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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도 노트북은 켜진다

주말에도 노트북은 켜진다

주말에도 노트북은 켜진다 토요일 오전 10시 딸이 내 무릎에 올라탄다. "아빠, 놀이터 가자." 나는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다. IR 자료 37페이지. 투자자 미팅이 월요일이다. "응, 조금만 기다려." 세 번째 하는 말이다. 딸이 내려간다. 거실로 간다. 아내가 딸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간다. 문 닫히는 소리. 나는 타겟 마켓 사이즈를 수정한다. 3조에서 2.8조로. 보수적으로 잡는 게 낫다. 창밖을 본다. 햇빛이 좋다. 놀이터 가기 딱 좋은 날씨다. 다시 화면을 본다.런웨이 8개월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8개월이다. 직원 8명 월급, 사무실 월세, 서버 비용. 계산은 이미 했다. 스프레드시트에 다 있다. 시나리오 A: 프리A 투자 성공, 15억 유치. 런웨이 24개월 확보. 시나리오 B: 브릿지 투자 5억, 런웨이 14개월. 시나리오 C: 투자 실패, 3개월 후 팀 축소. C는 생각하기 싫다. 하지만 준비는 해야 한다. 월요일 미팅. 이번이 열두 번째 VC다. 지난주에 세 곳한테 거절당했다. "트랙션이 아직..." "마켓 사이즈가..." "경쟁사 대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주말에도 노트북을 켠다. 37페이지를 보는 시간 MRR 그래프를 수정한다. 지난달 1200만원. 이번 달 1350만원. 성장률 12.5%. 나쁘지 않다. 하지만 충분하지도 않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건 월 30% 성장이다. 우리는 10~15% 사이를 오간다. 느리다. 알고 있다. 개발팀장한테 메시지 보낸다. "월요일 미팅 전에 데모 한 번 더 체크 부탁드립니다." 토요일 오전인데 답장이 온다. "넵, 오후에 확인하겠습니다." 미안하다. 주말인데. 하지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딸 웃음소리가 들린다. 돌아왔나 보다. 아내가 부엌에서 점심 준비하는 소리. 나는 경쟁사 분석 슬라이드를 본다.아빠는 뭐 해? 점심을 먹는다. 딸이 묻는다. "아빠는 놀이터 안 가?" "아빠 일 있어서." "주말인데?" "응, 주말인데도 일해야 해." 딸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3살이다. 이해 못 한다. 당연하다. 아내가 말한다. "밥이나 제대로 먹어." 짜증 섞인 목소리다. 이해한다. 나도 화날 것 같다. "미안."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다. 밥을 먹는다. 맛을 모르겠다. 머릿속은 IR 자료다. 유닛 이코노믹스 슬라이드. CAC 대비 LTV 비율. 3.2:1. 괜찮은 숫자다. 하지만 페이백 기간이 14개월. 좀 길다. 딸이 내 옆에 온다. "아빠, 이따 놀아줘." "응, 조금 있다가." 거짓말이다. 오늘 못 놀아줄 거다. 알고 있다. 오후 3시의 스프레드시트 재무 모델을 본다. 3개월, 6개월, 12개월 예측. 숫자를 바꿔본다. 영업 효율을 20% 올리면? 이탈률을 5% 낮추면? 시뮬레이션한다. 계산한다. 다시 계산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대학 동기다. "야, 저녁에 맥주 한 잔 어때?" "미안, 오늘 좀..." "또? 너 요즘 얼굴도 못 보겠다." "다음에. 꼭." 끊는다. 미안하다. 하지만 갈 수 없다. 창밖을 본다. 날씨가 여전히 좋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탄다. 부모들이 벤치에 앉아 있다. 웃는다. 나는 노트북을 본다.될 거다, 아마도 저녁이다. 딸이 잔다. 아내가 설거지한다. 나는 여전히 노트북 앞이다. 메시지가 온다. 개발팀장이다. "데모 체크 완료했습니다. 월요일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답장을 보낸다. IR 자료를 저장한다. 버전 47이다. 다시 연다. 뭔가 빠진 것 같다. 항상 그렇다. 아내가 옆에 선다. "언제까지 할 거야?" "조금만 더." "매번 그래." "미안." "미안하다고 해결돼?" 말이 없다. 해결 안 된다. 알고 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8개월이다. 런웨이가. 직원 8명이다. 가족들이 있다.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말에도 노트북을 켠다. 딸이 '아빠 놀자'라고 해도. 날씨가 좋아도. 친구가 술 먹자고 해도. IR 자료를 본다. 38페이지. 팀 소개 슬라이드. 우리 팀 사진이 있다. 다들 웃고 있다. 나도 웃고 있다. 그때는. 저장한다. 버전 48. 밤 11시 딸 방에 들어간다. 자고 있다. 이불을 덮어준다.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안해." 작게 말한다. 나온다. 거실 불을 끈다. 침대에 눕는다. 아내는 벌써 잔다. 등을 보이고. 핸드폰을 본다. 슬랙 확인. 팀 채널. 조용하다. 다들 주말 보내는 중이겠지. 투자자 리스트를 본다. 월요일 미팅. 화요일 미팅. 수요일 미팅. 될 거다. 되어야 한다. 안 되면... 생각하기 싫다. 눈을 감는다. 머릿속에 숫자가 떠다닌다. 8개월. 1350만원. 12.5%. 3.2:1. 잠이 안 온다. 노트북을 다시 켠다. 거실에서. 불은 끄고. 화면 불빛만 있다. 나만 있다. IR 자료를 다시 연다. 버전 48. 1페이지부터 다시 본다.주말이 지나간다. 노트북은 여전히 켜져 있다.

창업 동기 모임,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곳

창업 동기 모임,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곳

월요일 밤 9시 30분 성수동 작은 술집. 창업 동기 4명이 모였다. 나, 이수진(헬스케어 앱), 김민준(푸드테크), 정하늘(에듀테크). 2년 전 같은 액셀러레이터 출신이다. "박창업 왔네. 요새 어때?" "그냥 굴러간다. 너희는?" 첫 맥주 한 잔은 늘 이렇게 시작한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서로 눈치 본다.두 번째 잔부터 달라진다. "사실 이번 달 월급 내가 월급 받을까 말까다." 민준이가 먼저 터뜨렸다. "나도. 통장에 2300만원 남았어. 런웨이 두 달." 수진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웃긴데 웃기지 않았다. "우리 8개월. 그것도 프리A 못 받으면." 내가 말했다. 하늘이가 소주를 따랐다. "우리 팀은 핵심 개발자가 나간대. 카카오 제안 받았다고."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이게 우리의 진짜 이야기다. 다른 데선 못 하는 말들 부모님 만나면 "잘 돼가"라고 한다. 투자자 미팅에선 "성장세 가파릅니다"라고 한다. 대학 동기들 만나면 "바쁘긴 한데 재밌어"라고 한다. 아내한테는 "곧 나아질 거야"라고 한다. 전부 거짓말은 아니다. 그냥 전부 진실도 아닐 뿐.여기선 다르다. "시리즈A 받은 회사 보면 배아프지 않아?" "개나 소나 시리즈B 받더라. 우린 시드도 간당간당한데." "경쟁사 IR 덱 봤어? 우리보다 숫자 별로던데 투자 받았어." "공동창업자랑 지분 문제로 싸웠어. 진짜 헤어질 뻔했어." 이런 말 할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다. 민준이가 물었다. "너희 팀원들한테 회사 상황 얼마나 솔직하게 말해?" "반만.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수진이가 답했다. "나도. 괜히 이직 준비하면 어쩌나." 내가 말했다. "근데 솔직하게 말 안 하면 더 불안해하더라." 하늘이가 소주잔을 비웠다. "맞아. 이번에 직원 한 명이 사실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대표 얼굴만 봐도 안다고." 우리는 웃었다. 쓴웃음. 숫자로 말하는 고독 "이번 달 MRR 얼마?" 민준이가 물었다. "1200. 지난달이랑 비슷해." "나는 800. 두 달째 제자리." "우리 400. 작년보다 줄었어." "나는... 150." 하늘이가 말을 아꼈다. 우리도 더 안 물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못 한다. 그래서 더 무겁다."근데 MRR 낮다고 망하는 건 아니잖아." 수진이가 말했다. "맞아. 토스도 처음엔." "배민도 5년 적자였고." "쿠팡은 10년." 우리는 이런 이야기로 서로를 위로한다. 성공한 회사들의 과거를 끄집어낸다. 근데 속으론 안다. 저 회사들은 살아남았지만, 수천 개는 죽었다는 걸. "그래도 해야지 뭐." 민준이가 말했다. "응. 해야지." 3차는 편의점 11시 넘어서 나왔다. 술집 문 닫을 시간.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캔맥주 하나씩 들고. "진짜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도 돼?" 하늘이가 물었다. "뭔데?" "너희 망하면 뭐 할 거야?" 공기가 무거워졌다. 우리 다 생각해본 질문이다. "취업? 근데 나이가." "프리랜서? 근데 커리어가." "또 창업? 근데 돈이." 답은 없었다. "그냥 안 망하면 되는 거 아냐?" 내가 말했다. "개논리네." 민준이가 웃었다. "근데 맞는 말 같기도." 수진이도 웃었다. 우리는 캔을 부딪쳤다. 딸각. 얇은 알루미늄 소리. "그래. 안 망하자." "건배." 집으로 가는 택시 안 12시 10분. 택시 뒷좌석. 휴대폰 확인했다. 슬랙 알림 3개. 개발팀에서 버그 리포트. 내일 아침 확인하면 된다. 아내한테 카톡 왔다. "언제 와?" "지금 가는 중" "조심히 와" 딸 사진도 보내줬다. 이불 킥오프하고 자는 모습. 화면 끄고 창밖 봤다. 한강 다리 지나간다. 오늘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 런웨이, MRR, 투자, 직원 이탈, 경쟁사. 전부 무거운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혼자 아닌 것 같아서. 나만 힘든 게 아니라서. 같이 버티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음 달 모임 날짜 단톡방에 메시지 왔다. "다음 달 셋째 주 월요일?" "ㅇㅋ" "ㄱㄱ" "+1" 나도 답장했다. "ㅇㅇ" 별 말 아닌데 중요한 약속이다. 이 모임이 없었으면, 작년에 이미 접었을 수도 있다. 수진이가 시리즈A 받기 직전에 포기하려 했을 때, 민준이가 공동창업자랑 싸워서 회사 나가려 했을 때, 하늘이가 피봇 3번째 하면서 무너졌을 때, 우리가 붙잡았다. "조금만 더." "지금 그만두면 아깝다." "다음 달에 또 보자." 그렇게 버텼다. 지금도 버티고 있다. 새벽 1시 집 도착했다. 조용히 문 열고 들어갔다. 딸은 자고 있고, 아내는 거실 소파에서 노트북 보고 있다. "왔어?" "응. 안 자?" "기다렸지." 미안했다. "동기들은 잘 있어?" "응. 다들 바쁘대." "바쁘다"는 말 속에 숨은 진짜 이야기들. 아내는 모른다. 아니, 알까? 눈치챘을 수도. "씻고 자." "응."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다음 주엔 투자사 미팅 2개. 다다음 주엔 제품 업데이트. 월말엔 또 월급날. 버텨야 한다. 동기들도 버티는데. 핸드폰 다시 켰다. 단톡방 확인했다. 민준: "오늘 고마웠어들" 수진: "ㅇㅇ 힘 났다" 하늘: "다음 달까지 살아있자" 나도 답장했다. "ㄱㄱ" 화면 껐다. 창업은 외롭다. 대표는 더 외롭다. 근데 가끔은 덜 외롭다. 이런 날 때문에.다음 달 셋째 주 월요일까지. 또 버티면 된다.

B2B SaaS, 월 MRR 1200만원의 현실

B2B SaaS, 월 MRR 1200만원의 현실

B2B SaaS, 월 MRR 1200만원의 현실 오늘도 스프레드시트를 연다 새벽 3시 18분. 또 깼다. 슬랙 알림은 없다. 당연하다. 이 시간에 누가 일하나. 노트북을 열었다. 구글 시트. "2025 재무 전망 v47" 파일. 월 MRR 1200만원. 지난달보다 80만원 올랐다. 7.1% 성장. 계산기를 두드렸다.직원 8명 인건비: 월 4200만원 사무실 + 각종 운영비: 월 600만원 서버비, 마케팅: 월 500만원 합계: 월 5300만원적자 4100만원. 매달. 통장 잔고 3억 2000만원. 런웨이 7.8개월. "이 속도면..." 중얼거렸다. 아내가 옆에서 뒤척였다.성장하고 있다는 위안 아침 8시. 출근했다. "대표님 어제 신규 가입 2건 들어왔어요!" 개발팀 막내가 밝게 말했다. "좋네. 업종이 어디야?" "제조업이랑 물류 쪽이요."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계산했다. 평균 전환율 15%. 2건 중 0.3건이 유료 전환. 기대 MRR 증가분 12만원. '12만원...' 웃었다. 쓴웃음. "잘했어. 온보딩 제대로 해줘." 성장은 하고 있다. 숫자로 보면 분명하다. 작년 이맘때 MRR 200만원이었다. 1년 만에 6배. 연간 성장률 500%. 투자 보고서에 쓰면 멋있어 보이는 숫자다. 근데 절댓값이 문제다. 1200만원. 경쟁사 '워크플로우랩'은 월 MRR 3억이라던데. 뉴스에서 봤다. 시리즈A 100억 투자 유치. 우린 프리A도 못 받는데.투자자가 원하는 건 "트랙션은 좋은데요, 속도가..." 지난주 VC 미팅. 투자심사역이 말을 흐렸다. "조금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 알아듣는다. 거절이다. 정중한. "어느 정도 지표가 나와야 할까요?" 물어봤다. 구체적으로. "음, 최소 월 MRR 5000만원 정도는..." 5000만원. 지금의 4배. 지금 속도면 1년 반 걸린다. 런웨이는 8개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악수했다. 웃었다.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한숨 쉬었다. 투자자들은 그래프의 기울기를 본다. 절댓값보다 속도. 가능성보다 확신. 월 1200만원은 애매하다. 죽지도 살지도 않는. PMF는 찾았다. 고객들은 좋아한다. 갱신율 92%. 근데 시장이 작다. B2B는 원래 느리다. '빠르게 성장하는 B2B SaaS' 모순 같은 말이다. 한국에선 특히.시나리오를 돌려본다 점심시간. 혼자 회의실. 노트북 켰다. 엑셀. "시나리오 분석 2025.xlsx" 세 가지 케이스. 보수:월 성장률 5% 유지 8개월 후 MRR 1780만원 런웨이 소진. 망함.중립:월 성장률 10% 달성 대형 고객 2개 유치 8개월 후 MRR 2600만원 브릿지 투자 1억 필요. 근데 받을 수 있나?낙관:월 성장률 20% 엔터프라이즈 고객 진입 6개월 후 MRR 3700만원 프리A 투자 유치 가능셀을 만지작거렸다. 숫자를 바꿔봤다. 성장률 15%로 조정. 2900만원. 20%로 올림. 3700만원. 25%로. 4200만원. "25%가 가능할까?" 혼잣말. 지난 3개월 평균이 7%다. 갑자기 3배 빠르게? 마케팅을 늘려도 한계가 있다. 예산도 없고. 영업 인력 늘릴까? 그럼 비용이 더 늘어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한숨. 컵라면 먹었다. 매운 것. 입맛이 없는데 억지로. 팀원들은 모른다 오후 3시. 전체 회의. "지난주 성과 공유할게요." 영업팀이 발표했다. "데모 미팅 8건, 제안서 발송 5건, 계약 2건입니다!" 박수 쳤다. 나도 쳤다. "수고했어요. 이 속도 유지하면 다음 달 목표 달성 가능하겠네요." 밝게 말했다. 팀원들이 웃었다. 기운차 보였다.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갔다. 개발팀 리드가 다가왔다. "대표님, 신규 기능 개발 우선순위 상의드리고 싶은데요." "응, 말해봐." "AI 기반 자동화 기능이요. 개발 기간 3개월 정도 예상되는데..." 고민했다. 3개월. 그때까지 우리가 있을까? "일단 MVP부터 만들어보자. 1개월 안에. 고객 반응 보고 결정." "넹!" 돌아가는 뒷모습 봤다. 저 친구는 모른다. 런웨이가 8개월인 걸. 월급이 늦어질 수도 있단 걸. 아는 건 나랑 CFO만. CFO라고 쓰고 경리 알바라고 읽지만. 팀원들한테는 말 안 한다. 말하면 불안해한다. 불안은 전염된다. 생산성이 떨어진다. '대표의 의무는 희망을 파는 거다.' 어디서 들었다. 창업가 강연에서. 맞는 말이다. 근데 힘들다. 나도 불안한데 밝은 척. 경쟁사 뉴스 밤 9시. 아직 회사. 네이버 뉴스 봤다. 습관적으로. "워크플로우랩, 시리즈B 200억 투자 유치" 제목 보자마자 심장이. 기사 열었다. "누적 투자액 350억... 월 MRR 5억 돌파... 엔터프라이즈 시장 공략..." 5억. 우리의 40배. 댓글 봤다. "부럽다" "역시 타이밍이 중요함" "1등만 살아남는 시장" 마지막 댓글. 뼈맞았다. B2B SaaS는 승자독식이다. 1등이 다 먹는다. 우린 몇 등일까? 경쟁사 리스트 머릿속에 그렸다.워크플로우랩: MRR 5억 오토메이트: MRR 2억 플로우허브: MRR 8000만원 우리: MRR 1200만원5위? 6위? "차별점이 뭐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제품이 나쁘진 않다. 고객 만족도 높다. 근데 알려지지 않았다. 마케팅 예산이 없어서. 브랜드 파워가 없다. 레퍼런스가 약하다. 대기업 고객이 없다. 그래서 대기업이 안 온다. 순환논리. "먼저 성장했으면..."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노트북 닫았다. 퇴근했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 11시 막차. 사람 없다. 앉았다. 핸드폰 열었다. 아내한테 카톡. "이제 출발. 30분 후 도착" "ㅇㅇ 조심히와" 짧다. 피곤한가보다. 당연하다. 매일 늦으니까. 창밖 봤다. 어둡다. '이 속도로 가면 정말 살아남을까?' 질문이 맴돈다. 매일. 월 MRR 1200만원. 성장하고 있다. 근데 느리다. 느린 게 죄다. 스타트업에선. 빠르게 망하거나 빠르게 성장하거나. 둘 중 하나. 느리게 성장? 그냥 천천히 죽는 거다. "속도를 내야 한다." 중얼거렸다. 옆에 아무도 없는데 말했다. 어떻게? 모르겠다. 솔직히. 마케팅 예산 늘릴까? 돈 없다. 영업 인력 늘릴까? 그럼 런웨이가 더 줄어든다. 제품 개선? 이미 하고 있다. 피봇? 지금 것도 제대로 못 키웠는데? '정답이 없다.' 스타트업은 원래 그런 거다. 정답 없는 문제. 그래도 풀어야 한다. 못 풀면 망한다. 핸드폰 꺼냈다. 메모장. "해야 할 것들"대형 고객 1개 무조건 따기 - MRR 300만원 이상 마케팅 효율 올리기 - CAC 30% 절감 목표 제품 개선 속도 2배로 - 개발 스프린트 2주→1주 브릿지 투자 옵션 알아보기 - 최소 5000만원적었다. 구체적으로. 근데 적어놓으면 뭐해. 실행이 문제지. "내일부터." 혼잣말. 매일 하는. 집 앞 현관문 열었다. 조용하다. 아내는 자고 있다. 딸도. 거실 불 켰다. 어두컴컴했던 집이 밝아졌다. 냉장고 열었다. 맥주 한 캔. 소파에 앉았다. 마셨다. 노트북 가방 봤다. 다시 열까? 스프레드시트 한 번 더 볼까? 시나리오 하나 더 돌려볼까? "...그만하자." 맥주 다 마셨다. 캔을 구겼다. 씻으러 갔다. 거울 봤다. 36살. 눈 밑에 다크서클. 머리숱 줄었다. 확실히. "버틸 수 있을까?" 거울 속 나한테 물었다. 대답 없다. 당연하다. 버텨야 한다. 선택지가 없다. 직원 8명 먹여살려야 한다. 투자금 3억 책임져야 한다. 가족 먹여살려야 한다.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또 혼잣말. 성장해야 한다. 빠르게. 근데 어떻게? 내일 생각하자. 오늘은 자자. 침대 누웠다. 아내 옆에. 눈 감았다. '월 MRR 1200만원. 다음 달은 1300만원 만들자.' 100만원. 8.3% 성장. 가능하다. 해야 한다. 잠들었다. 3시간 후 다시 깰 거다. 그래도 잤다.MRR 1200만원. 성장하는데 느리다. 내일도 싸운다. 숫자랑.

부모님은 '다시 취직해라' 하신다

부모님은 '다시 취직해라' 하신다

명절이 무섭다 명절 전날 밤이다. 짐 싸면서 한숨 나온다. 부모님 뵈러 가는데 무겁다. 선물 챙기고, 마음은 안 챙겨진다. 전화 왔다. 어머니다. "창업아, 내일 몇 시에 와?" "11시쯤요." "그래, 조심히 와. 근데... 아버지가 할 말씀 있으신대." 끊었다. 뭔지 안다. 또 그 얘기다. 지난 추석 때도 그랬다. 설날에도 그랬다. 이번에도 피할 수 없다. '사업 접고 다시 취직해라.'네이버를 왜 나왔냐고 5년 다녔다. 네이버 PM. 연봉 8천만원. 스톡옵션 있었다. 복지 좋았다. 부모님 자랑이었다. 그만뒀다. 3년 전이다. 부모님은 이해 못 하신다. 지금도. "네이버면 평생 다녀도 되는 곳인데." "그걸 왜 차버려?" "지금 뭐 하는 건데, 그게 네이버보다 나아?" 대답 못 한다. 현재 월급? 0원이다. 투자금으로 버틴다. 통장 잔고? 개인 돈 2300만원 남았다. 숫자로 보면 부모님 말씀이 맞다. 아버지는 평생 공무원이셨다. 안정이 최고였다. 어머니는 은행원이셨다. 정년까지 다녔다. 그분들 눈에 내 선택은 미친 짓이다. "요즘 경기가 어떤데 창업을 해." "망하면 어쩌려고." "애는 벌써 셋째인데." 틀린 말씀 아니다. 전부 맞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투자금은 남의 돈이라고 추석날이다. 친척들 모였다. "창업이 잘 돼?" "요즘 벌이는 어때?" "투자는 많이 받았어?" 시드 3억 받았다고 했다. 다들 놀란다. "와, 3억!" "돈 많이 벌겠네!" 아니다. 착각이다.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돈 네 돈 아니잖아." "남의 돈으로 사업하는 건데." "못 갚으면 어쩔 거야." 맞다. 투자금은 빚이다. 갚아야 한다. 수익으로. 현재 월매출 1200만원이다. 8개월 전 500만원이었다. 성장한다. 근데 느리다. 런웨이 8개월 남았다. 프리A 못 받으면? 끝이다. 직원 8명 월급, 사무실 임대료, 서버비, 마케팅비. 한 달에 4000만원 나간다. 이 숫자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그만둬, 당장." 확실하다.실패 사례를 보내주신다 카톡이 온다. 어머니다. 기사 링크다. "스타트업 폐업률 90%... 창업 5년 내 대부분 문 닫아" 또 온다. "청년 창업 실패자 5년간 3배 증가" 또 온다. "빚더미 앉은 전 창업자의 고백" 받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어머니는 걱정하신다. 진심으로. 아들이 실패할까봐. 빚더미에 앉을까봐. 가족이 힘들어질까봐. 사랑이다. 안다. 근데 무겁다. 전화 온다. "창업아, 기사 봤어?" "네." "이런 거 보면 엄마는 무섭더라."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잖아." 대답 못 했다. 사실 나도 무섭다. 밤마다 검색한다. '스타트업 실패 사례', 'B2B SaaS 망한 이유', '시드 투자 후 폐업'. 읽는다. 전부. 새벽 2시까지. 우리랑 비슷한 케이스 많다. 다 망했다. 나도 저렇게 될까? 모른다. "취직하면 바로 팀장이잖아" 아버지 친구분이 인사팀장이시다. 큰 기업이다. "경력 5년이면 바로 팀장으로 들어올 수 있어." "연봉도 창업 때보다 안정적이고." "한번 생각해봐." 제안 받았다. 3개월 전이다. 아버지가 연락처 주셨다. "한번 만나보기만 해라." 안 만났다. "왜 안 만나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사업 접고 다시 가면 돼." 피봇이 아니라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이해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36살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력서 내면 연락 온다. PM 경력 있다. 레퍼런스 괜찮다. 월급 700만원, 스톡옵션, 4대보험, 퇴직금. 안정이다. 근데 못 한다. 왜? 모르겠다. 그냥 못 한다. 이미 시작했다. 직원 8명이 나를 믿는다. 투자자가 기대한다. 고객사 12곳이 우리 솔루션 쓴다. 여기서 그만두면? 전부 버리는 거다. 그럴 수 없다. 아내가 버티는 이유 아내는 아직 다닌다. 대기업 마케터다. 연봉 6500만원이다. 우리 집은 아내 월급으로 산다. 대출 이자, 생활비, 딸 어린이집비. 미안하다. 매일. "미안해." "뭐가?" "내가 벌어와야 하는데." "괜찮아. 나 아직 다니잖아." 아내는 불평 안 한다. 신기하다. 시댁에서는 압박한다. "사위가 언제까지 그럴 거야?" "애도 있는데 좀 안정적으로 살아야지." 아내가 막는다. 매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잘 될 거예요." 고맙다. 진짜. 근데 불안하다. 아내가 언제까지 버틸까? 지치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힘들어하면? 새벽에 이런 생각 한다. '차라리 취직할까?' 아침이 오면 지운다. 출근한다. 일한다. 반복이다. 성공하면 이해하실까 가끔 상상한다. 프리A 받았다. 10억이다. 밸류 50억 찍었다. 언론에 났다. "주목받는 B2B SaaS 스타트업" 부모님께 기사 보여드린다. "아빠, 봤어요?" "그래... 잘됐구나." 인정받는다. 처음으로. "네이버 그만둔 거 잘했네." "네 선택이 맞았어." 상상이다. 아직. 현실은 다르다. 런웨이 8개월이다. VC 미팅 5개 남았다. 다 거절당하면? 끝이다. 투자 못 받으면 정리한다. 직원들 보내고, 사무실 빼고, 부모님께 말씀드린다. "아빠 말이 맞았어요. 다시 취직할게요."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확률? 40%쯤 된다. 무겁다. 명절 다음날 월요일 출근했다. 성수동 사무실이다. 팀원들이 묻는다. "대표님, 연휴 잘 보내셨어요?" "응, 잘 쉬었어." 거짓말이다. 하나도 안 쉬었다. 부모님이랑 대화하고, 친척들 질문 받고, 아내 눈치 보고, 새벽에 현금흐름표 봤다. 근데 팀원들 앞에서는 밝게 웃는다. "오늘 회의 2시지? 준비됐어?" "네!" 회의 시작한다. 이번 주 스프린트 계획이다. 기능 하나 더 붙인다. 고객사 요청이다. 개발 일정 2주 걸린다. "할 수 있어?" "해보겠습니다." 팀원들은 모른다. 내 통장에 2300만원밖에 안 남았다는 거. 부모님이 '그만둬라' 하신다는 거. 알려줄 수 없다. 대표니까. 회의 끝났다. 혼자 남았다. 핸드폰 본다. 어머니한테 문자 왔다. "창업아, 건강 챙겨. 너무 무리하지 말고." 눈물 날 뻔했다.부모님은 틀리지 않으셨다. 나도 확신 없다. 그냥 하는 거다. 끝까지.

직원 8명, 8개의 월급. 그리고 내 책임

직원 8명, 8개의 월급. 그리고 내 책임

직원 8명, 8개의 월급. 그리고 내 책임 새벽 3시 17분 또 눈이 떴다. 침대 옆 휴대폰을 집었다. 새벽 3시 17분.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다. 딸도 자기 방에서 잘 거다. 나만 깼다. 슬랙을 켰다. 별일 없다. 당연하다. 새벽 3시에 무슨 일이 있겠어. 은행 앱을 켰다. 회사 통장 잔고. 1억 8,200만원. 직원 8명 월급. 2,800만원. 사무실 월세. 180만원. 클라우드 서버비. 90만원. 각종 SaaS 구독료. 45만원. 3,115만원. 6월 지출만 계산한 거다. 마케팅 비용, 세금, 기타 잡비 빼고. 런웨이 8개월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6개월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안 온다.네이버를 나온 날 2년 6개월 전. 네이버 PM 5년차였다. 연봉 8,500만원. 스톡옵션 좀 있었다. 사표 쓰는 날, 팀장이 물었다. "진짜 나가?" "네." "후회 안 해?"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무서웠다. 그래도 나왔다. 내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누가 시키는 기획이 아니라, 내가 믿는 걸 만들고 싶었다. 창업 동기 모임에서 만난 개발자 친구가 CTO로 합류했다. 둘이서 시작했다. 3개월 뒤 시드 투자 3억 받았다. 그때는 모든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이제 사람 뽑아야지." 첫 직원을 뽑았다. 개발자였다. 연봉 5,000만원 제시했다. 대기업보다 적었지만, 스톡옵션 1%를 줬다. "잘 부탁합니다, 대표님." 그 말이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월말이 다가온다 오늘이 6월 23일이다. 월급날은 25일이다. 이틀 남았다. 통장에 돈은 있다. 문제없다. 이번 달은. 근데 매달 이렇게 세는 게 이상하다. "이번 달은 괜찮아." 그럼 다음 달은? 그다음 달은? MRR은 1,200만원이다. 지난달보다 15% 늘었다. 좋은 거다. 성장하는 거다. 근데 월 지출이 4,500만원이다.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하면. 매달 3,300만원이 증발한다. 엑셀을 켰다. 시나리오를 돌렸다. 보수 시나리오: MRR 월 10% 성장, 4개월 뒤 런웨이 소진 중립 시나리오: MRR 월 20% 성장, 6개월 뒤 프리A 투자 유치 낙관 시나리오: 대형 고객 2곳 계약, 8개월 버팀 중립이 현실적이다. 근데 20% 성장이 쉬운가? 지난달 영업팀이 5곳 미팅 잡았다. 계약은 1곳. 이번 달은 8곳 미팅. 계약은 2곳. 전환율이 25%다. 나쁘지 않다. 근데 충분한가? 프리A 투자 받으려면 MRR 3,000만원은 돼야 한다는데. 지금 1,200만원. 2.5배를 6개월 안에. 가능한가? 모르겠다.팀원들 앞에서 아침 9시. 데일리 스탠드업. "어제 고객사 미팅 어땠어요?" "좋았습니다. 다음 주에 데모 보여드리기로 했어요." "좋네. 준비 잘해보자."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그 고객사, 예산이 별로 없다. 알고 있다. 개발팀 막내가 물었다. "대표님, 이번 기능 개발 우선순위 어떻게 할까요?" "A 기능 먼저. 고객 요청 많았던 거." "넹!" 밝게 대답한다. 저 친구 연봉 4,200만원이다. 2년차 개발자. 대기업 가면 더 받는다. 여기 온 이유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성장시켜줄 수 있나? 나도 모르겠는데? 회의가 끝났다. CTO가 따로 물었다. "형, 괜찮아?" "응. 왜?" "요즘 얼굴이 안 좋아." "피곤해서 그래. 괜찮아." 거짓말이다. 괜찮지 않다. 근데 말할 수 없다. CTO한테도. 말하는 순간, 불안이 전염된다. 팀 전체가 흔들린다. 대표는 불안해하면 안 된다. 내가 배운 거다.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봤다. 다크서클. 핏기 없는 얼굴. 머리카락이 좀 빠진 것 같기도. 세수를 했다. 거울에 대고 웃어봤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혼잣말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책임의 무게 PM이었을 때는 몰랐다. 내가 일 못하면? 팀장한테 혼나고 끝이다. 연봉 좀 덜 받고 끝이다. 근데 지금은? 내가 일 못하면, 8명이 거리로 나간다. 내가 투자 못 받으면, 8명이 다른 직장 알아봐야 한다. 내가 고객 못 구하면, 8명의 월급이 끊긴다. 8명이 아니다. 8명의 가족까지 치면 20명이 넘는다. 개발팀 형준이는 작년에 결혼했다. 부인이 임신 중이다. 영업팀 수진이는 부모님 병원비 대고 있다고 들었다. 디자이너 민지는 동생 학비 지원한다고 했다. 다 안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게 됐다. 점심 먹으면서 하는 얘기들. "요즘 집값이 너무 올라서요." "애 어린이집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요." "부모님이 편찮으셔서요." 다 듣는다. 그리고 통장 잔고를 본다. 1억 8,200만원. 6개월. 6개월 안에 투자를 받거나, 매출을 3배로 늘리거나. 아니면. 아니면 뭐? 8명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서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IR 덱 51번째 수정 저녁 8시. 팀원들 다 퇴근했다. 나만 남았다. IR 덱을 켰다. 51번째 수정이다. 슬라이드 1: 문제 정의 슬라이드 2: 솔루션 슬라이드 3: 시장 크기 슬라이드 4: 비즈니스 모델 슬라이드 5: 트랙션 트랙션 슬라이드를 봤다. MRR 1,200만원. 그래프는 우상향이다. 좋아 보인다. 근데 VC들은 안다. 이게 충분하지 않다는 걸. 지난주 미팅에서 들었다. "좋은데요. 근데 조금 더 트랙션 보고 싶어요." 트랙션. 얼마나 더? 3,000만원? 5,000만원? 언제까지? 3개월? 6개월?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이게 제일 무섭다. 거절이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근데 보류는? 희망을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다. 슬라이드를 수정했다. 고객 인터뷰 내용을 추가했다. 정량적 효과를 넣었다. "업무 시간 37% 단축" "휴먼 에러 62% 감소" 좋아 보인다. 그런데 충분한가? 저장했다. IR_deck_v51.pptx. 다음 주에 VC 2곳 미팅이다. 또 물을 거다. "트랙션이..." 알고 있다. 부족하다는 거. 그래도 간다. 갈 수밖에 없다. 런웨이가 6개월이니까. 아내 앞에서 집에 도착했다. 밤 11시. 아내가 거실에 있었다. "왔어?" "응." "밥 먹었어?" "응. 먹었어." 거짓말이다.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 먹었다. 아내가 물었다. "요즘 힘들어?" "아니. 괜찮아." 또 거짓말이다. "얼굴이 안 좋아 보여." "피곤해서 그래." 이건 진짜다. 아내는 대기업 마케터다. 연봉 6,800만원. 우리 집 주 수입원이다. 내가 창업한다고 했을 때, 말렸다. "지금 네이버 다니는 게 안정적이잖아." "나도 알아. 근데 해보고 싶어." "실패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2년 반이 지났다. 실패는 안 했다. 근데 성공도 안 했다. 어정쩡하다. 아내가 또 물었다. "회사는 잘돼가?" "응. 잘돼가." 세 번째 거짓말이다. "투자 받을 수 있어?" "할 수 있어. 괜찮아." 네 번째. 아내는 눈치챘을 거다. 다 알 거다. 근데 묻지 않는다. 나도 말하지 않는다. 서로 모른 척한다. 그게 편하니까. 딸 방에 들어갔다. 자고 있었다. 작은 손. 작은 발. 3살. 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 대학까지 보내야 한다. 학원비. 등록금. 생활비. 얼마나 드나? 3억? 5억? 지금 회사 통장에 1억 8,200만원. 6개월. 6개월 뒤에 이 아이한테 뭐라고 말하지? "아빠 회사가 안돼서..." 상상하기 싫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잠이 안 온다. 그래도 출근한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렸다. 6시 30분. 3시간 잤다. 일어났다. 샤워했다. 면도했다. 정장은 아니고, 깔끔한 셔츠를 입었다. 거울을 봤다. "오늘도 괜찮은 척하자." 현관문을 열었다. 지하철을 탔다. 성수역까지 40분. 사무실에 도착했다. 7시 50분. 아직 아무도 없다. 커피를 내렸다. 노트북을 켰다. 슬랙에 메시지가 왔다. "대표님, 오늘 고객사 미팅 준비됐습니다!" 영업팀 수진이다. 답장을 쳤다. "좋아요. 잘 부탁해요 👍" 이모지까지 넣었다. 오전 9시. 팀원들이 하나씩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제 야근하셨어요? 불 켜져 있던데." "아니, 일찍 왔어." 또 거짓말이다. 데일리 스탠드업을 시작했다. "오늘 각자 할 일 공유해봅시다." 팀원들이 말한다. 개발 일정. 디자인 시안. 영업 미팅. 다 듣는다.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오늘도 화이팅!" 밝게 말했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에 앉았다. 은행 앱을 켰다. 1억 8,200만원. 어제랑 똑같다. 내일도 똑같을 거다. 그다음 날도. 월급날까지. 그리고 월급날이 지나면. 1억 5,400만원. 한 달 더 줄어든다. 엑셀을 켰다. 시나리오를 또 돌렸다. 보수: 4개월 중립: 6개월 낙관: 8개월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현실은 냉정하다. 그래도 일한다. 왜? 8명이 나를 믿고 있으니까. 8개의 월급이 내 책임이니까. 그게 대표라는 거니까.새벽 3시에 눈 뜨는 건 여전하다. 근데 아침엔 웃으면서 출근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