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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 28 Dec, 2025
프리A 투자 준비, 두 번째 등반을 시작하며
프리A 투자 준비, 두 번째 등반을 시작하며 시드는 베이스캠프였다 시드 투자 받은 게 1년 6개월 전이다. 그때는 이게 정상인 줄 알았다. 3억 받고 '드디어 시작이다' 했다. 팀원들이랑 고깃집 가서 '우리가 해냈다' 건배했다. 아내한테 전화해서 "여보, 투자 받았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그건 출발선이었다. 아니, 등산로 입구 매점이었다.시드 투자자들은 착했다. 트랙션 없어도 팀만 괜찮으면 투자했다. "네이버 출신이시네요, 좋습니다" 이 정도로 통했다. IR 자료 20페이지면 충분했다. 프리A는 다르다. 지난주 VC 미팅에서 들었다. "MRR이 1200이면... 좀 더 성장하고 다시 연락 주세요." 웃으면서 말하는데 칼이었다. 다른 투자사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유닛 이코노믹스는 어떻게 되죠?" 준비 안 한 질문이었다. 버벅였다. 미팅 끝나고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주먹 쥐었다. 시드는 가능성에 투자한다. 프리A는 증명에 투자한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더 가파르다. 숫자가 전부다 요즘 나는 숫자에 파묻혀 산다. MRR, ARR, CAC, LTV, 처음 듣는 건 하나도 없다. 근데 우리 회사 숫자로 채우면 초라하다.월 매출 1200만원 (목표는 3000이었다) 고객사 23곳 (기업 고객 타깃인데 이건 좀...) 이탈률 12% (허용 범위긴 한데 더 낮춰야 한다) CAC 회수 기간 8개월 (투자자들은 6개월 이하를 원한다)새벽 3시에 엑셀 시트를 만진다. '만약 다음 달 MRR이 15% 성장하면... 6개월 후엔...' 시나리오를 돌린다. 보수적 시나리오, 중립 시나리오, 낙관적 시나리오. 보수적으로 봐도 런웨이는 8개월이다. 프리A 받으려면 최소 4개월은 걸린다. 여유는 4개월. 4개월 안에 MRR을 2배로 만들어야 한다. 가능한가? 모르겠다. 해야 한다. 시드 때는 "우리 이런 거 만들고 있어요" 하면 됐다. 지금은 "지난 분기 대비 성장률 47%입니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그래프의 기울기를 본다. 각도가 가파를수록 좋다. 우리 그래프는 완만하다. 성장은 하는데 느리다. "대표님, 이 정도 성장률이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팀원이 물었다. "괜찮긴 한데... 투자받기엔 부족해." 솔직했다. 팀원 표정이 어두워졌다. IR 자료는 50번을 고쳤다 IR 덱을 다시 만들고 있다. 시드 때 썼던 건 버렸다. 그때는 '우리의 비전'이 앞에 있었다. 지금은 '트랙션'이 첫 페이지다. 투자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명확하다.얼마나 빨리 크는가 돈을 벌 수 있는가 시장은 큰가 팀은 해낼 수 있는가순서도 이거다. 팀이 제일 뒤다. 시드 때는 반대였다. 팀이 먼저였다.IR 자료 11페이지. "지난 6개월 MRR 추이" 그래프를 그렸다. 우상향이긴 한데 각도가 아쉽다. 색을 바꿔봤다.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초록색이 제일 긍정적으로 보인다. 아니다. 속임수다. 색 바꾼다고 성장률이 바뀌나. 지웠다. 다시 파란색으로. IR 자료 18페이지. "고객사 인터뷰" "귀사의 솔루션 덕분에 업무 효율이 30% 향상됐습니다." 실제 고객이 한 말이다. 녹취록을 6번 들었다. 확실하다. 이런 게 필요하다. 정성적 피드백. 숫자만으론 부족하다. IR 자료 25페이지. "향후 12개월 로드맵" 여기가 제일 어렵다. '신규 기능 3개 출시, 고객사 80곳 확보, MRR 5000만원 달성' 이렇게 썼다가 지웠다. 너무 낙관적이다. '신규 기능 2개 출시, 고객사 50곳 확보, MRR 3500만원 달성' 다시 썼다. 그래도 도전적이다. 투자자들은 안다. 스타트업 로드맵은 대부분 안 맞는다는 걸. 근데 없으면 안 된다. 계획 없이 가는 배는 투자 안 한다. 밤 11시. 저장하고 껐다. 내일 다시 본다. 분명히 또 고칠 게 보인다. 미팅은 20개를 잡았다 프리A 준비하면서 VC 리스트를 만들었다. 국내 VC 50개. 이 중에 B2B SaaS에 투자하는 곳은 20개 정도. 여기서 프리A 단계 투자하는 곳은 15개. 15개 전부 컨택했다. 답장 온 곳은 12개. 미팅 잡힌 곳은 8개. 실제로 만난 곳은 지금까지 5개. 결과는 이렇다.1곳: "관심 있습니다. 다음 미팅 잡죠." 2곳: "트랙션 좀 더 보고 연락 주세요." 2곳: "저희 포트폴리오랑 안 맞을 것 같네요."1곳이라도 관심 보인 게 다행이다. 근데 그 1곳도 확정은 아니다. "관심 있다"는 "투자한다"가 아니다. 이건 시드 때 배웠다. "대표님, VC들이 보통 몇 번 미팅해요?" 팀원이 물었다. "3~5번? 길면 더." "그럼 이제 시작이네요." 맞다. 시작이다. 투자자 미팅은 소개팅이 아니다. 결혼 상대 고르는 거다. 서로 신중하다. 미팅 때마다 느낀다. 내가 설득하는 건지, 내가 검증받는 건지. 아마 둘 다다. "그래서 대표님은 왜 이걸 하시는 건가요?" 갑자기 본질적인 질문이 날아온다. IR 자료엔 없는 질문. "...고객사들이 수작업으로 하루 3시간 쓰는 일을 10분으로 줄여줄 수 있어서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투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했다. 이런 순간이 중요하다. 숫자만으론 안 된다. 이 사람이 왜 이걸 하는지, 끝까지 갈 사람인지. 그게 보여야 한다. 팀원들 앞에선 웃는다 월요일 아침 스탠드업 미팅. "이번 주 목표는 신규 고객 5곳 컨택, 기능 개발 QA 완료, 그리고..." 말을 이었다. "투자 관련해서도 좋은 소식 있을 거예요." 팀원들이 웃었다. "대표님, 투자 잘 되고 있어요?" "응, 진행 중이지. 괜찮아." 거짓말은 아니다. 진행은 하고 있다. 잘 되고 있냐고 물으면 모르겠지만. 팀원들 앞에선 불안한 티를 내면 안 된다. 특히 투자 관련해선. 이건 대표의 몫이다. 직원들은 월급을 믿고 일한다. 그 믿음을 흔들면 안 된다. 개발팀장이 물었다. "대표님, 런웨이는 충분하죠?" "충분해. 걱정 마." 8개월이 충분한가? 아니다. 근데 말했다. 충분하다고. 미팅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슬랙에 투자사에서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희 내부 검토 결과 현재 단계에서는 투자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정중한 거절이다. 읽고 지웠다. 다음 투자사 메일을 확인했다. 답장이 없다. 3일째다. 괜찮다. 15개 중 5개 만났다. 10개 남았다. 통계적으로 보면 프리A 투자 받으려면 평균 30개 정도 VC를 만난다고 한다. 이제 1/6 온 거다. 숫자로 보면 담담해진다. 감정을 빼고 확률로 본다. 아내는 모른다 저녁 8시. 집에 전화했다. "여보, 오늘도 늦어. 미안해." "또? 밥은 먹었어?" "응, 먹었어." 거짓말이다. 안 먹었다. "딸이 아빠 보고 싶대. 주말엔 시간 돼?" "...주말에 투자사 미팅 하나 있어. 토요일 오전만. 오후엔 같이 놀아줄게." 한숨 소리가 들렸다. 뭐라 하진 않았다. "알았어. 조심히 들어와." 끊었다. 아내한테 말 안 한 게 있다. 프리A 못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런웨이 8개월. 그 안에 투자 못 받으면 두 가지 선택이다. 팀 줄이거나, 문 닫거나. 말하면 걱정한다. 잠 못 잔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 받는데 집에선 괜찮아야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다. 딸 얼굴이 떠올랐다. 3살. 아빠가 뭐 하는지 모른다. "아빠는 회사 가" 이 정도만 안다. 나중에 크면 말해줄까. "아빠가 너 3살 때 엄청 힘들었어. 근데 해냈어." 이렇게. 아니면 "아빠가 도전했다가 실패했어. 근데 최선을 다했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숨기고 싶진 않다. 두 번째 등반이 더 어렵다 시드는 첫 등반이었다. 장비 챙기고, 날씨 보고, 출발했다. 힘들었지만 설렜다. '드디어 시작이다' 그 느낌. 프리A는 다르다. 이미 한번 올랐다. 힘든 걸 안다. 더 가파른 걸 안다. 그래도 가야 한다는 걸 안다. 설렘보단 각오다. 어제 밤에 창업 실패 사례를 검색했다. 안 좋은 버릇이다. 근데 자꾸 찾아본다. "프리A 투자 받지 못해 폐업" 기사가 나왔다. 읽었다. 우리랑 비슷한 회사였다. B2B SaaS, 시드 투자 3억, 팀 10명. MRR이 정체되면서 투자 못 받았다고 한다. 런웨이 끝나고 6개월 버티다가 결국 문 닫았다. 대표 인터뷰가 있었다. "좀 더 빨리 피봇할 걸 그랬습니다." 창을 껐다. 우리는 피봇해야 하나? 아니다. 방향은 맞다. 속도가 문제다. 빨리 가야 한다. 새벽 4시.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할 수 있다.' 속으로 말했다. '할 수 있어.' 매일 하는 주문이다. 시드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프리A는 성장을 증명해야 한다. 두 번째 등반. 더 높다. 더 가파르다. 더 춥다. 그래도 간다. 정상은 저기 있다.런웨이는 8개월. 시간은 흐른다. 숫자를 만들어야 한다.
- 08 Dec, 2025
시드 투자 받고 1년 반, 여전히 돈 얘기다
시드 투자 받고 1년 반, 여전히 돈 얘기다 새벽 3시, 엑셀을 켠다 또 깼다. 새벽 3시 12분. 슬랙 확인하고, 이메일 확인하고, 결국 노트북을 켠다. 오늘도 그 파일을 열었다. "캐시플로우_최종_진짜최종_v23.xlsx" 런웨이 8개월. 정확히는 247일. 직원 8명 월급 3,200만원. 사무실 월세 180만원. 서버비 120만원. 잡비 포함하면 월 소진 4,500만원. 현재 잔고 3억 6천. 계산기 두드린다. 8개월 맞다. MRR은 1,200만원. 지난달보다 80만원 올랐다. 좋은 건가? 모르겠다. 투자자들은 "트랙션이 약하다"고 한다.커피를 끓인다. 오늘 첫 잔. 아직 아침도 아닌데. 1년 반 전, 그날 시드 투자 받던 날 기억난다. 2023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3억 입금됐다. 아내한테 꽃 사줬다. 딸 장난감도 샀다. 팀원들이랑 고깃집 갔다. "대표님, 이제 좀 숨통 트이겠네요!" 개발팀 막내 준석이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웃었다. "그러게. 이제 제품 개발만 집중하면 돼." 거짓말이었다. 투자 받는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억은 많은 돈이 아니었다. 시간을 산 거다. 18개월. 처음 3개월은 괜찮았다. 개발에 집중했다. 베타 버전 나왔다. 초기 고객 5곳 확보했다. 6개월 차, 잔고 확인했다. 2억 남았다. 1억이 증발했다. 빨랐다. 9개월 차, 첫 번째 프리A 미팅 시작했다. VC 파트너가 물었다. "MRR이 800만원이면, 성장률이..." 말을 흐렸다.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일단 트랙션 더 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날 밤, 아내가 물었다. "투자 잘됐어?" "응, 검토 중이래." 또 거짓말이었다.지금, 프리A 레이스 현재 진행 중인 VC 미팅. 5곳.A 펀드: 2차 미팅 대기 (3주째) B 캐피탈: "시장 검증 더 필요" (사실상 거절) C 벤처스: IR 자료 재요청 (7번째 수정) D 인베스트먼트: 실사 진행 중 (희망 50%) E 파트너스: 다음주 첫 미팅목표 금액 10억. 최소 7억은 받아야 한다. 7억 받으면 런웨이 18개월 추가. 그때까지 PMF 찾아야 한다. 안 그러면 끝이다. 투자 IR 덱 열어본다. 53페이지. 지난주에 49페이지였다. 자꾸 늘어난다.문제 정의 솔루션 시장 규모 비즈니스 모델 트랙션 팀 소개 재무 계획 투자 제안다 외운다. 발표는 15분인데 준비는 100시간 했다. 어제 D 인베스트먼트 실사팀이 물었다. "고객사 이탈률이 20%인데, 원인이 뭔가요?" 준비한 답변 나왔다. "초기 고객사는 피봇 과정에서 이탈했습니다. 최근 3개월 신규 고객 이탈률은 5%입니다." 숫자는 정확했다. 하지만 떨렸다.집에 와서 아내가 물었다. "실사 어땠어?" "괜찮았어. 다음주에 또 보기로 했어." "그럼 잘된 거네?" "...응." 딸이 안겼다. "아빠! 같이 놀자!" "미안, 아빠 일 좀 해야 해." 딸 표정 봤다. 실망했다. 방에 들어와서 노트북 켰다. 캐시플로우 파일 다시 열었다. 시나리오 A (낙관): 다음달 투자 유치 성공, 7억 확보 시나리오 B (중립): 3개월 내 투자 유치, 5억 확보시나리오 C (보수): 6개월 지연, 브릿지 론 필요 시나리오 D는 안 만들었다. 만들기 싫었다. 돈 얘기를 하는 이유 창업 전에는 몰랐다. 스타트업이 이렇게 돈 얘기만 하는 줄. 제품 만들고, 고객 만나고, 문제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맞다. 그것도 한다. 하지만 하루의 30%는 돈 얘기다. 월요일 오전, CFO 미팅. "이번 달 번률 82%입니다." 화요일 오후, 투자자 콜. "다음 마일스톤은 언제쯤?" 수요일 저녁, 영업팀장. "이 고객사 계약하려면 2개월 무료 써보게 해야 해요." 목요일 새벽, 혼자. 엑셀 파일. 런웨이 계산. 금요일 밤, 또 혼자. 이번엔 밸류에이션 고민. 시드 라운드 밸류에이션 30억이었다. 프리A는 80억 제시하려고 한다. VC가 물을 거다. "근거가 뭔가요?" 준비한 답변 있다. "ARR 성장률, CAC 대비 LTV, 시장 점유율..."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르다. '그 정도는 받아야 우리가 산다.' 어젯밤 대학 동기 단톡방에 메시지 왔다. "창업 형님들~ 요즘 잘되시죠? ㅋㅋ" 대기업 다니는 친구였다. 악의는 없었다. 그냥 궁금한 거였다. 답장 안 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잘돼!' - 거짓말 '힘들어' - 오해 받음 '보통?' - 애매함 그냥 읽씹했다. 8개월, 충분한가 매일 계산한다. 8개월이면 뭘 할 수 있나.신규 고객 20곳 확보 (현실적?) MRR 3,000만원 달성 (가능한가?) 프로덕트 2.0 출시 (개발 일정 빠듯함) 팀 확장 (돈 있어야 뽑음)모순이다. 성장하려면 사람 뽑아야 하는데, 사람 뽑으면 런웨이 줄어든다. 영업팀장 민수가 지난주에 말했다. "대표님, 영업 한 명만 더 뽑아주시면 매출 2배 만들 수 있어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못 뽑는다. 영업사원 1명 인건비 월 400만원. 연 4,800만원. 지금 뽑으면 런웨이 7개월로 줄어든다. 안 뽑으면 성장 더디다. 투자 더 어렵다. 이러나 저러나다. 밤에 민수한테 답장 보냈다. "일단 우리가 더 뛰어보자. 조금만 기다려줘." 미안했다. 민수도 알 거다. 돈 없다는 거. 개발팀은 또 다르다. CTO 재훈이가 2주 전에 물었다. "클라우드 인프라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데, 예산 나올까요?" 견적 봤다. 월 200만원 추가. "다음 분기에 검토하자." 재훈이 표정 봤다. 실망했다. 그날 밤 재훈이한테 따로 연락했다. "미안하다. 투자 받으면 바로 할게." "아니에요, 대표님. 이해해요." 이해한다고 했지만,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팀원들 다 안다. 돈 없다는 거. 버티고 있다는 거. 그래서 더 미안하다. 숫자 뒤의 사람들 투자 유치가 안되면 어떻게 되나. 시나리오 C 실행한다. 1단계: 불필요한 지출 제거 (사무실 다운사이징, 복지 축소) 2단계: 팀 구조조정 (8명 → 5명) 3단계: 브릿지 론 (빚내서 버티기) 4단계: ... 4단계는 생각 안 한다. 2단계에서 3명을 내보내야 한다. 누구를? 어떻게? 준석이? 입사 6개월. 젊고 열정 있다. 하지만 주니어다. 민수? 영업 실적 좋다. 하지만 연봉이 제일 높다. 디자이너 수진? 혼자서 모든 디자인 한다. 빼면 안 된다. 생각만 해도 잠이 안 온다. 이게 맞나. 창업이 이런 건가. 네이버 PM 할 때는 몰랐다. 팀원 구조조정 하는 게 이렇게 무거운 줄. 숫자 뒤에 사람이 있다. 준석이는 이번에 전세 계약한다고 했다. 민수는 다음달에 결혼한다. 수진이는 대출 갚고 있다. 다 안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더 투자 받아야 한다. 어제 아내가 물었다. "당신, 요즘 너무 힘들어 보여. 괜찮아?" "응, 괜찮아." "거짓말. 얼굴에 다 써있어." 말 없이 안겼다. "투자 안 되면 어떡해?" "...다시 취업하면 되지." "진심이야?" 대답 못 했다. 진심인지 모르겠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팀원들을... 내일도 VC 미팅이다 일정 확인한다. 내일 오후 3시, E 파트너스 첫 미팅. IR 덱 다시 열어본다. 54페이지가 됐다. 어제 경쟁사 분석 슬라이드 추가했다. 발표 연습한다. 혼자 회의실에서. "안녕하세요, 박창업입니다. 저희는 B2B SaaS..." 목소리 떨린다. 연습인데도. 다시. "안녕하세요, 박창업입니다." 좀 낫다. 핸드폰 꺼내서 녹음한다. 15분 발표 리허설. 들어본다. 어색하다. 7번 '음...' 했다. 다시 연습한다. 밤 11시 넘었다. 사무실 비었다. 나만 남았다. 창밖 본다. 성수동 불빛 반짝인다. 다른 스타트업들도 저렇게 버티겠지. 누구는 성공했고, 누구는 망했고, 누구는 나처럼 버티고 있을 거다. 노트북 닫는다. 내일 VC 미팅. 또 '검토해보겠습니다' 들을까. 아니면 이번엔 다를까. 모르겠다.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런웨이 8개월. 아직 시간 있다. 퇴근한다. 아내랑 딸 자고 있을 거다. 조용히 들어가야지.내일도 돈 얘기를 할 거다. 그게 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