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Dec, 2025
직원 8명, 8개의 월급. 그리고 내 책임
직원 8명, 8개의 월급. 그리고 내 책임 새벽 3시 17분 또 눈이 떴다. 침대 옆 휴대폰을 집었다. 새벽 3시 17분.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다. 딸도 자기 방에서 잘 거다. 나만 깼다. 슬랙을 켰다. 별일 없다. 당연하다. 새벽 3시에 무슨 일이 있겠어. 은행 앱을 켰다. 회사 통장 잔고. 1억 8,200만원. 직원 8명 월급. 2,800만원. 사무실 월세. 180만원. 클라우드 서버비. 90만원. 각종 SaaS 구독료. 45만원. 3,115만원. 6월 지출만 계산한 거다. 마케팅 비용, 세금, 기타 잡비 빼고. 런웨이 8개월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6개월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안 온다.네이버를 나온 날 2년 6개월 전. 네이버 PM 5년차였다. 연봉 8,500만원. 스톡옵션 좀 있었다. 사표 쓰는 날, 팀장이 물었다. "진짜 나가?" "네." "후회 안 해?"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무서웠다. 그래도 나왔다. 내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누가 시키는 기획이 아니라, 내가 믿는 걸 만들고 싶었다. 창업 동기 모임에서 만난 개발자 친구가 CTO로 합류했다. 둘이서 시작했다. 3개월 뒤 시드 투자 3억 받았다. 그때는 모든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이제 사람 뽑아야지." 첫 직원을 뽑았다. 개발자였다. 연봉 5,000만원 제시했다. 대기업보다 적었지만, 스톡옵션 1%를 줬다. "잘 부탁합니다, 대표님." 그 말이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월말이 다가온다 오늘이 6월 23일이다. 월급날은 25일이다. 이틀 남았다. 통장에 돈은 있다. 문제없다. 이번 달은. 근데 매달 이렇게 세는 게 이상하다. "이번 달은 괜찮아." 그럼 다음 달은? 그다음 달은? MRR은 1,200만원이다. 지난달보다 15% 늘었다. 좋은 거다. 성장하는 거다. 근데 월 지출이 4,500만원이다.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하면. 매달 3,300만원이 증발한다. 엑셀을 켰다. 시나리오를 돌렸다. 보수 시나리오: MRR 월 10% 성장, 4개월 뒤 런웨이 소진 중립 시나리오: MRR 월 20% 성장, 6개월 뒤 프리A 투자 유치 낙관 시나리오: 대형 고객 2곳 계약, 8개월 버팀 중립이 현실적이다. 근데 20% 성장이 쉬운가? 지난달 영업팀이 5곳 미팅 잡았다. 계약은 1곳. 이번 달은 8곳 미팅. 계약은 2곳. 전환율이 25%다. 나쁘지 않다. 근데 충분한가? 프리A 투자 받으려면 MRR 3,000만원은 돼야 한다는데. 지금 1,200만원. 2.5배를 6개월 안에. 가능한가? 모르겠다.팀원들 앞에서 아침 9시. 데일리 스탠드업. "어제 고객사 미팅 어땠어요?" "좋았습니다. 다음 주에 데모 보여드리기로 했어요." "좋네. 준비 잘해보자."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그 고객사, 예산이 별로 없다. 알고 있다. 개발팀 막내가 물었다. "대표님, 이번 기능 개발 우선순위 어떻게 할까요?" "A 기능 먼저. 고객 요청 많았던 거." "넹!" 밝게 대답한다. 저 친구 연봉 4,200만원이다. 2년차 개발자. 대기업 가면 더 받는다. 여기 온 이유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성장시켜줄 수 있나? 나도 모르겠는데? 회의가 끝났다. CTO가 따로 물었다. "형, 괜찮아?" "응. 왜?" "요즘 얼굴이 안 좋아." "피곤해서 그래. 괜찮아." 거짓말이다. 괜찮지 않다. 근데 말할 수 없다. CTO한테도. 말하는 순간, 불안이 전염된다. 팀 전체가 흔들린다. 대표는 불안해하면 안 된다. 내가 배운 거다.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봤다. 다크서클. 핏기 없는 얼굴. 머리카락이 좀 빠진 것 같기도. 세수를 했다. 거울에 대고 웃어봤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혼잣말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책임의 무게 PM이었을 때는 몰랐다. 내가 일 못하면? 팀장한테 혼나고 끝이다. 연봉 좀 덜 받고 끝이다. 근데 지금은? 내가 일 못하면, 8명이 거리로 나간다. 내가 투자 못 받으면, 8명이 다른 직장 알아봐야 한다. 내가 고객 못 구하면, 8명의 월급이 끊긴다. 8명이 아니다. 8명의 가족까지 치면 20명이 넘는다. 개발팀 형준이는 작년에 결혼했다. 부인이 임신 중이다. 영업팀 수진이는 부모님 병원비 대고 있다고 들었다. 디자이너 민지는 동생 학비 지원한다고 했다. 다 안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게 됐다. 점심 먹으면서 하는 얘기들. "요즘 집값이 너무 올라서요." "애 어린이집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요." "부모님이 편찮으셔서요." 다 듣는다. 그리고 통장 잔고를 본다. 1억 8,200만원. 6개월. 6개월 안에 투자를 받거나, 매출을 3배로 늘리거나. 아니면. 아니면 뭐? 8명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서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IR 덱 51번째 수정 저녁 8시. 팀원들 다 퇴근했다. 나만 남았다. IR 덱을 켰다. 51번째 수정이다. 슬라이드 1: 문제 정의 슬라이드 2: 솔루션 슬라이드 3: 시장 크기 슬라이드 4: 비즈니스 모델 슬라이드 5: 트랙션 트랙션 슬라이드를 봤다. MRR 1,200만원. 그래프는 우상향이다. 좋아 보인다. 근데 VC들은 안다. 이게 충분하지 않다는 걸. 지난주 미팅에서 들었다. "좋은데요. 근데 조금 더 트랙션 보고 싶어요." 트랙션. 얼마나 더? 3,000만원? 5,000만원? 언제까지? 3개월? 6개월?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이게 제일 무섭다. 거절이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근데 보류는? 희망을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다. 슬라이드를 수정했다. 고객 인터뷰 내용을 추가했다. 정량적 효과를 넣었다. "업무 시간 37% 단축" "휴먼 에러 62% 감소" 좋아 보인다. 그런데 충분한가? 저장했다. IR_deck_v51.pptx. 다음 주에 VC 2곳 미팅이다. 또 물을 거다. "트랙션이..." 알고 있다. 부족하다는 거. 그래도 간다. 갈 수밖에 없다. 런웨이가 6개월이니까. 아내 앞에서 집에 도착했다. 밤 11시. 아내가 거실에 있었다. "왔어?" "응." "밥 먹었어?" "응. 먹었어." 거짓말이다.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 먹었다. 아내가 물었다. "요즘 힘들어?" "아니. 괜찮아." 또 거짓말이다. "얼굴이 안 좋아 보여." "피곤해서 그래." 이건 진짜다. 아내는 대기업 마케터다. 연봉 6,800만원. 우리 집 주 수입원이다. 내가 창업한다고 했을 때, 말렸다. "지금 네이버 다니는 게 안정적이잖아." "나도 알아. 근데 해보고 싶어." "실패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2년 반이 지났다. 실패는 안 했다. 근데 성공도 안 했다. 어정쩡하다. 아내가 또 물었다. "회사는 잘돼가?" "응. 잘돼가." 세 번째 거짓말이다. "투자 받을 수 있어?" "할 수 있어. 괜찮아." 네 번째. 아내는 눈치챘을 거다. 다 알 거다. 근데 묻지 않는다. 나도 말하지 않는다. 서로 모른 척한다. 그게 편하니까. 딸 방에 들어갔다. 자고 있었다. 작은 손. 작은 발. 3살. 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 대학까지 보내야 한다. 학원비. 등록금. 생활비. 얼마나 드나? 3억? 5억? 지금 회사 통장에 1억 8,200만원. 6개월. 6개월 뒤에 이 아이한테 뭐라고 말하지? "아빠 회사가 안돼서..." 상상하기 싫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잠이 안 온다. 그래도 출근한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렸다. 6시 30분. 3시간 잤다. 일어났다. 샤워했다. 면도했다. 정장은 아니고, 깔끔한 셔츠를 입었다. 거울을 봤다. "오늘도 괜찮은 척하자." 현관문을 열었다. 지하철을 탔다. 성수역까지 40분. 사무실에 도착했다. 7시 50분. 아직 아무도 없다. 커피를 내렸다. 노트북을 켰다. 슬랙에 메시지가 왔다. "대표님, 오늘 고객사 미팅 준비됐습니다!" 영업팀 수진이다. 답장을 쳤다. "좋아요. 잘 부탁해요 👍" 이모지까지 넣었다. 오전 9시. 팀원들이 하나씩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제 야근하셨어요? 불 켜져 있던데." "아니, 일찍 왔어." 또 거짓말이다. 데일리 스탠드업을 시작했다. "오늘 각자 할 일 공유해봅시다." 팀원들이 말한다. 개발 일정. 디자인 시안. 영업 미팅. 다 듣는다.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오늘도 화이팅!" 밝게 말했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에 앉았다. 은행 앱을 켰다. 1억 8,200만원. 어제랑 똑같다. 내일도 똑같을 거다. 그다음 날도. 월급날까지. 그리고 월급날이 지나면. 1억 5,400만원. 한 달 더 줄어든다. 엑셀을 켰다. 시나리오를 또 돌렸다. 보수: 4개월 중립: 6개월 낙관: 8개월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현실은 냉정하다. 그래도 일한다. 왜? 8명이 나를 믿고 있으니까. 8개의 월급이 내 책임이니까. 그게 대표라는 거니까.새벽 3시에 눈 뜨는 건 여전하다. 근데 아침엔 웃으면서 출근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 03 Dec, 2025
경쟁사 뉴스레터를 보는 시간
새벽 4시 15분 잠이 안 와서 노트북을 열었다. 슬랙에 아직 안 읽은 메시지 47개. 메일함에 미팅 요청 3건. 그리고 뉴스레터 하나. "○○테크, 시리즈A 120억 투자 유치" 심장이 멈췄다.정확히는 3초간 숨을 못 쉬었다. 화면을 다시 봤다. 120억. 시리즈A. 리드 투자자가 저기네. 우리가 3번 거절당한 그 VC. 마우스 커서가 떨렸다. 기사를 클릭했다. "월 매출 3000만원 돌파, 전년 대비 400% 성장" "기업 고객 80곳 확보" "시장 점유율 1위 목표" 우리 월 매출은 1200만원이다. 기업 고객은 23곳. 시드 투자 3억 받은 게 1년 반 전이다. 새벽 4시에 이걸 보고 있다. 스크롤을 내렸다 대표 인터뷰가 나왔다. 사진도 있다. 밝게 웃고 있다. 팀원들이랑 같이 찍은 단체 사진. 다들 행복해 보인다. 사무실은 강남 어딘가. 창문이 크다. "시장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고객들이 먼저 찾아오는 단계죠." 읽으면서 욕이 나왔다. 우리는 영업팀 2명이 발로 뛴다. 한 곳 계약하는 데 평균 3개월. 데모 10번 하면 1곳 계약. 그것도 소액 플랜. 핸드폰을 내려놨다. 다시 들었다. 기사를 캡처했다. 슬랙 '경영진' 채널에 올릴까 말까 고민했다. 올리지 않았다. 대신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비교하기 시작했다 우리 MRR: 1200만원 저기 MRR: 3000만원 우리 성장률: 월평균 8% 저기 성장률: 전년 대비 400% 우리 투자금: 3억 (1년 6개월 전) 저기 투자금: 120억 (지금) 런웨이 계산을 다시 했다. 현금 2억 4000만원 남음. 월 번레이트 3200만원. 7.5개월 남음. 7.5개월 안에 시리즈A를 따내든지. 아니면 망하든지. 저기는 120억으로 2년은 버틴다. 마케팅 돌리고 개발자 더 뽑고 영업 조직 키우고. 그러면 시장 점유율은 더 벌어진다. 우리는 7.5개월. 키보드에 이마를 박았다. 5시 30분 커피를 내렸다. 다섯 번째다. 위가 쓰리다. 약 먹어야 하는데 귀찮다. 기사를 다시 읽었다. 댓글도 봤다. "축하합니다!" "대단하시네요" "부럽습니다 ㅠㅠ" 링크드인도 확인했다. 저기 대표 포스팅. 좋아요 430개. 댓글 68개. 다들 축하한다고 난리다. 우리가 시드 받았을 때는 좋아요 12개였다. 핸드폰을 뒤집었다.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깜빡인다. 바꿔야 하는데 계속 미뤘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저 회사는 뭐가 달랐을까. 우리 제품이 나쁜 건가. 세일즈를 못 한 건가. IR을 못 한 건가. 타이밍이 나빴나. 운이 없는 건가. 아니면 내가 부족한 건가.출근 시간 7시가 됐다. 첫 출근은 보통 개발팀 막내다. 7시 40분쯤 온다. 화장실 가서 세수했다. 거울을 봤다. 눈 밑이 까맣다. 36살 얼굴이 아니다. '괜찮은 척'을 준비했다. 슬랙에 들어갔다. 저녁에 올라온 개발 진행 상황 확인. 댓글 달았다. "고생했어요 👍" 이모티콘까지. 메일 3통 답장 썼다. IR 자료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43페이지 중 6페이지 숫자 수정. 경쟁사 분석 문서를 만들었다. 저기 강점: 자금력, 팀 규모, 마케팅 예산 우리 강점: 제품 완성도, 고객 만족도, 운영 효율 거짓말은 아니다. 우리 NPS 점수가 더 높다. 78점. 저기는 65점. 고객들은 우리 제품을 좋아한다. 문제는 고객 수가 23곳이란 거다. 7시 50분. 문 여는 소리. "대표님 벌써 오셨어요?" 웃었다. "응, 일찍 일어나서." "커피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너 먼저 마셔." 모니터를 닫았다. 경쟁사 뉴스는 안 보이게. 아침 스탠드업 9시 30분. 전체 회의. 다들 모였다. 8명.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평균 나이 29살. 다들 열심히 한다. 월급은 시장 평균의 70%. 스톡옵션으로 메꿨다. "이번 주 목표 공유할게요." 개발팀: 대시보드 개편 80% 완료 영업팀: 신규 미팅 6건 잡음 기획팀: 사용자 인터뷰 3건 진행 다들 잘하고 있다. 진짜로. "수고하고 있어요. 이번 주도 화이팅!" 회의 끝. 다들 흩어졌다. 영업팀 리드가 다가왔다. "대표님, ○○테크 투자 소식 보셨어요?" 심장이 또 떨렸다. 티 안 냈다. "응, 봤어." "우리도... 괜찮을까요?" 3초 멈췄다. "우리는 우리 길 가는 거야. 제품이 더 좋잖아. 고객들 반응 봐. 다들 만족한다고 하잖아." "그렇긴 한데... 저기가 마케팅 돌리기 시작하면..." "그래서 우리가 더 빨리 움직여야지. 프리A 준비 잘하고 있어. 다음 주에 VC 2곳 더 만나." "알겠습니다." 돌아갔다. 표정이 조금 풀렸다. 나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한숨 쉬었다. 3초만 쉬고 나왔다. 오후 2시 점심 먹고 카페에 나왔다. 혼자. 노트북 열었다. 경쟁사 웹사이트 들어갔다. 하나하나 클릭해봤다. UI는 우리가 낫다. 기능은 비슷하다. 가격은 저기가 20% 비싸다. 그런데도 고객이 3배 많다. 이유를 생각했다. 브랜딩인가. 마케팅인가. 영업력인가. 네트워크인가. 아니면 투자금의 차이인가. VC 미팅 때마다 듣는다. "트랙션이 더 필요합니다." 트랙션 만들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 뽑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 받으려면 트랙션이 필요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저기는 120억으로 그 고리를 끊었다. 우리는 7.5개월 안에 끊어야 한다. 핸드폰이 울렸다. VC 파트너. "대표님, 다음 주 화요일 미팅 가능하세요?" "네, 가능합니다." "IR 자료 미리 보내주시면 검토하고 만나죠."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끊었다. 43페이지 IR 덱을 열었다. 다시 봤다. "시장 규모 5조원" 맞다. "월 MRR 성장 8%" 맞다. "고객 만족도 78점" 맞다. 그런데 옆 슬라이드에 경쟁사 현황 넣어야 하나. "경쟁사 ○○테크, 시리즈A 120억 유치" 넣으면 솔직한 거다. 안 넣으면 숨기는 거다. 고민했다. 넣었다. 그 밑에 한 줄 더. "차별점: 제품 완성도 및 고객 밀착 운영 모델" 저장했다. PDF로 내보냈다. 메일 보냈다. 노트북을 닫았다. 커피를 다 마셨다. 식었다. 퇴근길 밤 11시. 사무실을 나왔다. 지하철에 앉았다. 핸드폰 열었다. 링크드인 알림 17개. 다 저 회사 관련이다. 업계 사람들이 공유하고 댓글 달고 난리다. "게임 체인저" "시장 판도가 바뀔 듯" "이제 진짜 시작이네요" 핸드폰을 껐다. 창밖을 봤다. 지하철은 어둠 속을 달린다. 집에 도착했다. 12시. 아내는 자고 있다. 딸도 자고 있다. 조용히 씻었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 할 일을 생각했다. VC 미팅 준비. 제품 로드맵 점검. 영업 파이프라인 확인. 개발 일정 체크. 그리고 프리A 마감. 7.5개월. 눈을 감았다. 저기는 120억으로 2년을 달린다. 우리는 2억 4000만원으로 7.5개월. 그런데 포기는 안 한다. 아직은.새벽엔 패배자가 됐다가, 아침엔 대표가 된다. 매일.
- 02 Dec, 2025
월급 날 전날 밤, 통장 잔고 보기
월급 날 전날 밤, 통장 잔고를 본다 계산의 밤 새벽 1시 52분. 노트북 화면의 스프레드시트가 눈에 들어온다. 월급 날이 내일이다. 매달 이맘때면 어김없이 이 자리에 앉는다. 사무실 불도 꺼졌다. 성수동 공유오피스의 창밖으로 서울 야경이 흐릿하게 보인다. 밤샘 작업 중인 다른 팀들의 불빛이 띄엄띄엄 보인다. 저 불빛들 중 몇 개가 같은 심정일까. 계산기를 든다. 스마트폰의 기본 계산기 앱이다. 이미 엑셀로는 다 계산했지만, 손으로 다시 한 번 더 눌러본다. 손가락이 비현실적으로 움직인다. 매출 1200만원. 이건 확정이다. 어제 영업팀에서 최종 계약금이 들어왔다. 근데 1200만원이라는 숫자가 커 보이면서도 자꾸 작아 보인다. 숫자에 익숙해져서일까, 아니면 이미 심장이 굳어져서일까. 비용은? 이건 변수가 많다.사무실 월세: 180만원 (고정) 직원 8명 월급: 4200만원 (고정, 보너스 제외) 클라우드 비용: 320만원 (증가 추세) 광고비: 800만원 (월별 유동) 기타: 600만원 (미터기)합계. 7100만원. 1200만원 - 7100만원 = -5900만원.손가락이 멈춘다. 같은 식을 세 번을 더 눌렀다. 계산기가 잘못되길 바랐다. 근데 이미 엑셀에서 수십 번 본 숫자다. 내가 엑셀을 잘못 짰을 리도 없다. 나는 네이버에서 기획자였고, 숫자를 읽고 그릴 줄 안다. 이 적자는 진짜다. 그래서 자본금이 있는 거다. 자본금 3억. 3개월마다 2500만원씩 빠진다. 런웨이 8개월. 8개월. 32주. 224일. 오늘이 12월 30일이니까... 8월 말쯤이다. 내년 8월 말. 8개월 안에 회사가 턴어라운드되든지, 투자를 또 받든지, 아니면 문을 닫든지. 직원들 모르게 직원들은 몰라도 된다. 절대 모르게 해야 한다. 내일 오후 2시, 급여 이체 시간. 직원들이 아마 확인할 거다. 한두 명은 슬랙 상태메시지로 '월급 왔다!' 이러고 있을 거다. 나는 그 메시지들을 봐야 한다. 웃으면서. 아니면 "수고했어!" 이렇게 답장을 해야 한다. 4200만원. 여기에 사무실비, 클라우드비, 광고비... 다 떨어져나가고 나면 우리 통장에는 뭐가 남을까. 아, 맞다. 음수다. 그래서 월초부터 현금흐름 관리를 하는 거다. 지난주 수금이 100만원 지연됐으니 그 돈은 다음주에 들어온다. A사 계약금 1500만원은 1월 초다. B사와의 미팅은 아직 진전이 없다. 예정된 매출이 안 들어올 확률은 15% 정도. 그럼 매출이 1020만원이 되는 건가. 1020만원 - 7100만원 = -6080만원. 계산기를 내려놓는다. 손가락이 떨린다. 이게 매달 반복되는 거다. 월말이 되면 스프레드시트를 켜고, 세 가지 시나리오를 그린다. 보수적 시나리오, 현실적 시나리오, 낙관적 시나리오. 근데 세 가지 모두 같다. 다 마이너스다. 상황이 좋으면 마이너스 4900만원, 나쁘면 마이너스 6500만원. 그 사이에서 산다. 그 사이에서 호흡한다. 아내한테는 말 못 했다. "괜찮아, 런웨이 8개월이면 괜찮아. 그 전에 시리즈A 받을 거야"라고만 했다. 아내의 봉급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고 나면 자괴감이 든다. 내가 가장인데, 왜 아내 월급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딸이 어제 "아빠, 일요일에도 일해?" 물었다. 3살이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아내가 나를 봐도 불안한 티가 난다고 했다. "얼굴이 계속 그런 거 같아"라고. 그래서 나는 팀원들 앞에서는 절대 그 얼굴을 드러내면 안 된다. 회의에서도, 슬랙에서도. 항상 "일단 해보자", "데이터로 보여줘", "런웨이가 충분하니까 이 기회는 잡자"라고 말해야 한다. 직원들이 불안해하면 회사는 끝난다. 투자자들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미팅 다섯 개가 보류 중이다. 그들은 "조금 더 트랙션을 보고 판단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번역하면 "아직 필요 없습니다"다. 근데 내 피치는 계속 자신감으로 가득 찬 척해야 한다. 회의실에서 나올 땐 다시 가슴이 철렁한다. 밤 11시 12분 노트북 화면의 엑셀을 닫으려다가 멈췄다. 한 가지를 더 확인해야 한다. 프리A 투자 진행 중인 VC가 있다. 순환투자 형태로,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의 투자를 모아서 새로운 회사들에 넣는 방식이다. 그들은 "좋은 프로덕트고, 팀도 좋다"고 했다. 근데 "시리즈A는 아직 이르고, 프리A는 조건이 좋아야"라고 했다. 조건이 좋다는 게 뭘까. 우리가 빨리 회수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빨리 유니콘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우리 지표는?MRR: 1200만원 (성장률: 월 8%) CAC: 550만원 (개선 추세 없음) Churn: 월 4% (괜찮은 편) Runway: 8개월 (나쁜 편)이 지표를 보면 투자자들이 뭐라고 할까. "좋은 프로덕트지만, 성장이 느려요", "CAC가 높네요", "시장이 좀 작은 것 같은데요"라고 할 것 같다. 우리가 시장을 잘못 짚었을까? 아니면 마케팅을 잘못 했을까? 아니면 그냥 우리가 부족한 걸까.새벽 2시 34분. 나는 여전히 사무실에 있다. 직원들이 얼마 전에 "대표님, 너무 늦으니까 나가세요"라고 했다. 고마운데 구차했다. 넌 집에 갈 집이 있잖아. 나도 집이 있고, 아내가 있고, 딸이 있다. 근데 마음이 여기 있다. 자본금 3억이 여기 있다. 런웨이 8개월이 여기 있다. 월급 날이 내일이다. 직원들이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그냥 자기 월급이 들어온 줄만 알면 된다. 우리 회사가 매달 5900만원을 까먹는다는 건 몰라도 된다. 근데 난 알아야 한다. 그게 CEO의 일이다. 실패한 스타트업들의 기사를 자꾸만 검색한다. "급속 성장, 갑자기 문을 닫다." "잘나가던 스타트업이 왜 망했나." "투자 라운드 실패 후 폐업." 새벽 3시에 이런 기사들을 읽다 보면 무서워진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해야 한다. 내일 팀미팅은 오전 10시다. 그때 난 밝은 표정으로 이번 달 OKR을 리뷰하고, 다음 달 전략을 얘기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니,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다는 척. 확신 있는 척. "괜찮아, 될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세 번. 통장 잔고는 여전히 음수다. 근데 내일은 4200만원이 또 빠져나간다.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8개월 동안 계속. 계산기 앱을 내렸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아내가 또 뭔가 말하겠지. "얼굴이 좀..." 그럼 나는 웃을 거다. "일 많아. 괜찮아."월급 날 전날 밤, 또 다른 CEO도 아마 같은 계산을 하고 있을 것 같다.
- 02 Dec, 2025
새벽 3시, 슬랙 알림이 울릴 때
새벽 3시, 슬랙 알림이 울릴 때 알람이 울린다. 3시 12분. 눈을 뜨고 있다는 걸 모를 정도로 자동으로 손이 움직인다. 베개 옆 폰을 집는다. 화면이 얼굴을 때린다. 슬랙. 빨간 점. 1개. '누가 또?' 침대 옆에 아내가 자고 있다.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부럽다. 정말 부럽다. 조용히 거실로 나간다. 아이 깨울까봐 슬리퍼를 벗는다. 지나가는 방 문 살짝 열어본다. 딸이 팔 벌리고 자고 있다. 몸 짱 길어진 것 같다. 언제 이렇게 컸지. 거실 소파에 앉는다. 2시간 반 더 자야 출근 시간인데. 폰을 켠다. 빨간 점의 정체 개발팀 리드 김준수. 오늘 밤 9시쯤 채용공고를 들었다. 오후 미팅에서. "런웨이가 8개월이고, 투자자들이 헤드수를 봐요. 지금 인원으로는 피치 덱에 설득력이 없어서..." 당연히 의사결정이 빠르다. 스타트업의 장점이라고 했다. 팀원들 앞에서는 밝게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 추가 연봉. 사무실 확장 가능성. 사회보험료. 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아, 김준수가 리드하면서 누군가를 더 끌어오는 게 맞아. 신입이나 경력이나. 팀 규모 성장이 곧 스케일링이야." 슬랙 메시지. "대표님, 이 채용공고 좀 봐줄 수 있을까요? 내가 초안 작성했는데. 한 번 검토해주면..." 시간이 13분 전이다. '3시에 이걸 왜 보내지?' 다시 읽는다. "지금 보내도 괜찮을까봐서... 내일 아침 보면 어때요?" 그 뒤에 다섯 개의 이모지. 죄송함의 이모지들. 알 것 같다. 김준수는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밤 11시에 퇴근했으니까. 늦어도 자정 즈음에. 그 후로 계속 생각했을 것이다. 채용공고. IR. 트랙션. 다음 분기. 나처럼. 그래서 3시에 보냈을 거다. 자다 깼거나, 아니면 계속 일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폰을 내려놨다가 다시 집는다.3시의 의무감 회신할까. 말 그대로 반 초 정도만에 끝난다. 'ㅇㅋ 내일 아침에 보자' Enter. '읽음' 표시가 떠야 해야 마음이 놓인다. 말도 안 된다. 뭐가 어떻게 놓인단 말인가. 어차피 내일 아침에 봐야 하는 거고, 밤 3시에 확인했다고 뭐가 달라진다는 건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대표'니까. 대표는 2시간 빨리 본다. 대표는 밤 3시에도 본다. 대표는 항상 온라인이다. 대표는 언제나 응답 대기 중이다. 대표는 어떤 상황에서든 '다 괜찮아'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심리 전쟁이다. 근데 이긴다. 항상 이긴다. 스프레드시트를 다시 켠다. 런웨이 계산 시뮬레이션. A 시나리오. 보수적. 매출 성장 없음. 인원 추가. 결과. 5개월. B 시나리오. 중립. 월 15% 성장 유지. 인원 추가. 결과. 7개월. C 시나리오. 낙관적. 월 20% 성장. 인원 추가. 신규 고객 확보. 추가 투자 체결. 결과. 무한. C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C만 가능해야 한다. 기찻길 위에 가만히 누워 있는 기분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움직이면 부술 수도 있다. 그런데 움직일 수밖에 없다. 김준수 말고도 다른 팀원들은? 영업팀은 어떻게 되나. 영업이 제대로 안 되면 채용은 무슨 채용인가. 그런데 채용을 안 하면 더 영업이 안 된다. 악순환. 이걸 누가 전해줄까. 누가 알아줄까. 아내는 몰라도 된다. 걱정만 시킬 테니까. 투자자들한테는 절대 이런 생각이 있는 척 하면 안 된다. '검토해보겠습니다'라는 거절은 '당신은 관리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피드백과 다르지 않다. 혼자다. 정확히는, 함께 있어야 하지만 혼자다. 슬랙의 중독성 시간이 간다. 3시 28분. 스프레드시트를 닫는다. 새로 켠다. 경쟁사 분석. 요즘 라운드를 본 스타트업들. 우리와 비슷한 지표. 우리와 다른 지표.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성장이 빨라?' 메모리로 다시 돌아간다. 정보량이 굉장하다. 혹은 거짓말일 수도 있다. 스타트업 업계는 거짓말 많다. 나도 IR 덱에서는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전략이면 충분히 시장을 장악할 수 있어' '우리 팀이면 가능합니다' 슬랙이 또 울린다. 4시 02분. 이번엔 영업팀이다. "대표님, 내일 고객 미팅 좀 대신 봐주실 수 있을까요? A사인데, 뭔가 이번 달 의사결정이 빨라진 것 같아서..." 아. 이건 좋은 뉴스다. 그런데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내가 뛰어야 한다는 거. 영업도 못하는 팀원들. 아니다. 못한 게 아니라 못해본 거다. 신입이 많으니까. 경험이 부족하니까. 그래서 내가 뛴다. 내일 아침 9시. A사 미팅. 오후 3시. 투자자 미팅. 저녁 6시. 개발 일정 리뷰. 이미 정해진 일정 위에 또 덮인다. '다 해야지. 뭘.'회신한다. "좋아, 내가 봐줄게. 우리 팀이 먼저 한 번 더 대면한 다음에 나랑 세 명이 함께 들어가자. 좋은 기회야." 밝게. 항상 밝게. 현실은 이거다. 내일 9시에 못 본다. 왜냐하면 난 지금 3시에도 못 자니까. 그리고 아침에 눈 떠서 이메일 50개를 봐야 한다. 그 다음에 스프레드시트 업데이트. 그 다음에 회의 준비. 9시 미팅에서 내가 밝게 웃고 있을까. 아마도. 아마도 그럴 거다. 왜냐하면 '대표'니까. 잠들지 못하는 이유 4시 30분. 컵라면을 끓인다. 물소리가 작게 들린다. 가스렌지. 밤 시간에 우리 집에서 나는 유일한 소리. 스마트폰은 계속 켜 있다. 또 뭐가 올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왔는데 못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의 수들이 자꾸 떠오른다. 네이버에 있을 땐 이런 게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했다. 정해진 시간에 퇴근했다. 누군가 상위 레벨에서 결정을 했고, 나는 그 아래에서 일했다. 책임감이 있었지만 이런 책임은 없었다. 이건 다른 종류의 무게다. 돈이다. 직원들의 월급이다. 내 아내의 미래고, 아이의 미래고, 부모님의 신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게 전부 내 판단에 달렸다는 거다. '피봇해야 하나?' 이 질문은 3시마다 돈다. 새벽 2시에도 돈다. 저녁 11시에도 돈다. 주말 아침에도 돈다. 지금 우리 프로덕트가 맞나. 지금 우리 마켓이 맞나. 지금 우리 팀이 맞나. 지금 우리 펀딩 전략이 맞나. 모든 게 의문이다. 그리고 모든 게 내 몫이다. 라면을 먹는다. 국물이 덜 식어서 입이 데인다. 아무 맛이 없다.아침까지 1시간 반 4시 47분. 아내가 일어나지 않을까 봐 거실 불을 끈다. 폰의 불빛만 남는다. 슬랙. 메일. 뉴스. 또 슬랙. 어떤 창업가 인터뷰를 읽다가 멈춘다. "성공의 비결은 충분한 수면과 명확한 전략이었습니다." '우리 여긴 얼마나 성공했길래.' 자조적이다. 근데 이런 마음가짐이 사람을 죽인다. 근데 죽지 않을 수가 없다. 5시 20분. 출근까지 1시간 40분. 침대로 돌아갈까. 아니다. 이제는 잠들기 어렵다. 이 상태로 누우면 더 답답하다. 그래서 그냥 여기 있다. 소파에. 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면서.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인다. 메모장 앱. 오늘의 할 일 목록.A사 고객 미팅 (09:00) - 제안서 재점검 팀 미팅 (10:30) - 일정 조정 투자자 미팅 (15:00) - IR 덱 최종 수정 개발 리뷰 (18:00) - 런웨이 시뮬레이션 공유 채용공고 검토 (따로 시간 잡기)8개월의 런웨이를 쪼개는 일정들이다. 하나하나가 번인이다. '이거 다 될까?' 음악을 켠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lo-fi beats for productivity' 누군가 이미 같은 시간대에 같은 상태로 음악을 만들었을 거다. 같은 새벽 3시에 깨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도 뭔가를 못 해서, 뭔가를 놓쳐서, 뭔가를 잃을까봐 깨있을 거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조금 낫다. 근데 별로 낫지도 않다. 5시 50분 전자 알람이 울린다. 이번엔 밤이 아니라 아침이다. 차이가 뭘까. 3시에 깨는 것과 6시에 자동으로 깨는 것. 결국 같은 잠 부족인데. 침대에서 나온다. 샤워를 한다. 거울을 본다. '피곤해 보이네.' 아내가 말한 적 있다. "왜 자꾸 짙게 보여?" "뭐, 일 때문에." "오케이..." 그 다음은 침묵이었다. 걱정하는 침묵. 더 이상 뭔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안다. 7시. 출근한다. 오피스는 비어있다. 내가 가장 먼저다. 항상 그렇다. 노트북을 켠다. 슬랙. 메일. 뉴스. '오늘도 시작된다.' 그리고 밤 11시. 퇴근한다. 혹은 퇴근했다고 치기로 한다. 집에 가서 이불을 덮는다. 새벽 3시. 또 뭔가가 울린다.내일도 똑같을 거다. 그 다음 날도. 그리고 또 그 다음 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