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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 09 Dec, 2025
부모님은 '다시 취직해라' 하신다
명절이 무섭다 명절 전날 밤이다. 짐 싸면서 한숨 나온다. 부모님 뵈러 가는데 무겁다. 선물 챙기고, 마음은 안 챙겨진다. 전화 왔다. 어머니다. "창업아, 내일 몇 시에 와?" "11시쯤요." "그래, 조심히 와. 근데... 아버지가 할 말씀 있으신대." 끊었다. 뭔지 안다. 또 그 얘기다. 지난 추석 때도 그랬다. 설날에도 그랬다. 이번에도 피할 수 없다. '사업 접고 다시 취직해라.'네이버를 왜 나왔냐고 5년 다녔다. 네이버 PM. 연봉 8천만원. 스톡옵션 있었다. 복지 좋았다. 부모님 자랑이었다. 그만뒀다. 3년 전이다. 부모님은 이해 못 하신다. 지금도. "네이버면 평생 다녀도 되는 곳인데." "그걸 왜 차버려?" "지금 뭐 하는 건데, 그게 네이버보다 나아?" 대답 못 한다. 현재 월급? 0원이다. 투자금으로 버틴다. 통장 잔고? 개인 돈 2300만원 남았다. 숫자로 보면 부모님 말씀이 맞다. 아버지는 평생 공무원이셨다. 안정이 최고였다. 어머니는 은행원이셨다. 정년까지 다녔다. 그분들 눈에 내 선택은 미친 짓이다. "요즘 경기가 어떤데 창업을 해." "망하면 어쩌려고." "애는 벌써 셋째인데." 틀린 말씀 아니다. 전부 맞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투자금은 남의 돈이라고 추석날이다. 친척들 모였다. "창업이 잘 돼?" "요즘 벌이는 어때?" "투자는 많이 받았어?" 시드 3억 받았다고 했다. 다들 놀란다. "와, 3억!" "돈 많이 벌겠네!" 아니다. 착각이다.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돈 네 돈 아니잖아." "남의 돈으로 사업하는 건데." "못 갚으면 어쩔 거야." 맞다. 투자금은 빚이다. 갚아야 한다. 수익으로. 현재 월매출 1200만원이다. 8개월 전 500만원이었다. 성장한다. 근데 느리다. 런웨이 8개월 남았다. 프리A 못 받으면? 끝이다. 직원 8명 월급, 사무실 임대료, 서버비, 마케팅비. 한 달에 4000만원 나간다. 이 숫자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그만둬, 당장." 확실하다.실패 사례를 보내주신다 카톡이 온다. 어머니다. 기사 링크다. "스타트업 폐업률 90%... 창업 5년 내 대부분 문 닫아" 또 온다. "청년 창업 실패자 5년간 3배 증가" 또 온다. "빚더미 앉은 전 창업자의 고백" 받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어머니는 걱정하신다. 진심으로. 아들이 실패할까봐. 빚더미에 앉을까봐. 가족이 힘들어질까봐. 사랑이다. 안다. 근데 무겁다. 전화 온다. "창업아, 기사 봤어?" "네." "이런 거 보면 엄마는 무섭더라."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잖아." 대답 못 했다. 사실 나도 무섭다. 밤마다 검색한다. '스타트업 실패 사례', 'B2B SaaS 망한 이유', '시드 투자 후 폐업'. 읽는다. 전부. 새벽 2시까지. 우리랑 비슷한 케이스 많다. 다 망했다. 나도 저렇게 될까? 모른다. "취직하면 바로 팀장이잖아" 아버지 친구분이 인사팀장이시다. 큰 기업이다. "경력 5년이면 바로 팀장으로 들어올 수 있어." "연봉도 창업 때보다 안정적이고." "한번 생각해봐." 제안 받았다. 3개월 전이다. 아버지가 연락처 주셨다. "한번 만나보기만 해라." 안 만났다. "왜 안 만나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사업 접고 다시 가면 돼." 피봇이 아니라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이해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36살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력서 내면 연락 온다. PM 경력 있다. 레퍼런스 괜찮다. 월급 700만원, 스톡옵션, 4대보험, 퇴직금. 안정이다. 근데 못 한다. 왜? 모르겠다. 그냥 못 한다. 이미 시작했다. 직원 8명이 나를 믿는다. 투자자가 기대한다. 고객사 12곳이 우리 솔루션 쓴다. 여기서 그만두면? 전부 버리는 거다. 그럴 수 없다. 아내가 버티는 이유 아내는 아직 다닌다. 대기업 마케터다. 연봉 6500만원이다. 우리 집은 아내 월급으로 산다. 대출 이자, 생활비, 딸 어린이집비. 미안하다. 매일. "미안해." "뭐가?" "내가 벌어와야 하는데." "괜찮아. 나 아직 다니잖아." 아내는 불평 안 한다. 신기하다. 시댁에서는 압박한다. "사위가 언제까지 그럴 거야?" "애도 있는데 좀 안정적으로 살아야지." 아내가 막는다. 매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잘 될 거예요." 고맙다. 진짜. 근데 불안하다. 아내가 언제까지 버틸까? 지치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힘들어하면? 새벽에 이런 생각 한다. '차라리 취직할까?' 아침이 오면 지운다. 출근한다. 일한다. 반복이다. 성공하면 이해하실까 가끔 상상한다. 프리A 받았다. 10억이다. 밸류 50억 찍었다. 언론에 났다. "주목받는 B2B SaaS 스타트업" 부모님께 기사 보여드린다. "아빠, 봤어요?" "그래... 잘됐구나." 인정받는다. 처음으로. "네이버 그만둔 거 잘했네." "네 선택이 맞았어." 상상이다. 아직. 현실은 다르다. 런웨이 8개월이다. VC 미팅 5개 남았다. 다 거절당하면? 끝이다. 투자 못 받으면 정리한다. 직원들 보내고, 사무실 빼고, 부모님께 말씀드린다. "아빠 말이 맞았어요. 다시 취직할게요."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확률? 40%쯤 된다. 무겁다. 명절 다음날 월요일 출근했다. 성수동 사무실이다. 팀원들이 묻는다. "대표님, 연휴 잘 보내셨어요?" "응, 잘 쉬었어." 거짓말이다. 하나도 안 쉬었다. 부모님이랑 대화하고, 친척들 질문 받고, 아내 눈치 보고, 새벽에 현금흐름표 봤다. 근데 팀원들 앞에서는 밝게 웃는다. "오늘 회의 2시지? 준비됐어?" "네!" 회의 시작한다. 이번 주 스프린트 계획이다. 기능 하나 더 붙인다. 고객사 요청이다. 개발 일정 2주 걸린다. "할 수 있어?" "해보겠습니다." 팀원들은 모른다. 내 통장에 2300만원밖에 안 남았다는 거. 부모님이 '그만둬라' 하신다는 거. 알려줄 수 없다. 대표니까. 회의 끝났다. 혼자 남았다. 핸드폰 본다. 어머니한테 문자 왔다. "창업아, 건강 챙겨. 너무 무리하지 말고." 눈물 날 뻔했다.부모님은 틀리지 않으셨다. 나도 확신 없다. 그냥 하는 거다. 끝까지.
- 03 Dec, 2025
직원 8명, 8개의 월급. 그리고 내 책임
직원 8명, 8개의 월급. 그리고 내 책임 새벽 3시 17분 또 눈이 떴다. 침대 옆 휴대폰을 집었다. 새벽 3시 17분.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다. 딸도 자기 방에서 잘 거다. 나만 깼다. 슬랙을 켰다. 별일 없다. 당연하다. 새벽 3시에 무슨 일이 있겠어. 은행 앱을 켰다. 회사 통장 잔고. 1억 8,200만원. 직원 8명 월급. 2,800만원. 사무실 월세. 180만원. 클라우드 서버비. 90만원. 각종 SaaS 구독료. 45만원. 3,115만원. 6월 지출만 계산한 거다. 마케팅 비용, 세금, 기타 잡비 빼고. 런웨이 8개월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6개월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안 온다.네이버를 나온 날 2년 6개월 전. 네이버 PM 5년차였다. 연봉 8,500만원. 스톡옵션 좀 있었다. 사표 쓰는 날, 팀장이 물었다. "진짜 나가?" "네." "후회 안 해?"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무서웠다. 그래도 나왔다. 내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누가 시키는 기획이 아니라, 내가 믿는 걸 만들고 싶었다. 창업 동기 모임에서 만난 개발자 친구가 CTO로 합류했다. 둘이서 시작했다. 3개월 뒤 시드 투자 3억 받았다. 그때는 모든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이제 사람 뽑아야지." 첫 직원을 뽑았다. 개발자였다. 연봉 5,000만원 제시했다. 대기업보다 적었지만, 스톡옵션 1%를 줬다. "잘 부탁합니다, 대표님." 그 말이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월말이 다가온다 오늘이 6월 23일이다. 월급날은 25일이다. 이틀 남았다. 통장에 돈은 있다. 문제없다. 이번 달은. 근데 매달 이렇게 세는 게 이상하다. "이번 달은 괜찮아." 그럼 다음 달은? 그다음 달은? MRR은 1,200만원이다. 지난달보다 15% 늘었다. 좋은 거다. 성장하는 거다. 근데 월 지출이 4,500만원이다.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하면. 매달 3,300만원이 증발한다. 엑셀을 켰다. 시나리오를 돌렸다. 보수 시나리오: MRR 월 10% 성장, 4개월 뒤 런웨이 소진 중립 시나리오: MRR 월 20% 성장, 6개월 뒤 프리A 투자 유치 낙관 시나리오: 대형 고객 2곳 계약, 8개월 버팀 중립이 현실적이다. 근데 20% 성장이 쉬운가? 지난달 영업팀이 5곳 미팅 잡았다. 계약은 1곳. 이번 달은 8곳 미팅. 계약은 2곳. 전환율이 25%다. 나쁘지 않다. 근데 충분한가? 프리A 투자 받으려면 MRR 3,000만원은 돼야 한다는데. 지금 1,200만원. 2.5배를 6개월 안에. 가능한가? 모르겠다.팀원들 앞에서 아침 9시. 데일리 스탠드업. "어제 고객사 미팅 어땠어요?" "좋았습니다. 다음 주에 데모 보여드리기로 했어요." "좋네. 준비 잘해보자."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그 고객사, 예산이 별로 없다. 알고 있다. 개발팀 막내가 물었다. "대표님, 이번 기능 개발 우선순위 어떻게 할까요?" "A 기능 먼저. 고객 요청 많았던 거." "넹!" 밝게 대답한다. 저 친구 연봉 4,200만원이다. 2년차 개발자. 대기업 가면 더 받는다. 여기 온 이유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성장시켜줄 수 있나? 나도 모르겠는데? 회의가 끝났다. CTO가 따로 물었다. "형, 괜찮아?" "응. 왜?" "요즘 얼굴이 안 좋아." "피곤해서 그래. 괜찮아." 거짓말이다. 괜찮지 않다. 근데 말할 수 없다. CTO한테도. 말하는 순간, 불안이 전염된다. 팀 전체가 흔들린다. 대표는 불안해하면 안 된다. 내가 배운 거다.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봤다. 다크서클. 핏기 없는 얼굴. 머리카락이 좀 빠진 것 같기도. 세수를 했다. 거울에 대고 웃어봤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혼잣말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책임의 무게 PM이었을 때는 몰랐다. 내가 일 못하면? 팀장한테 혼나고 끝이다. 연봉 좀 덜 받고 끝이다. 근데 지금은? 내가 일 못하면, 8명이 거리로 나간다. 내가 투자 못 받으면, 8명이 다른 직장 알아봐야 한다. 내가 고객 못 구하면, 8명의 월급이 끊긴다. 8명이 아니다. 8명의 가족까지 치면 20명이 넘는다. 개발팀 형준이는 작년에 결혼했다. 부인이 임신 중이다. 영업팀 수진이는 부모님 병원비 대고 있다고 들었다. 디자이너 민지는 동생 학비 지원한다고 했다. 다 안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게 됐다. 점심 먹으면서 하는 얘기들. "요즘 집값이 너무 올라서요." "애 어린이집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요." "부모님이 편찮으셔서요." 다 듣는다. 그리고 통장 잔고를 본다. 1억 8,200만원. 6개월. 6개월 안에 투자를 받거나, 매출을 3배로 늘리거나. 아니면. 아니면 뭐? 8명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서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IR 덱 51번째 수정 저녁 8시. 팀원들 다 퇴근했다. 나만 남았다. IR 덱을 켰다. 51번째 수정이다. 슬라이드 1: 문제 정의 슬라이드 2: 솔루션 슬라이드 3: 시장 크기 슬라이드 4: 비즈니스 모델 슬라이드 5: 트랙션 트랙션 슬라이드를 봤다. MRR 1,200만원. 그래프는 우상향이다. 좋아 보인다. 근데 VC들은 안다. 이게 충분하지 않다는 걸. 지난주 미팅에서 들었다. "좋은데요. 근데 조금 더 트랙션 보고 싶어요." 트랙션. 얼마나 더? 3,000만원? 5,000만원? 언제까지? 3개월? 6개월?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이게 제일 무섭다. 거절이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근데 보류는? 희망을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다. 슬라이드를 수정했다. 고객 인터뷰 내용을 추가했다. 정량적 효과를 넣었다. "업무 시간 37% 단축" "휴먼 에러 62% 감소" 좋아 보인다. 그런데 충분한가? 저장했다. IR_deck_v51.pptx. 다음 주에 VC 2곳 미팅이다. 또 물을 거다. "트랙션이..." 알고 있다. 부족하다는 거. 그래도 간다. 갈 수밖에 없다. 런웨이가 6개월이니까. 아내 앞에서 집에 도착했다. 밤 11시. 아내가 거실에 있었다. "왔어?" "응." "밥 먹었어?" "응. 먹었어." 거짓말이다.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 먹었다. 아내가 물었다. "요즘 힘들어?" "아니. 괜찮아." 또 거짓말이다. "얼굴이 안 좋아 보여." "피곤해서 그래." 이건 진짜다. 아내는 대기업 마케터다. 연봉 6,800만원. 우리 집 주 수입원이다. 내가 창업한다고 했을 때, 말렸다. "지금 네이버 다니는 게 안정적이잖아." "나도 알아. 근데 해보고 싶어." "실패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2년 반이 지났다. 실패는 안 했다. 근데 성공도 안 했다. 어정쩡하다. 아내가 또 물었다. "회사는 잘돼가?" "응. 잘돼가." 세 번째 거짓말이다. "투자 받을 수 있어?" "할 수 있어. 괜찮아." 네 번째. 아내는 눈치챘을 거다. 다 알 거다. 근데 묻지 않는다. 나도 말하지 않는다. 서로 모른 척한다. 그게 편하니까. 딸 방에 들어갔다. 자고 있었다. 작은 손. 작은 발. 3살. 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 대학까지 보내야 한다. 학원비. 등록금. 생활비. 얼마나 드나? 3억? 5억? 지금 회사 통장에 1억 8,200만원. 6개월. 6개월 뒤에 이 아이한테 뭐라고 말하지? "아빠 회사가 안돼서..." 상상하기 싫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잠이 안 온다. 그래도 출근한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렸다. 6시 30분. 3시간 잤다. 일어났다. 샤워했다. 면도했다. 정장은 아니고, 깔끔한 셔츠를 입었다. 거울을 봤다. "오늘도 괜찮은 척하자." 현관문을 열었다. 지하철을 탔다. 성수역까지 40분. 사무실에 도착했다. 7시 50분. 아직 아무도 없다. 커피를 내렸다. 노트북을 켰다. 슬랙에 메시지가 왔다. "대표님, 오늘 고객사 미팅 준비됐습니다!" 영업팀 수진이다. 답장을 쳤다. "좋아요. 잘 부탁해요 👍" 이모지까지 넣었다. 오전 9시. 팀원들이 하나씩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제 야근하셨어요? 불 켜져 있던데." "아니, 일찍 왔어." 또 거짓말이다. 데일리 스탠드업을 시작했다. "오늘 각자 할 일 공유해봅시다." 팀원들이 말한다. 개발 일정. 디자인 시안. 영업 미팅. 다 듣는다.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오늘도 화이팅!" 밝게 말했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에 앉았다. 은행 앱을 켰다. 1억 8,200만원. 어제랑 똑같다. 내일도 똑같을 거다. 그다음 날도. 월급날까지. 그리고 월급날이 지나면. 1억 5,400만원. 한 달 더 줄어든다. 엑셀을 켰다. 시나리오를 또 돌렸다. 보수: 4개월 중립: 6개월 낙관: 8개월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현실은 냉정하다. 그래도 일한다. 왜? 8명이 나를 믿고 있으니까. 8개의 월급이 내 책임이니까. 그게 대표라는 거니까.새벽 3시에 눈 뜨는 건 여전하다. 근데 아침엔 웃으면서 출근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