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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 14 Dec, 2025
새벽 2시, 창업 실패 사례 검색하기
새벽 2시, 창업 실패 사례 검색하기 잠이 안 온다 새벽 2시 13분.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다. 딸은 작은방에서 쿨쿨. 나만 깨어있다. 오늘도 눈이 떠졌다. 3시간 자고. 런웨이가 8개월 남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다. 거실로 나왔다. 맥북을 폈다. 화면 밝기를 최소로. 슬랙을 확인했다. 새벽 1시에 개발팀 민수가 올린 메시지. "내일 배포 일정 하루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한숨이 나왔다. 고객사 데모가 내일인데.검색창에 치는 단어들 구글을 켰다. "스타트업 실패 사례" 엔터를 눌렀다. 이상하다. 밤에 이런 걸 검색하는 게. 우울해지는 걸 알면서. 그런데 자꾸 찾게 된다. 첫 번째 기사. "유망 스타트업 OO, 시리즈A 직후 폐업... 직원 25명 실직" 클릭했다. 기사를 읽었다. 투자 받고 6개월 만에 망했다. 번레이트가 너무 높았다고. 고객 확보에 실패했다고. 우리랑 비슷하다. 우리도 시드 받고 1년 반 지났다. 매출은 1200만원. 번레이트는 월 2800만원. 계산기를 켰다. 8개월이면 2억 2400만원. 통장에 2억 8000만원.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검색. "SaaS 스타트업 폐업" 또 클릭했다. 29개 기업이 나왔다. 작년 한 해만. 대부분 B2B. 스크롤을 내렸다. 하나하나 읽었다. "초기 트랙션은 좋았으나 이탈률이..." "투자 유치 실패로 자금난..." "팀 내부 갈등으로..." 새벽 2시 38분. 커피를 타러 갔다. 디카페인. 카페인 마시면 아침까지 못 잔다. 그런데 어차피 잠은 안 온다. 내 사업도 저렇게 거실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 화면을 봤다. "실패한 스타트업의 공통점 7가지" 클릭.시장 수요 오판 자금 관리 실패 팀 구성원 이탈 경쟁사 대응 실패 피봇 타이밍 놓침 투자 유치 실패 번아웃7개 중에 우리는 몇 개? 시장 수요. 있긴 한데, 생각보다 작다. 우리 솔루션 쓸 만한 기업이 한국에 500개 정도? 그중에 지금 30개 쓰고 있다. 자금 관리. 번레이트 줄이려고 했는데 안 줄어든다. 개발자 한 명이라도 빼면 제품 개발이 멈춘다. 팀 이탈. 아직 없다. 그런데 프리A 못 받으면? 경쟁사. 요즘 똑같은 거 만드는 팀이 3개 생겼다. 돈 더 많이 받은 곳도 있다. 피봇. 해야 하나? 6개월 전부터 고민 중. 근데 방향을 모르겠다. 투자 유치. 지금 10군데 진행 중. 5군데는 거절. 5군데는 "검토 중". 번아웃. 나는 이미. 7개 중에 5개.댓글을 읽는다 기사 하단에 댓글이 있었다. 읽었다. "창업이 뭐가 대단한가요. 망하면 직원들만 피해" "투자 받았으면 책임지고 해야지" "요즘 창업 너무 쉽게 생각함" 숨이 막혔다. 우리 직원 8명. 민수는 네이버 다니다가 왔다. 연봉 깎고. 지원이는 결혼 앞두고 있다. 영업팀 수진이는 대학원 포기하고 합류했다. 다들 나를 믿고 왔다. "박대표님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그 말들이 떠올랐다. 새벽 3시 5분. 다른 기사를 열었다. "나는 왜 창업에 실패했나 - 전 OO 대표 회고" 장문의 글이었다. 읽었다. 전부. "처음엔 자신 있었습니다. 시장도 있었고, 팀도 좋았고, 기술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얘기 같았다. "투자자들은 '다음 라운드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다음 라운드는 오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VC 미팅이 떠올랐다. "트랙션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이네요. 3개월 뒤에 다시 연락드리죠." 3개월. 런웨이는 8개월인데. 스프레드시트를 연다 검색을 멈췄다. 구글 시트를 열었다. "시나리오 분석 v47" 매번 수정하는 파일이다. 세 가지 시나리오. 보수: 월 매출 성장률 5%, 6개월 내 투자 실패 중립: 월 매출 성장률 15%, 4개월 내 프리A 5억 낙관: 월 매출 성장률 30%, 3개월 내 프리A 10억 보수 시나리오를 봤다. 10개월 후 현금 소진. 팀원 4명으로 축소. 제품 개발 중단. 좀비 상태로 6개월. 폐업.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 정리 비용: 4500만원" "사무실 위약금: 360만원" "투자금 반환 압박: 예상 불가"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마셨다. 소파에 다시 앉았다. 화면을 봤다. 아까 그 기사들. "저들도 처음엔 잘될 거라고 생각했겠지." 다들 시작은 비슷했을 것이다. 투자 받고, 팀 꾸리고, 사무실 얻고, 제품 만들고. 데모데이에서 발표하고, 언론에 나오고, "유망 스타트업" 타이틀 받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매출이 안 늘고, 투자가 안 되고, 직원이 나가고, 돈이 떨어지고. 끝.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아니, 될 확률이 더 높다. 통계를 봤다. 시드 투자 받은 스타트업의 생존율. 5년 후 10%. 우리는 지금 2년 6개월. 10%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새벽 3시 42분. 검색창에 또 쳤다. "창업 실패 후 재취업" 엔터. 기사가 나왔다. "전 스타트업 대표, 대기업 복귀 어려워... 경력 단절 위험" 읽었다. 36세. 나이. 창업 경력 3년. 실패하면 공백. 대기업 재입사. 어렵다. 중견기업. 연봉 많이 깎인다. 다시 창업. 투자 받기 더 어렵다. "실패한 창업가" 낙인. 그래도 검색한다 왜 이런 걸 찾는 걸까. 새벽마다. 실패 사례, 폐업 통계, 최악의 시나리오. 우울해지는 걸 알면서. 생각해봤다. 준비하는 건가. 실패를 미리 경험해보는 건가. 아니면. 확인하는 건가. 내가 느끼는 불안이 진짜라는 걸. 모르겠다. 그냥 자꾸 찾게 된다. 밤에 혼자 있으면. 낮에는 팀원들 앞에서 웃는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이번 달 MRR 15% 늘었잖아." "투자 곧 될 거야." 그런데 혼자 있으면. 검색한다. "스타트업 망하는 이유" "투자 유치 실패 후기" "창업 후회" 기사를 읽는다. 댓글을 읽는다. 숫자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새벽 4시 8분. 노트북을 덮었다. 침대로 돌아갔다. 아내 옆에 조용히 누웠다. 천장을 봤다. 8시간 후면 출근이다. 팀원들을 만나면 또 웃어야 한다. "오늘도 화이팅!" 그런데 지금은. 혼자 무섭다.새벽의 검색 기록은 아무도 모른다. 낮의 나는 괜찮은 척하고, 밤의 나는 실패를 검색한다. 그게 창업가의 이중생활이다.
- 11 Dec, 2025
창업 동기 모임,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곳
월요일 밤 9시 30분 성수동 작은 술집. 창업 동기 4명이 모였다. 나, 이수진(헬스케어 앱), 김민준(푸드테크), 정하늘(에듀테크). 2년 전 같은 액셀러레이터 출신이다. "박창업 왔네. 요새 어때?" "그냥 굴러간다. 너희는?" 첫 맥주 한 잔은 늘 이렇게 시작한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서로 눈치 본다.두 번째 잔부터 달라진다. "사실 이번 달 월급 내가 월급 받을까 말까다." 민준이가 먼저 터뜨렸다. "나도. 통장에 2300만원 남았어. 런웨이 두 달." 수진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웃긴데 웃기지 않았다. "우리 8개월. 그것도 프리A 못 받으면." 내가 말했다. 하늘이가 소주를 따랐다. "우리 팀은 핵심 개발자가 나간대. 카카오 제안 받았다고."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이게 우리의 진짜 이야기다. 다른 데선 못 하는 말들 부모님 만나면 "잘 돼가"라고 한다. 투자자 미팅에선 "성장세 가파릅니다"라고 한다. 대학 동기들 만나면 "바쁘긴 한데 재밌어"라고 한다. 아내한테는 "곧 나아질 거야"라고 한다. 전부 거짓말은 아니다. 그냥 전부 진실도 아닐 뿐.여기선 다르다. "시리즈A 받은 회사 보면 배아프지 않아?" "개나 소나 시리즈B 받더라. 우린 시드도 간당간당한데." "경쟁사 IR 덱 봤어? 우리보다 숫자 별로던데 투자 받았어." "공동창업자랑 지분 문제로 싸웠어. 진짜 헤어질 뻔했어." 이런 말 할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다. 민준이가 물었다. "너희 팀원들한테 회사 상황 얼마나 솔직하게 말해?" "반만.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수진이가 답했다. "나도. 괜히 이직 준비하면 어쩌나." 내가 말했다. "근데 솔직하게 말 안 하면 더 불안해하더라." 하늘이가 소주잔을 비웠다. "맞아. 이번에 직원 한 명이 사실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대표 얼굴만 봐도 안다고." 우리는 웃었다. 쓴웃음. 숫자로 말하는 고독 "이번 달 MRR 얼마?" 민준이가 물었다. "1200. 지난달이랑 비슷해." "나는 800. 두 달째 제자리." "우리 400. 작년보다 줄었어." "나는... 150." 하늘이가 말을 아꼈다. 우리도 더 안 물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못 한다. 그래서 더 무겁다."근데 MRR 낮다고 망하는 건 아니잖아." 수진이가 말했다. "맞아. 토스도 처음엔." "배민도 5년 적자였고." "쿠팡은 10년." 우리는 이런 이야기로 서로를 위로한다. 성공한 회사들의 과거를 끄집어낸다. 근데 속으론 안다. 저 회사들은 살아남았지만, 수천 개는 죽었다는 걸. "그래도 해야지 뭐." 민준이가 말했다. "응. 해야지." 3차는 편의점 11시 넘어서 나왔다. 술집 문 닫을 시간.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캔맥주 하나씩 들고. "진짜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도 돼?" 하늘이가 물었다. "뭔데?" "너희 망하면 뭐 할 거야?" 공기가 무거워졌다. 우리 다 생각해본 질문이다. "취업? 근데 나이가." "프리랜서? 근데 커리어가." "또 창업? 근데 돈이." 답은 없었다. "그냥 안 망하면 되는 거 아냐?" 내가 말했다. "개논리네." 민준이가 웃었다. "근데 맞는 말 같기도." 수진이도 웃었다. 우리는 캔을 부딪쳤다. 딸각. 얇은 알루미늄 소리. "그래. 안 망하자." "건배." 집으로 가는 택시 안 12시 10분. 택시 뒷좌석. 휴대폰 확인했다. 슬랙 알림 3개. 개발팀에서 버그 리포트. 내일 아침 확인하면 된다. 아내한테 카톡 왔다. "언제 와?" "지금 가는 중" "조심히 와" 딸 사진도 보내줬다. 이불 킥오프하고 자는 모습. 화면 끄고 창밖 봤다. 한강 다리 지나간다. 오늘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 런웨이, MRR, 투자, 직원 이탈, 경쟁사. 전부 무거운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혼자 아닌 것 같아서. 나만 힘든 게 아니라서. 같이 버티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음 달 모임 날짜 단톡방에 메시지 왔다. "다음 달 셋째 주 월요일?" "ㅇㅋ" "ㄱㄱ" "+1" 나도 답장했다. "ㅇㅇ" 별 말 아닌데 중요한 약속이다. 이 모임이 없었으면, 작년에 이미 접었을 수도 있다. 수진이가 시리즈A 받기 직전에 포기하려 했을 때, 민준이가 공동창업자랑 싸워서 회사 나가려 했을 때, 하늘이가 피봇 3번째 하면서 무너졌을 때, 우리가 붙잡았다. "조금만 더." "지금 그만두면 아깝다." "다음 달에 또 보자." 그렇게 버텼다. 지금도 버티고 있다. 새벽 1시 집 도착했다. 조용히 문 열고 들어갔다. 딸은 자고 있고, 아내는 거실 소파에서 노트북 보고 있다. "왔어?" "응. 안 자?" "기다렸지." 미안했다. "동기들은 잘 있어?" "응. 다들 바쁘대." "바쁘다"는 말 속에 숨은 진짜 이야기들. 아내는 모른다. 아니, 알까? 눈치챘을 수도. "씻고 자." "응."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다음 주엔 투자사 미팅 2개. 다다음 주엔 제품 업데이트. 월말엔 또 월급날. 버텨야 한다. 동기들도 버티는데. 핸드폰 다시 켰다. 단톡방 확인했다. 민준: "오늘 고마웠어들" 수진: "ㅇㅇ 힘 났다" 하늘: "다음 달까지 살아있자" 나도 답장했다. "ㄱㄱ" 화면 껐다. 창업은 외롭다. 대표는 더 외롭다. 근데 가끔은 덜 외롭다. 이런 날 때문에.다음 달 셋째 주 월요일까지. 또 버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