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Dec, 2025
새벽 2시, 창업 실패 사례 검색하기
새벽 2시, 창업 실패 사례 검색하기 잠이 안 온다 새벽 2시 13분.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다. 딸은 작은방에서 쿨쿨. 나만 깨어있다. 오늘도 눈이 떠졌다. 3시간 자고. 런웨이가 8개월 남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다. 거실로 나왔다. 맥북을 폈다. 화면 밝기를 최소로. 슬랙을 확인했다. 새벽 1시에 개발팀 민수가 올린 메시지. "내일 배포 일정 하루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한숨이 나왔다. 고객사 데모가 내일인데.검색창에 치는 단어들 구글을 켰다. "스타트업 실패 사례" 엔터를 눌렀다. 이상하다. 밤에 이런 걸 검색하는 게. 우울해지는 걸 알면서. 그런데 자꾸 찾게 된다. 첫 번째 기사. "유망 스타트업 OO, 시리즈A 직후 폐업... 직원 25명 실직" 클릭했다. 기사를 읽었다. 투자 받고 6개월 만에 망했다. 번레이트가 너무 높았다고. 고객 확보에 실패했다고. 우리랑 비슷하다. 우리도 시드 받고 1년 반 지났다. 매출은 1200만원. 번레이트는 월 2800만원. 계산기를 켰다. 8개월이면 2억 2400만원. 통장에 2억 8000만원.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검색. "SaaS 스타트업 폐업" 또 클릭했다. 29개 기업이 나왔다. 작년 한 해만. 대부분 B2B. 스크롤을 내렸다. 하나하나 읽었다. "초기 트랙션은 좋았으나 이탈률이..." "투자 유치 실패로 자금난..." "팀 내부 갈등으로..." 새벽 2시 38분. 커피를 타러 갔다. 디카페인. 카페인 마시면 아침까지 못 잔다. 그런데 어차피 잠은 안 온다. 내 사업도 저렇게 거실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 화면을 봤다. "실패한 스타트업의 공통점 7가지" 클릭.시장 수요 오판 자금 관리 실패 팀 구성원 이탈 경쟁사 대응 실패 피봇 타이밍 놓침 투자 유치 실패 번아웃7개 중에 우리는 몇 개? 시장 수요. 있긴 한데, 생각보다 작다. 우리 솔루션 쓸 만한 기업이 한국에 500개 정도? 그중에 지금 30개 쓰고 있다. 자금 관리. 번레이트 줄이려고 했는데 안 줄어든다. 개발자 한 명이라도 빼면 제품 개발이 멈춘다. 팀 이탈. 아직 없다. 그런데 프리A 못 받으면? 경쟁사. 요즘 똑같은 거 만드는 팀이 3개 생겼다. 돈 더 많이 받은 곳도 있다. 피봇. 해야 하나? 6개월 전부터 고민 중. 근데 방향을 모르겠다. 투자 유치. 지금 10군데 진행 중. 5군데는 거절. 5군데는 "검토 중". 번아웃. 나는 이미. 7개 중에 5개.댓글을 읽는다 기사 하단에 댓글이 있었다. 읽었다. "창업이 뭐가 대단한가요. 망하면 직원들만 피해" "투자 받았으면 책임지고 해야지" "요즘 창업 너무 쉽게 생각함" 숨이 막혔다. 우리 직원 8명. 민수는 네이버 다니다가 왔다. 연봉 깎고. 지원이는 결혼 앞두고 있다. 영업팀 수진이는 대학원 포기하고 합류했다. 다들 나를 믿고 왔다. "박대표님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그 말들이 떠올랐다. 새벽 3시 5분. 다른 기사를 열었다. "나는 왜 창업에 실패했나 - 전 OO 대표 회고" 장문의 글이었다. 읽었다. 전부. "처음엔 자신 있었습니다. 시장도 있었고, 팀도 좋았고, 기술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얘기 같았다. "투자자들은 '다음 라운드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다음 라운드는 오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VC 미팅이 떠올랐다. "트랙션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이네요. 3개월 뒤에 다시 연락드리죠." 3개월. 런웨이는 8개월인데. 스프레드시트를 연다 검색을 멈췄다. 구글 시트를 열었다. "시나리오 분석 v47" 매번 수정하는 파일이다. 세 가지 시나리오. 보수: 월 매출 성장률 5%, 6개월 내 투자 실패 중립: 월 매출 성장률 15%, 4개월 내 프리A 5억 낙관: 월 매출 성장률 30%, 3개월 내 프리A 10억 보수 시나리오를 봤다. 10개월 후 현금 소진. 팀원 4명으로 축소. 제품 개발 중단. 좀비 상태로 6개월. 폐업.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 정리 비용: 4500만원" "사무실 위약금: 360만원" "투자금 반환 압박: 예상 불가"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마셨다. 소파에 다시 앉았다. 화면을 봤다. 아까 그 기사들. "저들도 처음엔 잘될 거라고 생각했겠지." 다들 시작은 비슷했을 것이다. 투자 받고, 팀 꾸리고, 사무실 얻고, 제품 만들고. 데모데이에서 발표하고, 언론에 나오고, "유망 스타트업" 타이틀 받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매출이 안 늘고, 투자가 안 되고, 직원이 나가고, 돈이 떨어지고. 끝.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아니, 될 확률이 더 높다. 통계를 봤다. 시드 투자 받은 스타트업의 생존율. 5년 후 10%. 우리는 지금 2년 6개월. 10%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새벽 3시 42분. 검색창에 또 쳤다. "창업 실패 후 재취업" 엔터. 기사가 나왔다. "전 스타트업 대표, 대기업 복귀 어려워... 경력 단절 위험" 읽었다. 36세. 나이. 창업 경력 3년. 실패하면 공백. 대기업 재입사. 어렵다. 중견기업. 연봉 많이 깎인다. 다시 창업. 투자 받기 더 어렵다. "실패한 창업가" 낙인. 그래도 검색한다 왜 이런 걸 찾는 걸까. 새벽마다. 실패 사례, 폐업 통계, 최악의 시나리오. 우울해지는 걸 알면서. 생각해봤다. 준비하는 건가. 실패를 미리 경험해보는 건가. 아니면. 확인하는 건가. 내가 느끼는 불안이 진짜라는 걸. 모르겠다. 그냥 자꾸 찾게 된다. 밤에 혼자 있으면. 낮에는 팀원들 앞에서 웃는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이번 달 MRR 15% 늘었잖아." "투자 곧 될 거야." 그런데 혼자 있으면. 검색한다. "스타트업 망하는 이유" "투자 유치 실패 후기" "창업 후회" 기사를 읽는다. 댓글을 읽는다. 숫자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새벽 4시 8분. 노트북을 덮었다. 침대로 돌아갔다. 아내 옆에 조용히 누웠다. 천장을 봤다. 8시간 후면 출근이다. 팀원들을 만나면 또 웃어야 한다. "오늘도 화이팅!" 그런데 지금은. 혼자 무섭다.새벽의 검색 기록은 아무도 모른다. 낮의 나는 괜찮은 척하고, 밤의 나는 실패를 검색한다. 그게 창업가의 이중생활이다.
- 13 Dec, 2025
팀원들 앞에서는 절대 불안한 티 안 낸다
오전 9시, 스탠드업 미팅 "다들 모였지? 시작하자." 회의실에 들어서면서 목소리 톤을 올린다. 어제 새벽 3시까지 런웨이 계산하느라 3시간 잤지만 티 내면 안 된다. 개발팀 김 대리가 일정 지연 보고한다. 서버 이슈. 예상했다. "괜찮아. 우선순위 조정하면 돼. 고객사 A는 다음 주로 미루고, B사 건부터 마무리하자." 차분하게 말한다. 속으론 '이번 주 데모 미팅 어떡하지' 생각하지만 표정은 관리한다. 팀원들이 불안해하면 안 된다. 대표가 흔들리면 배가 침몰한다. 영업팀 박 과장이 신규 리드 3건 보고. 좋은 소식이다. 진심으로 웃는다. "잘했어. 이번 주 전환율 목표 달성 가능하겠는데? 모두 수고했어." 미팅 끝. 30분. 웃으면서 나온다. 화장실 가서 세면대에 손 짚고 한숨 쉰다. 5초. 다시 얼굴 올린다. 거울에 비친 내가 피곤해 보인다. 물로 얼굴 씻는다.혼자 있는 점심시간 팀원들은 다 같이 밥 먹으러 갔다. 나는 "미팅 준비해야 돼" 핑계 댔다. 사실 혼자 있고 싶었다. 회의실에 남아서 편의점 삼각김밥 뜯는다. 1300원. 노트북 열어서 스프레드시트 본다. 현금흐름표. 8개월. 정확히는 7.8개월. 다음 달 직원 월급 나가면 7.3개월. 손가락으로 셀 하나하나 계산한다. "프리A 6월까지는 받아야 하는데..." 혼잣말. VC 미팅 일정표 본다. 이번 주 2건, 다음 주 3건. 답장 안 온 곳이 7곳. '검토 중'이라던 곳은 2주째 감감무소식. 슬랙 메시지 다시 보낸다. 정중하게. "안녕하세요, 지난주 미팅 후속입니다. 추가 자료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보내고 나서 한숨. 제발 답장 오길. 삼각김밥 반밖에 못 먹었는데 목이 막힌다. 물 마신다. 창밖 본다. 성수동 거리. 사람들 바쁘게 걷는다. 나도 저렇게 보이나. 핸드폰 진동. 아내 카톡. "저녁 몇 시에 와? 서윤이가 아빠 기다려" "오늘 야근. 9시쯤? 미안"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미안하다는 말 또 하고 싶은데 그냥 하트 이모티콘 보낸다. 몇 번째 미안인지 모르겠다.오후 3시, 투자자 미팅 강남역 카페. 20분 일찍 도착했다. 항상 일찍 온다. IR 덱 마지막 점검. 51번째 버전. 슬라이드 32장. 트랙션, MAU 성장률, LTV/CAC 비율, 로드맵. 숫자 하나하나 외웠다. 투자자 들어온다. 40대 중반. 명함 교환. 정중하게 인사.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자료 봤어요. 시장 흥미롭더라고요. 설명 부탁드려요." 15분 발표. 목소리에 힘 준다. 자신감. 데이터로 보여준다. 그래프 우상향. 고객 인터뷰 인용. 팀 소개할 땐 자랑스럽게. "저희 CTO는 전 카카오 출신입니다." 사실이다. 실력 좋다. 연봉은 못 줘서 미안하지만. 질문 들어온다. "경쟁사 대비 차별점이 뭔가요?" 준비한 답변. "저희는 B2B에 특화된 UX와 온보딩 자동화에 집중했습니다. 경쟁사들은..." "번 레이트 어떻게 되죠?" "월 평균 3.2%입니다. 업계 평균 5%보다 낮고..." "시리즈A 목표는?" "30억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프리A로 5억 모집 중이고요." 대화는 30분. 분위기 나쁘지 않다. 그가 고개 끄덕인다. "검토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추가 자료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악수. 웃으면서 헤어진다. 카페 나와서 지하철역까지 걷는다. 5분. 웃음 사라진다. '검토해보겠습니다.' 이 말 이제 20번째쯤 들었다. 10번은 거절이었다. 5번은 아직 답 없다. 5번은 진행 중. 이번은? 모르겠다. 지하철 타고 사무실 간다. 창밖 본다. 내 얼굴 비친다. 피곤하다. 오후 6시, 팀원과 커피 사무실 돌아오니까 디자이너 이 주임이 물어본다. "대표님 미팅 어떠셨어요?" "응, 괜찮았어. 반응 좋았어." 거짓말 아니다. 실제로 반응은 좋았다. 결과가 어떨지 모를 뿐. "다행이네요! 저희 이번 달 목표 달성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MAU 목표 5000명인데 지금 4200명이잖아. 이번 주 마케팅 캠페인 나가면 충분히 가능해. 너무 걱정하지 마." 그가 웃는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같이 커피 타러 간다. 공용 주방. 캡슐커피 넣는다. 나는 다섯 번째. 이 주임은 두 번째. 젊다. 26살. 나도 10년 전엔 저랬다. "요즘 힘든 거 없어?" "아뇨, 재밌어요. 배우는 게 많아요." 순수하다. 런웨이가 뭔지, 번 레이트가 뭔지 모른다. 그냥 좋은 제품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맞다. 내가 그 걱정 다 하면 된다. "그래, 좋은 마인드야. 계속 그렇게 해." 사무실 돌아온다. 내 자리 앉는다. 모니터 켠다. 슬랙 메시지 47개. 하나씩 답장한다. 긍정적으로. 명확하게. 팀원들이 방향 잃으면 안 된다.밤 10시, 혼자 남은 사무실 팀원들 다 퇴근했다. "먼저 가봐도 될까요?" "그래, 수고했어." 일곱 번 말했다. 여덟 번째는 내가 먼저 말했다. "오늘 일찍 들어가. 내일 봐." 이제 혼자다. 사무실 조용하다. 에어컨 소리만 들린다. 책상 불만 켜놨다. 노트북 화면 밝다. 눈 아프다. 엑셀 시트 연다. 시나리오 분석. 세 가지 버전. 보수적: 월 성장률 15%, 프리A 실패, 시드 연장 3억 추가 조달 → 런웨이 12개월 연장, 내년 3월 시리즈A 재도전. 중립적: 월 성장률 25%, 프리A 5억 성공, 6월 유치 → 런웨이 18개월, 직원 3명 추가 채용, 내년 9월 시리즈A. 낙관적: 월 성장률 35%, 프리A 7억 성공, 전략적 투자자(SI) 포함 → 런웨이 24개월, 팀 두 배, 내년 말 시리즈A 20억. 숫자 만지작거린다. 함수 고친다. 셀 색깔 바꾼다. 의미 없다. 이미 100번 계산했다. 결과는 같다. 투자 받아야 한다. 시간 없다. 핸드폰 본다. 아내 카톡. "서윤이 재웠어. 오늘도 늦네?" "응, 미안. 곧 갈게" "건강 챙겨. 너무 무리하지 마" 고맙다. 눈물 날 것 같다. 나오진 않는다. 그냥 목이 멘다. 창밖 본다. 성수동 밤 풍경. 불 켜진 건물들. 저기도 누군가 야근하겠지. 나만 힘든 건 아니다. 위안 안 된다. "될 거야." 혼잣말. 다짐인지 기도인지 모르겠다. 매일 하는 말. 믿는지도 모르겠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끝이다. 가방 싼다. 노트북 닫는다. 불 끈다. 사무실 나온다. 문 잠근다. 엘리베이터 기다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36살. 피곤하다. 내일 아침엔 또 웃어야 한다. 지하철 탄다. 집까지 40분. 앉아서 눈 감는다. 다음날 아침 9시 "좋은 아침! 다들 주말 잘 보냈지?" 회의실. 월요일 스탠드업. 팀원들 모였다. 나는 웃는다. 커피 들고 있다. 여섯 번째. 아니다. 첫 번째다. 집에서 마신 건 안 센다. "이번 주 목표 공유할게. 우선 MAU 5000명 달성. 둘째, B사 온보딩 완료. 셋째, 신규 리드 10건 확보. 할 수 있지?" 팀원들 고개 끄덕인다. 개발팀 김 대리가 말한다. "저희 이번 주 배포 일정 빠듯한데, 가능할까요?" "가능해. 우선순위 정리하면 돼. 내가 도울 게 있으면 말해." 자신감 있게 말한다. 어제 밤 혼자 런웨이 계산하며 한숨 쉰 건 아무도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자, 시작하자. 화이팅!" 미팅 끝. 팀원들 흩어진다. 나는 내 자리로 간다. 앉는다. 모니터 켠다. 이메일 확인한다. 어제 만난 투자자한테서 메일 왔다. "검토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상했다. 실망 안 한다. 거짓말이다. 조금 실망한다. 많이는 아니다. 익숙하다. 다음 메일 연다. 또 다른 VC. 미팅 요청. 다음 주 화요일 가능하냐고. "네, 가능합니다. 시간 조율해서 답변드리겠습니다." 답장 보낸다. 정중하게. 희망적으로. 커피 마신다. 일곱 번째. 모니터 본다. 슬랙 메시지 12개. 답장 시작한다. 혼자 있을 땐 한숨 쉰다. 미팅 땐 웃는다. 이게 내 일이다.대표가 흔들리면 배가 기운다. 그래서 나는 안 흔들리는 척한다. 매일.
- 12 Dec, 2025
스프레드시트에 보수/중립/낙관 3가지 시나리오
새벽 2시, 스프레드시트오늘도 잠이 안 온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 보다가 결국 노트북 켰다. 시간 확인했더니 새벽 2시 17분.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다. 딸은 아까 한 번 뒤척이더니 다시 잠들었다. 구글 시트 열었다. 파일명은 "2025 시나리오 분석 v47". 버전이 47이다. 거의 매주 수정한다는 뜻이다. 세 개 탭이 있다. 보수/중립/낙관. 항상 보수부터 본다. 최악의 경우를 먼저 봐야 마음이 편하다. 이상하지만 그렇다. 보수 시나리오 보수 시나리오는 간단하다. "모든 게 안 풀리면?"신규 고객 월 1개 (현재 2~3개) 이탈률 15% (현재 8%) 단가 인상 실패 (현재 월 150만원 → 목표 200만원) 추가 투자 실패이렇게 놓고 계산하면 런웨이가 5개월로 줄어든다. 8개월이 5개월이 된다. 5개월이면 10월이다. 10월까지 투자 못 받으면 뭘 해야 하나. 직원 절반 내보내나. 사무실 빼고 재택하나. 아니면 내 월급을 0으로 만드나. 계산기 두드린다. 4명으로 줄이면 인건비가 월 1800만원. 지금은 3200만원이니까 1400만원 아낀다. 사무실 180만원 빼면 1580만원. 그럼 런웨이가... 10개월로 늘어난다. 10개월이면 내년 3월까지 버틴다. 숫자 보면서 한숨 나온다. 근데 동시에 안도감도 든다. "최악의 경우에도 내년 3월까지는 간다." 이 문장이 위로가 된다.중립 시나리오 중립은 "지금 추세대로 가면?"이다.신규 고객 월 2개 (현재 수준 유지) 이탈률 8% (현재 수준) 단가 50% 성공 (신규는 200만원, 기존은 150만원 유지) 투자 50% 확률 (프리A 5억, 6개월 내)이 시나리오에서는 투자 못 받아도 버틴다. MRR이 서서히 오르면서 12개월 뒤에는 월 2500만원쯤 된다. 손익분기까지는 아니어도 적자폭이 줄어든다. 투자 받으면 당연히 채용한다. 개발자 2명, 세일즈 1명. 그럼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 중립 시나리오 볼 때는 기분이 괜찮다. "할 만하네." 이런 생각 든다. 근데 이게 함정이다. 중립이 너무 낙관적일 수 있다. 시장이 생각보다 차갑다. 경쟁사가 생각보다 빠르다. 우리 제품이 생각보다 느리다. 그래서 중립 시나리오는 참고만 한다. 믿지는 않는다. 낙관 시나리오 낙관은 "모든 게 잘 풀리면?"신규 고객 월 4개 (현재의 2배) 이탈률 5% (개선) 단가 100% 성공 (전체 200만원) 투자 100% (프리A 7억, 3개월 내)이렇게 되면 12개월 뒤 MRR이 4000만원 넘는다. 손익분기 돌파한다. 팀을 15명까지 키울 수 있다. 낙관 시나리오는... 솔직히 거의 안 본다. 보면 기분은 좋은데 위험하다. 기대하게 된다. 기대하면 실망이 크다. 창업하고 배운 게 하나 있다. 기대를 낮추면 실망도 작다. 기대를 버리면 모든 게 보너스다. 그래도 가끔 본다. 힘들 때. "이렇게 될 수도 있어"라고 스스로 위로할 때. 왜 세 개나 만드나팀원들한테는 이런 거 안 보여준다. 월요일 아침 회의에서는 중립 시나리오 기반으로 얘기한다. "우리 이대로 가면 12개월 뒤 MRR 2500 찍습니다. 투자 받으면 더 빠르고요." 낙관은 절대 안 보여준다. 기대감 주면 안 된다. 실망시키기 싫다. 보수는 더더욱 안 보여준다. 팀원들 불안해한다. 불안하면 이력서 쓴다. 이력서 쓰면 집중 안 된다. 대표는 혼자 불안해야 한다. 그게 내 역할이다. 근데 이 스프레드시트 작업이 나를 살린다. 진짜다. 숫자로 정리하면 불안이 줄어든다. "막연한 불안"이 "구체적인 문제"로 바뀐다. 구체적이면 대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돈 떨어지면 어쩌지" → 막연함, 해결 불가 "5개월 뒤 런웨이 끝남, 3개월 내 투자 받거나 인건비 1400만원 줄여야 함" → 구체적, 해결 가능 스프레드시트는 나한테 지도다. 어두운 길 걸을 때 손전등이다. 투자자 미팅 전날 투자자 만나기 전날은 항상 세 시나리오 다시 본다. IR 덱에는 중립 시나리오 넣는다. 12개월 뒤 MRR 2500만원, 24개월 뒤 7000만원. 합리적인 숫자다. 근데 VC들은 낙관을 원한다. "3년 뒤 매출 100억" 이런 거. 그래서 IR 덱 마지막에 "Upside Scenario" 슬라이드 하나 넣는다. 낙관 시나리오를 조금 더 부풀린 버전. 3년 뒤 150억. 믿나요? 아니다. 근데 보여줘야 한다. 안 보여주면 "스케일 고민 안 하네"라고 생각한다. 투자자들도 안다. 저 숫자가 뻥이라는 거. 근데 필요하다. 그들도 LP한테 보고해야 하니까. 게임이다. 다들 알지만 하는 게임. 미팅 끝나고 나오면 허무하다. 근데 해야 한다. 런웨이는 안 기다려준다. 새벽 3시 지금 시간 보니까 3시 12분이다. 스프레드시트 수정 몇 개 했다. 보수 시나리오에서 이탈률 12%로 올렸다. 15%는 너무 비관적인 것 같아서. 12%면 런웨이가 6개월 나온다. 6개월. 나쁘지 않다. 중립 시나리오는 그대로 뒀다. 지금 추세가 나쁘지 않다. 이번 달 신규 고객 3개 들어왔다. 한 곳은 연 계약으로 전환 가능성 있다. 낙관 시나리오는... 그냥 꿈이다. 근데 지우지는 않는다. 가끔 필요하다. 꿈도. 파일 저장했다. "2025 시나리오 분석 v48". 노트북 덮으려다가 한 번 더 봤다. 보수 시나리오의 마지막 셀. "6개월". 속으로 중얼거렸다. "6개월이면 된다. 그때까지 뭐든 하나는 터뜨린다." 아침 7시 알람 울렸다. 4시간 잤다. 씻고 나와서 커피 내렸다. 딸이 일어나서 안아달라고 한다. 안아줬다. "아빠 졸려?"라고 묻는다. "아니, 안 졸려"라고 거짓말했다. 아내가 아침 차리면서 물었다. "어젯밤에 또 스프레드시트 봤어?" "응. 조금." "박대표님, 그거 보면 잠이 와요 안 와요?" "안 오면 보고, 보면 또 안 오고 그래." 아내가 웃었다. "미친 거 아니에요?" "미쳤지. 근데 이게 날 안정시켜." 아내는 더 이상 안 물었다. 이제 익숙하다. 내가 숫자로 불안을 다스린다는 걸 안다. 출근 준비하면서 슬랙 확인했다. 개발팀에서 어젯밤에 배포했다. 에러 없다고 한다. 좋다. 세일즈 팀에서 오늘 미팅 2건 있다고 보고했다. 하나는 데모, 하나는 클로징. 클로징 건이 성사되면 이번 달 신규 4개째다. 4개면 중립 시나리오보다 좋다. 낙관으로 가는 길이다. 현관문 나서면서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버티자.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시나리오는 날 배신 안 한다."최악을 계산하면 최선을 준비할 수 있다. 그게 내가 버티는 방법이다.
- 11 Dec, 2025
창업 동기 모임,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곳
월요일 밤 9시 30분 성수동 작은 술집. 창업 동기 4명이 모였다. 나, 이수진(헬스케어 앱), 김민준(푸드테크), 정하늘(에듀테크). 2년 전 같은 액셀러레이터 출신이다. "박창업 왔네. 요새 어때?" "그냥 굴러간다. 너희는?" 첫 맥주 한 잔은 늘 이렇게 시작한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서로 눈치 본다.두 번째 잔부터 달라진다. "사실 이번 달 월급 내가 월급 받을까 말까다." 민준이가 먼저 터뜨렸다. "나도. 통장에 2300만원 남았어. 런웨이 두 달." 수진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웃긴데 웃기지 않았다. "우리 8개월. 그것도 프리A 못 받으면." 내가 말했다. 하늘이가 소주를 따랐다. "우리 팀은 핵심 개발자가 나간대. 카카오 제안 받았다고."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이게 우리의 진짜 이야기다. 다른 데선 못 하는 말들 부모님 만나면 "잘 돼가"라고 한다. 투자자 미팅에선 "성장세 가파릅니다"라고 한다. 대학 동기들 만나면 "바쁘긴 한데 재밌어"라고 한다. 아내한테는 "곧 나아질 거야"라고 한다. 전부 거짓말은 아니다. 그냥 전부 진실도 아닐 뿐.여기선 다르다. "시리즈A 받은 회사 보면 배아프지 않아?" "개나 소나 시리즈B 받더라. 우린 시드도 간당간당한데." "경쟁사 IR 덱 봤어? 우리보다 숫자 별로던데 투자 받았어." "공동창업자랑 지분 문제로 싸웠어. 진짜 헤어질 뻔했어." 이런 말 할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다. 민준이가 물었다. "너희 팀원들한테 회사 상황 얼마나 솔직하게 말해?" "반만.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수진이가 답했다. "나도. 괜히 이직 준비하면 어쩌나." 내가 말했다. "근데 솔직하게 말 안 하면 더 불안해하더라." 하늘이가 소주잔을 비웠다. "맞아. 이번에 직원 한 명이 사실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대표 얼굴만 봐도 안다고." 우리는 웃었다. 쓴웃음. 숫자로 말하는 고독 "이번 달 MRR 얼마?" 민준이가 물었다. "1200. 지난달이랑 비슷해." "나는 800. 두 달째 제자리." "우리 400. 작년보다 줄었어." "나는... 150." 하늘이가 말을 아꼈다. 우리도 더 안 물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못 한다. 그래서 더 무겁다."근데 MRR 낮다고 망하는 건 아니잖아." 수진이가 말했다. "맞아. 토스도 처음엔." "배민도 5년 적자였고." "쿠팡은 10년." 우리는 이런 이야기로 서로를 위로한다. 성공한 회사들의 과거를 끄집어낸다. 근데 속으론 안다. 저 회사들은 살아남았지만, 수천 개는 죽었다는 걸. "그래도 해야지 뭐." 민준이가 말했다. "응. 해야지." 3차는 편의점 11시 넘어서 나왔다. 술집 문 닫을 시간.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캔맥주 하나씩 들고. "진짜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도 돼?" 하늘이가 물었다. "뭔데?" "너희 망하면 뭐 할 거야?" 공기가 무거워졌다. 우리 다 생각해본 질문이다. "취업? 근데 나이가." "프리랜서? 근데 커리어가." "또 창업? 근데 돈이." 답은 없었다. "그냥 안 망하면 되는 거 아냐?" 내가 말했다. "개논리네." 민준이가 웃었다. "근데 맞는 말 같기도." 수진이도 웃었다. 우리는 캔을 부딪쳤다. 딸각. 얇은 알루미늄 소리. "그래. 안 망하자." "건배." 집으로 가는 택시 안 12시 10분. 택시 뒷좌석. 휴대폰 확인했다. 슬랙 알림 3개. 개발팀에서 버그 리포트. 내일 아침 확인하면 된다. 아내한테 카톡 왔다. "언제 와?" "지금 가는 중" "조심히 와" 딸 사진도 보내줬다. 이불 킥오프하고 자는 모습. 화면 끄고 창밖 봤다. 한강 다리 지나간다. 오늘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 런웨이, MRR, 투자, 직원 이탈, 경쟁사. 전부 무거운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혼자 아닌 것 같아서. 나만 힘든 게 아니라서. 같이 버티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음 달 모임 날짜 단톡방에 메시지 왔다. "다음 달 셋째 주 월요일?" "ㅇㅋ" "ㄱㄱ" "+1" 나도 답장했다. "ㅇㅇ" 별 말 아닌데 중요한 약속이다. 이 모임이 없었으면, 작년에 이미 접었을 수도 있다. 수진이가 시리즈A 받기 직전에 포기하려 했을 때, 민준이가 공동창업자랑 싸워서 회사 나가려 했을 때, 하늘이가 피봇 3번째 하면서 무너졌을 때, 우리가 붙잡았다. "조금만 더." "지금 그만두면 아깝다." "다음 달에 또 보자." 그렇게 버텼다. 지금도 버티고 있다. 새벽 1시 집 도착했다. 조용히 문 열고 들어갔다. 딸은 자고 있고, 아내는 거실 소파에서 노트북 보고 있다. "왔어?" "응. 안 자?" "기다렸지." 미안했다. "동기들은 잘 있어?" "응. 다들 바쁘대." "바쁘다"는 말 속에 숨은 진짜 이야기들. 아내는 모른다. 아니, 알까? 눈치챘을 수도. "씻고 자." "응."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다음 주엔 투자사 미팅 2개. 다다음 주엔 제품 업데이트. 월말엔 또 월급날. 버텨야 한다. 동기들도 버티는데. 핸드폰 다시 켰다. 단톡방 확인했다. 민준: "오늘 고마웠어들" 수진: "ㅇㅇ 힘 났다" 하늘: "다음 달까지 살아있자" 나도 답장했다. "ㄱㄱ" 화면 껐다. 창업은 외롭다. 대표는 더 외롭다. 근데 가끔은 덜 외롭다. 이런 날 때문에.다음 달 셋째 주 월요일까지. 또 버티면 된다.
- 10 Dec, 2025
B2B SaaS, 월 MRR 1200만원의 현실
B2B SaaS, 월 MRR 1200만원의 현실 오늘도 스프레드시트를 연다 새벽 3시 18분. 또 깼다. 슬랙 알림은 없다. 당연하다. 이 시간에 누가 일하나. 노트북을 열었다. 구글 시트. "2025 재무 전망 v47" 파일. 월 MRR 1200만원. 지난달보다 80만원 올랐다. 7.1% 성장. 계산기를 두드렸다.직원 8명 인건비: 월 4200만원 사무실 + 각종 운영비: 월 600만원 서버비, 마케팅: 월 500만원 합계: 월 5300만원적자 4100만원. 매달. 통장 잔고 3억 2000만원. 런웨이 7.8개월. "이 속도면..." 중얼거렸다. 아내가 옆에서 뒤척였다.성장하고 있다는 위안 아침 8시. 출근했다. "대표님 어제 신규 가입 2건 들어왔어요!" 개발팀 막내가 밝게 말했다. "좋네. 업종이 어디야?" "제조업이랑 물류 쪽이요."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계산했다. 평균 전환율 15%. 2건 중 0.3건이 유료 전환. 기대 MRR 증가분 12만원. '12만원...' 웃었다. 쓴웃음. "잘했어. 온보딩 제대로 해줘." 성장은 하고 있다. 숫자로 보면 분명하다. 작년 이맘때 MRR 200만원이었다. 1년 만에 6배. 연간 성장률 500%. 투자 보고서에 쓰면 멋있어 보이는 숫자다. 근데 절댓값이 문제다. 1200만원. 경쟁사 '워크플로우랩'은 월 MRR 3억이라던데. 뉴스에서 봤다. 시리즈A 100억 투자 유치. 우린 프리A도 못 받는데.투자자가 원하는 건 "트랙션은 좋은데요, 속도가..." 지난주 VC 미팅. 투자심사역이 말을 흐렸다. "조금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 알아듣는다. 거절이다. 정중한. "어느 정도 지표가 나와야 할까요?" 물어봤다. 구체적으로. "음, 최소 월 MRR 5000만원 정도는..." 5000만원. 지금의 4배. 지금 속도면 1년 반 걸린다. 런웨이는 8개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악수했다. 웃었다.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한숨 쉬었다. 투자자들은 그래프의 기울기를 본다. 절댓값보다 속도. 가능성보다 확신. 월 1200만원은 애매하다. 죽지도 살지도 않는. PMF는 찾았다. 고객들은 좋아한다. 갱신율 92%. 근데 시장이 작다. B2B는 원래 느리다. '빠르게 성장하는 B2B SaaS' 모순 같은 말이다. 한국에선 특히.시나리오를 돌려본다 점심시간. 혼자 회의실. 노트북 켰다. 엑셀. "시나리오 분석 2025.xlsx" 세 가지 케이스. 보수:월 성장률 5% 유지 8개월 후 MRR 1780만원 런웨이 소진. 망함.중립:월 성장률 10% 달성 대형 고객 2개 유치 8개월 후 MRR 2600만원 브릿지 투자 1억 필요. 근데 받을 수 있나?낙관:월 성장률 20% 엔터프라이즈 고객 진입 6개월 후 MRR 3700만원 프리A 투자 유치 가능셀을 만지작거렸다. 숫자를 바꿔봤다. 성장률 15%로 조정. 2900만원. 20%로 올림. 3700만원. 25%로. 4200만원. "25%가 가능할까?" 혼잣말. 지난 3개월 평균이 7%다. 갑자기 3배 빠르게? 마케팅을 늘려도 한계가 있다. 예산도 없고. 영업 인력 늘릴까? 그럼 비용이 더 늘어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한숨. 컵라면 먹었다. 매운 것. 입맛이 없는데 억지로. 팀원들은 모른다 오후 3시. 전체 회의. "지난주 성과 공유할게요." 영업팀이 발표했다. "데모 미팅 8건, 제안서 발송 5건, 계약 2건입니다!" 박수 쳤다. 나도 쳤다. "수고했어요. 이 속도 유지하면 다음 달 목표 달성 가능하겠네요." 밝게 말했다. 팀원들이 웃었다. 기운차 보였다.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갔다. 개발팀 리드가 다가왔다. "대표님, 신규 기능 개발 우선순위 상의드리고 싶은데요." "응, 말해봐." "AI 기반 자동화 기능이요. 개발 기간 3개월 정도 예상되는데..." 고민했다. 3개월. 그때까지 우리가 있을까? "일단 MVP부터 만들어보자. 1개월 안에. 고객 반응 보고 결정." "넹!" 돌아가는 뒷모습 봤다. 저 친구는 모른다. 런웨이가 8개월인 걸. 월급이 늦어질 수도 있단 걸. 아는 건 나랑 CFO만. CFO라고 쓰고 경리 알바라고 읽지만. 팀원들한테는 말 안 한다. 말하면 불안해한다. 불안은 전염된다. 생산성이 떨어진다. '대표의 의무는 희망을 파는 거다.' 어디서 들었다. 창업가 강연에서. 맞는 말이다. 근데 힘들다. 나도 불안한데 밝은 척. 경쟁사 뉴스 밤 9시. 아직 회사. 네이버 뉴스 봤다. 습관적으로. "워크플로우랩, 시리즈B 200억 투자 유치" 제목 보자마자 심장이. 기사 열었다. "누적 투자액 350억... 월 MRR 5억 돌파... 엔터프라이즈 시장 공략..." 5억. 우리의 40배. 댓글 봤다. "부럽다" "역시 타이밍이 중요함" "1등만 살아남는 시장" 마지막 댓글. 뼈맞았다. B2B SaaS는 승자독식이다. 1등이 다 먹는다. 우린 몇 등일까? 경쟁사 리스트 머릿속에 그렸다.워크플로우랩: MRR 5억 오토메이트: MRR 2억 플로우허브: MRR 8000만원 우리: MRR 1200만원5위? 6위? "차별점이 뭐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제품이 나쁘진 않다. 고객 만족도 높다. 근데 알려지지 않았다. 마케팅 예산이 없어서. 브랜드 파워가 없다. 레퍼런스가 약하다. 대기업 고객이 없다. 그래서 대기업이 안 온다. 순환논리. "먼저 성장했으면..."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노트북 닫았다. 퇴근했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 11시 막차. 사람 없다. 앉았다. 핸드폰 열었다. 아내한테 카톡. "이제 출발. 30분 후 도착" "ㅇㅇ 조심히와" 짧다. 피곤한가보다. 당연하다. 매일 늦으니까. 창밖 봤다. 어둡다. '이 속도로 가면 정말 살아남을까?' 질문이 맴돈다. 매일. 월 MRR 1200만원. 성장하고 있다. 근데 느리다. 느린 게 죄다. 스타트업에선. 빠르게 망하거나 빠르게 성장하거나. 둘 중 하나. 느리게 성장? 그냥 천천히 죽는 거다. "속도를 내야 한다." 중얼거렸다. 옆에 아무도 없는데 말했다. 어떻게? 모르겠다. 솔직히. 마케팅 예산 늘릴까? 돈 없다. 영업 인력 늘릴까? 그럼 런웨이가 더 줄어든다. 제품 개선? 이미 하고 있다. 피봇? 지금 것도 제대로 못 키웠는데? '정답이 없다.' 스타트업은 원래 그런 거다. 정답 없는 문제. 그래도 풀어야 한다. 못 풀면 망한다. 핸드폰 꺼냈다. 메모장. "해야 할 것들"대형 고객 1개 무조건 따기 - MRR 300만원 이상 마케팅 효율 올리기 - CAC 30% 절감 목표 제품 개선 속도 2배로 - 개발 스프린트 2주→1주 브릿지 투자 옵션 알아보기 - 최소 5000만원적었다. 구체적으로. 근데 적어놓으면 뭐해. 실행이 문제지. "내일부터." 혼잣말. 매일 하는. 집 앞 현관문 열었다. 조용하다. 아내는 자고 있다. 딸도. 거실 불 켰다. 어두컴컴했던 집이 밝아졌다. 냉장고 열었다. 맥주 한 캔. 소파에 앉았다. 마셨다. 노트북 가방 봤다. 다시 열까? 스프레드시트 한 번 더 볼까? 시나리오 하나 더 돌려볼까? "...그만하자." 맥주 다 마셨다. 캔을 구겼다. 씻으러 갔다. 거울 봤다. 36살. 눈 밑에 다크서클. 머리숱 줄었다. 확실히. "버틸 수 있을까?" 거울 속 나한테 물었다. 대답 없다. 당연하다. 버텨야 한다. 선택지가 없다. 직원 8명 먹여살려야 한다. 투자금 3억 책임져야 한다. 가족 먹여살려야 한다.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또 혼잣말. 성장해야 한다. 빠르게. 근데 어떻게? 내일 생각하자. 오늘은 자자. 침대 누웠다. 아내 옆에. 눈 감았다. '월 MRR 1200만원. 다음 달은 1300만원 만들자.' 100만원. 8.3% 성장. 가능하다. 해야 한다. 잠들었다. 3시간 후 다시 깰 거다. 그래도 잤다.MRR 1200만원. 성장하는데 느리다. 내일도 싸운다. 숫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