." 미안하다. 말은 안 했다. 월요일에 21번째 미팅이다. 신규 VC. 초기 스타트업 중심. IR 덱 55번째 버전 만든다. 트랙션 슬라이드, 팀 슬라이드, 로드맵 슬라이드. 숫자 체크. 오타 체크. 그래프 각도 체크. 1시간 걸렸다. 저장하고 닫았다. 딸이 그린 그림 봤다. 우리 가족. 아빠가 제일 작게 그려져 있다. "아빠 왜 이렇게 작아?" "아빠가 맨날 안 보여서." 가슴이 뜬다. "미안. 조금만 더 하면 아빠 시간 많아질 거야."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다. 런웨이 6개월. 투자 안 받으면 정리해야 한다. 그럼 시간 많아지겠지. 그게 좋은 건가. 모르겠다. 월요일, 21번째 미팅 또 강남이다. 10시 30분. 30분 발표. 20분 질문. "좋습니다. 2차 미팅 잡겠습니다." 또 이 말. 기쁘지 않다. 익숙하다. 2차도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성공률 25%. 아마 더 낮을 거다. 그래도 간다. 22번째, 23번째, 24번째. 계속 간다. 다른 방법이 없다. 팀원 8명 월급. 사무실 월세. 서버 비용. 멈출 수 없다. 사무실 돌아왔다. 엑셀 켰다. 21번째 줄 추가. 상태: "1차 완료" D열에 썼다. "2차 미팅 대기" 저장. 닫았다. 책상 서랍에 타이레놀 있다. 두 알 먹었다. 물 없이. 수요일, DD 미팅 17번째 미팅했던 VC에서 연락 왔다. "실사 진행하겠습니다." 드디어. 20개 중에 DD까지 온 건 3번째다. 재무제표, 주주명부, 고객 계약서, 코드 리뷰. 다 준비했다. 일주일 걸렸다. 개발팀장이 밤새 코드 정리했다. "대표님, 이거 투자 되는 거죠?" "아직 몰라. DD도 떨어질 수 있어." 사실이다. 작년에 DD 진행하다 떨어진 적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25%보다는 높다. 아마 50%? 계산하지 말자. 또 우울해진다. 그냥 최선을 다하자. 될 때까지. 저녁 9시. 혼자 남았다. DD 자료 마지막 체크. 괜찮다. 빠진 거 없다. 내일 제출. 퇴근했다. 11시 20분. 아내랑 딸은 자고 있다. 조용히 씻고 누웠다. 천장 봤다. 20개 미팅. 10개 거절. 10개 보류. 3개 DD. 숫자가 머릿속에서 돈다. 25%. 50%. 10%. 잠이 안 온다. 휴대폰 켰다. 새벽 2시 47분. 창업 실패 사례 검색하려다가 껐다. 보면 더 불안해진다. 대신 엑셀 켰다. 어두운 화면에 20줄. F2 셀. 지워진 계산식 자리. 커서만 깜빡인다.성공률을 알면서도 계속 미팅을 잡는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 26 Dec, 2025
주말에도 노트북은 켜진다
주말에도 노트북은 켜진다 토요일 오전 10시 딸이 내 무릎에 올라탄다. "아빠, 놀이터 가자." 나는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다. IR 자료 37페이지. 투자자 미팅이 월요일이다. "응, 조금만 기다려." 세 번째 하는 말이다. 딸이 내려간다. 거실로 간다. 아내가 딸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간다. 문 닫히는 소리. 나는 타겟 마켓 사이즈를 수정한다. 3조에서 2.8조로. 보수적으로 잡는 게 낫다. 창밖을 본다. 햇빛이 좋다. 놀이터 가기 딱 좋은 날씨다. 다시 화면을 본다.런웨이 8개월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8개월이다. 직원 8명 월급, 사무실 월세, 서버 비용. 계산은 이미 했다. 스프레드시트에 다 있다. 시나리오 A: 프리A 투자 성공, 15억 유치. 런웨이 24개월 확보. 시나리오 B: 브릿지 투자 5억, 런웨이 14개월. 시나리오 C: 투자 실패, 3개월 후 팀 축소. C는 생각하기 싫다. 하지만 준비는 해야 한다. 월요일 미팅. 이번이 열두 번째 VC다. 지난주에 세 곳한테 거절당했다. "트랙션이 아직..." "마켓 사이즈가..." "경쟁사 대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주말에도 노트북을 켠다. 37페이지를 보는 시간 MRR 그래프를 수정한다. 지난달 1200만원. 이번 달 1350만원. 성장률 12.5%. 나쁘지 않다. 하지만 충분하지도 않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건 월 30% 성장이다. 우리는 10~15% 사이를 오간다. 느리다. 알고 있다. 개발팀장한테 메시지 보낸다. "월요일 미팅 전에 데모 한 번 더 체크 부탁드립니다." 토요일 오전인데 답장이 온다. "넵, 오후에 확인하겠습니다." 미안하다. 주말인데. 하지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딸 웃음소리가 들린다. 돌아왔나 보다. 아내가 부엌에서 점심 준비하는 소리. 나는 경쟁사 분석 슬라이드를 본다.아빠는 뭐 해? 점심을 먹는다. 딸이 묻는다. "아빠는 놀이터 안 가?" "아빠 일 있어서." "주말인데?" "응, 주말인데도 일해야 해." 딸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3살이다. 이해 못 한다. 당연하다. 아내가 말한다. "밥이나 제대로 먹어." 짜증 섞인 목소리다. 이해한다. 나도 화날 것 같다. "미안."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다. 밥을 먹는다. 맛을 모르겠다. 머릿속은 IR 자료다. 유닛 이코노믹스 슬라이드. CAC 대비 LTV 비율. 3.2:1. 괜찮은 숫자다. 하지만 페이백 기간이 14개월. 좀 길다. 딸이 내 옆에 온다. "아빠, 이따 놀아줘." "응, 조금 있다가." 거짓말이다. 오늘 못 놀아줄 거다. 알고 있다. 오후 3시의 스프레드시트 재무 모델을 본다. 3개월, 6개월, 12개월 예측. 숫자를 바꿔본다. 영업 효율을 20% 올리면? 이탈률을 5% 낮추면? 시뮬레이션한다. 계산한다. 다시 계산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대학 동기다. "야, 저녁에 맥주 한 잔 어때?" "미안, 오늘 좀..." "또? 너 요즘 얼굴도 못 보겠다." "다음에. 꼭." 끊는다. 미안하다. 하지만 갈 수 없다. 창밖을 본다. 날씨가 여전히 좋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탄다. 부모들이 벤치에 앉아 있다. 웃는다. 나는 노트북을 본다.될 거다, 아마도 저녁이다. 딸이 잔다. 아내가 설거지한다. 나는 여전히 노트북 앞이다. 메시지가 온다. 개발팀장이다. "데모 체크 완료했습니다. 월요일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답장을 보낸다. IR 자료를 저장한다. 버전 47이다. 다시 연다. 뭔가 빠진 것 같다. 항상 그렇다. 아내가 옆에 선다. "언제까지 할 거야?" "조금만 더." "매번 그래." "미안." "미안하다고 해결돼?" 말이 없다. 해결 안 된다. 알고 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8개월이다. 런웨이가. 직원 8명이다. 가족들이 있다.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말에도 노트북을 켠다. 딸이 '아빠 놀자'라고 해도. 날씨가 좋아도. 친구가 술 먹자고 해도. IR 자료를 본다. 38페이지. 팀 소개 슬라이드. 우리 팀 사진이 있다. 다들 웃고 있다. 나도 웃고 있다. 그때는. 저장한다. 버전 48. 밤 11시 딸 방에 들어간다. 자고 있다. 이불을 덮어준다.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안해." 작게 말한다. 나온다. 거실 불을 끈다. 침대에 눕는다. 아내는 벌써 잔다. 등을 보이고. 핸드폰을 본다. 슬랙 확인. 팀 채널. 조용하다. 다들 주말 보내는 중이겠지. 투자자 리스트를 본다. 월요일 미팅. 화요일 미팅. 수요일 미팅. 될 거다. 되어야 한다. 안 되면... 생각하기 싫다. 눈을 감는다. 머릿속에 숫자가 떠다닌다. 8개월. 1350만원. 12.5%. 3.2:1. 잠이 안 온다. 노트북을 다시 켠다. 거실에서. 불은 끄고. 화면 불빛만 있다. 나만 있다. IR 자료를 다시 연다. 버전 48. 1페이지부터 다시 본다.주말이 지나간다. 노트북은 여전히 켜져 있다.
- 25 Dec, 2025
아침 7시 출근, 밤 11시 퇴근이 기본이 되던 날
아침 7시 출근, 밤 11시 퇴근이 기본이 되던 날 3시 17분 또 눈 떴다. 알람 전에 눈 뜨는 게 1년째다. 슬랙 알림이 먼저 깬 건지, 내가 먼저 깬 건지 모르겠다. 일단 핸드폰 든다. 개발팀에서 밤새 푸시한 커밋 7개. 기획팀장이 올린 기능 명세서. 영업 김대리가 새벽 2시에 올린 고객사 피드백. 다들 언제 자는 거지. 아내가 뒤척인다. 핸드폰 불빛 때문인가. 침대 밖으로 나간다. 거실 소파에 앉는다. 현금흐름표 연다. 8개월. 런웨이 8개월 남았다. MRR 1200만원. 지난달보다 80만원 올랐다. 성장률 7.1%. 나쁘지 않다. 근데 VC들은 최소 15%는 봐야 한다고 했다. 계산기 두드린다. 직원 8명 인건비, 사무실 월세, AWS 비용, 마케팅 비용. 고정비만 월 2800만원. 적자 1600만원. 곱하기 8개월 하면 1억 2800만원. 통장 잔고 1억 5천. 7천만원 남는다. 아니다, 세금 빠지면 실제로는 5천. 5천으로 뭘 하나.7시 03분 성수역 2번 출구. 커피 산다. 아메리카노 톨사이즈. 샷 추가. 5500원. 예전에는 이 돈도 아까웠는데, 이제는 안 마시면 오전을 못 버틴다. 공유오피스 4층. 카드 찍는다. 삐- 제일 먼저 온 건 나다. 불 켠다. 에어컨 온도 24도 맞춘다. 의자에 앉는다. 노트북 켠다. 슬랙 데스크톱 버전 실행. 어제 밤 대화 쭉 읽는다. 개발팀이 API 응답속도 개선했다고 한다. 0.8초에서 0.3초로. 좋다. 디자이너가 새 랜딩페이지 시안 올렸다. 어, 괜찮네. 근데 CTA 버튼 색이 좀... 영업팀이 미팅 잡았다. 수요일 오후 2시, 여의도. 직원 500명 규모 제조사. 좋아. 답장 단다. "수고했어요", "좋은데 CTA는 논의 필요", "미팅 전 자료 준비 부탁". 시계 본다. 7시 41분. 팀원들 출근까지 1시간 19분 남았다. IR 덱 연다. 46페이지. VC한테 "시장 규모 근거 부족하다"는 피드백 받았다. TAM, SAM, SOM 다시 계산한다. 국내 중소기업 수 680만개. 우리 타겟은 직원 50~500명 기업. 약 18만개. 솔루션 도입률 12%. 객단가 연 480만원. 시장 규모 1조 384억. 엑셀에 수식 입력한다. 출처 링크 단다. 슬라이드 수정한다. 커피 한 모금. 식었다.9시 12분 팀원들 출근했다. "대표님 일찍 오셨네요." "응, 좀 일찍 왔어." 매일 듣는 말. 매일 하는 대답. 회의실 예약한다. 오전 스탠드업. 9시 30분. 개발팀 진호, 서연, 민재, 준석. 기획팀 혜진. 디자인팀 유나. 영업팀 대리 김성훈, 박지영. 8명 전부 모인다. "어제 고생 많았어요. 다들 일찍 퇴근했어요?" 아무도 대답 안 한다. 웃음만 나온다. "오늘 할 일 공유하죠." 진호가 말한다. "결제 모듈 API 연동 마무리할게요. 오늘 중으로요." 서연이 말한다. "대시보드 차트 렌더링 최적화 들어갑니다." 민재가 말한다. "QA 이슈 7건 픽스했고, 배포는 내일 새벽 예정입니다." 새벽 배포. 또 밤샌다는 거다. "고생이 많아요. 근데 꼭 새벽이어야 해요?" "서비스 다운타임 최소화하려면요." 맞는 말이다. 할 말 없다. 혜진이 말한다. "고객사 피드백 정리해서 오후에 공유드릴게요." 유나가 말한다. "랜딩페이지 시안, CTA 색상 3가지 안 준비했어요." 성훈이 말한다. "수요일 미팅 자료 오늘 완성합니다." 지영이 말한다. "신규 리드 12건 확보했어요. 콜드메일 응답률 8.3%예요." 다들 잘한다. 진짜 잘한다. 근데 다들 피곤해 보인다. "수고해요. 점심은 같이 먹어요." 회의 끝.1시 18분 점심 먹었다. 회사 근처 김치찌개집. 1인분 9000원. 9명이면 8만 1천원. 회사 카드 긁는다. 이 돈도 고정비다. 한 달이면 243만원. 연간 2916만원. 계산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계산한다. 팀원들은 밥 먹으면서 농담한다. 웃는다. 그때만큼은 가볍다. 나도 웃는다. 같이 웃어야 한다. 대표가 무거우면 팀도 무거워진다. "지영씨 콜드메일 응답률 진짜 높네요. 어떻게 한 거예요?" "제목에 고객사 pain point를 구체적으로 넣었어요. '업무 자동화'보다 '엑셀 작업 시간 70% 단축' 이렇게요." "오, 좋은데요. 이거 다른 메일에도 적용해봐요." 이런 대화. 편하다. 회사 얘기 아닌 얘기도 한다. 준석이가 말한다. "주말에 부모님 만나러 가요. 명절 아닌데도 뭐라 안 하시려나." 민재가 말한다. "형,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는데요?" "사업 접고 대기업 가래요." 다들 웃는다. 나도 웃는다. 근데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부모님 말이 틀리진 않다. 6시 47분 저녁 먹을 시간 없다. VC 화상 미팅 7시. 20분 전에 자료 최종 점검한다. 회의실 들어간다. 노트북 연결한다. 줌 링크 클릭한다. 7시 정각. 상대방 입장. "안녕하세요. 박창업 대표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자료 잘 봤습니다." 30분 발표. 15분 질의응답. "시장 규모는 이해했는데요, 경쟁사 대비 차별점이 명확하지 않네요." "저희는 UI/UX에 집중했습니다. 비개발자도 5분 안에 자동화 워크플로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근데 경쟁사도 노코드 표방하잖아요?"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학습곡선이 훨씬 낮습니다. 고객사 온보딩 시간이 경쟁사 대비 40% 짧습니다." "데이터가 있나요?" "네, 고객사 10곳 평균 온보딩 시간 측정했습니다. 자료 공유드리겠습니다." 질문이 계속된다. 대답한다. 또 질문. 또 대답. 45분 지났다. "네, 일단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검토해보겠다. 이 말이 제일 무섭다. 됐다는 건지, 안 됐다는 건지 모른다.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회의 종료. 혼자 남았다. 한숨 나온다. 9시 33분 아직 일한다. 회의실에서 나왔다. 자리로 돌아왔다. 팀원들 반 이상 남았다. 진호, 민재, 준석은 헤드폰 끼고 코딩한다. 혜진은 Figma 켜놓고 화면 설계한다. 다들 집중한다. 나도 일한다. IR 덱 수정한다. 경쟁사 비교 슬라이드 추가한다. 차별점 3가지 명확하게 정리한다.학습곡선 40% 단축 온보딩 시간 평균 2.3일 고객 이탈률 4.2% (업계 평균 12%)숫자로 말해야 한다. 감으로 설득 안 된다. 슬랙에 메시지 온다. 성수 투자사 김 이사. "대표님, 다음 주 화요일 오전 미팅 가능하신가요?" 답장 바로 보낸다. "네, 가능합니다. 시간 알려주세요." 3초 만에 답장 온다. "10시 저희 사무실로 오시죠." "네, 감사합니다." 미팅 하나 더 잡혔다. 21번째 IR 미팅. 20번 중에 5번 거절당했다. 10번은 "검토하겠다". 5번은 아직 진행 중. 확률 계산하면 안 되는데 자꾸 계산한다. 25% 거절. 50% 보류. 25% 진행. 진행 중인 5곳 중에 1곳만 투자해도 된다. 일단 해보자. 11시 09분 퇴근 준비한다. 노트북 덮는다. 가방에 넣는다. 자리 정리한다. "다들 수고했어요. 먼저 들어갑니다." 진호가 말한다. "대표님도 수고하셨어요." 민재가 말한다. "내일 봬요." 헤드폰 낀 채로 손만 흔든다. 엘리베이터 탄다. 1층 내려간다. 밖으로 나간다. 11시 15분. 성수동 밤거리. 사람 많다. 카페, 술집, 편의점. 다들 웃는다. 나도 웃어야 하는데 피곤하다. 지하철 탄다. 2호선. 집까지 40분. 앉는다. 핸드폰 꺼낸다. 슬랙 본다. 민재가 커밋 푸시했다. 11시 22분. 진호가 이슈 코멘트 달았다. 11시 28분. 다들 언제 집에 가나. 나도 언제 집에 가나. 집 도착. 12시 03분. 현관문 연다. 조용하다. 불 다 꺼져 있다. 아내랑 딸 자고 있다. 씻는다. 침대에 눕는다. 아내가 뒤척인다. "왔어?" "응, 자." "오늘도 늦었네." "미안." "괜찮아. 자." 괜찮지 않다는 거 안다. 근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 감는다. 내일 또 7시 출근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3시 41분 또 눈 떴다. 알람까지 3시간 19분 남았다. 핸드폰 든다. 슬랙 본다. 준석이 배포 완료했다. 새벽 3시 12분. "배포 완료. 이슈 없음. 퇴근합니다." 3시에 배포하고 3시 12분에 퇴근. 12분 만에 검증하고 간 거다.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근데 뭐라 할 수 없다. 나도 똑같이 했으니까. 런웨이 계산기 연다. 습관이다. 8개월. 여전히 8개월. 시나리오 3개 돌린다. 보수: MRR 월 5% 성장, 8개월 후 잔고 2300만원 중립: MRR 월 10% 성장, 8개월 후 잔고 5800만원 낙관: MRR 월 15% 성장, 8개월 후 잔고 9200만원 셋 다 추가 투자 없으면 죽는다. 투자 받아야 한다. 무조건. 21번째 IR, 22번째 IR, 30번까지 가도 된다. 한 곳만 투자하면 된다. 될 거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아내가 뒤척인다. 나도 눈 감아야 한다. 근데 잠이 안 온다. 7시에 출근해야 한다. 11시에 퇴근할 거다.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언제까지 이럴까. 투자 받으면 나아질까. 시리즈 A 받으면 편해질까. 거짓말이다. 더 바빠진다는 거 안다. 근데 멈출 수 없다. 이미 8명이 나를 믿고 있다. 8개 가정이 이 회사에 달려 있다. 런웨이 8개월. 버텨야 한다. 일단 해보자.새벽 3시, 런웨이 계산하다가 또 눈 떴다. 내일도 7시 출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