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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 07 Dec, 2025
대학 동기 만남에서 '대표님~' 할 때
토요일 저녁 6시 동기 모임 단톡에 메시지가 왔다. "창업아 오늘 7시 강남 어때?" 3개월 만이다. 가야 한다. 안 가면 또 '바쁘시죠 대표님~' 소리 들을 거다.샤워하고 옷 입었다. 청바지에 후드티. 예전처럼. 근데 뭔가 맞지 않는다. 거울 속 나는 그냥 피곤해 보인다. 7시 10분 도착. 이미 5명이 와 있다. "어! 대표님 오셨네!" 시작됐다. 대표님 호칭의 무게 현우가 제일 먼저 반겼다. 대기업 과장 5년차. "대표님 요즘 어때요? 사업 잘되죠?" 대표님. 창업하기 전엔 그냥 '창업아'였다. "그냥 그래. 너는?" "저야 뭐... 회사 다니죠. 대표님처럼 멋진 일 못 하잖아요." 멋진 일. 웃긴다. 어제 새벽 3시에 현금흐름표 보면서 식은땀 흘린 건 멋진가.민수가 소주잔을 들었다. "창업이 형 대표 된 거 축하한다고! 늦었지만." 2년 반 전 일인데. 다들 잔을 들었다. 건배. 마셨다. "근데 직원 몇 명이에요 지금?" "8명." "우와... 8명 먹여 살리는 거네. 대단하다 진짜." 먹여 살린다. 그 표현이 칼처럼 박힌다. 이번 달 월급날이 5일 남았다. 통장 잔고는 6800만원. 월급이랑 4대보험, 사무실 월세, 서버비 나가면 2200만원 남는다. 다음 달 런웨이. 또 그다음 달. 성공했다는 착각 성민이가 물었다. "투자 많이 받았다며? 몇억?" "시드로 3억." "대박... 우리 연봉보다 많네." 웃음이 터졌다. 다들 부러워한다. 3억. 1년 반 전 일이다. 지금은 8개월 치 런웨이만 남았다. 프리A 투자 안 받으면 끝이다. 근데 그 얘긴 안 했다. 할 수가 없다. "요즘 매출은 어때요?" "월 천이백." "와... 월 천이백. 부럽다." MRR 1200만원. 들리는 것보단 별로다. 서버비, 마케팅비, 월세 빼면 마이너스다. 적자 운영이다. 계속 투자금 까먹는 중이다. 근데 이것도 말 안 했다.준호가 말했다. "나도 창업 할까 봐. 요즘 회사 너무 재미없어." "하지 마." 진심으로 말했다. "왜요? 대표님은 잘하시잖아요." 잘한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 매일 불안하다. 투자자 미팅 때마다 떨린다. 직원들 월급날 되면 잠 못 잔다. 이게 잘하는 건가. 거리감의 정체 고기를 구웠다. 먹었다. 소주를 마셨다. 다들 자기 얘기를 했다. 회사 얘기, 승진 얘기, 연봉 얘기. 나도 웃으면서 들었다. 근데 뭔가 다르다. 예전엔 같이 욕했다. "과장 개새끼", "야근 또 시키네", "이직 할까?" 지금은 그런 얘기 안 한다. 내 앞에서. "대표님은 그런 거 없으시죠?" "야근이요? 매일 하는데." "아 그건 본인 회사니까 다르죠. 우린 남의 회사잖아요." 다르다. 맞다. 근데 왜 이렇게 외로운가. 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힘든 거 없어요? 솔직히." 있다. 너무 많다. 어제 VC 미팅에서 또 거절당했다. "트랙션 더 보고 연락드릴게요." 지난주에 개발자 한 명이 퇴사 의사 밝혔다. 카카오에서 스카웃 왔다고. 이번 주에 경쟁사가 시리즈A 100억 받았다는 뉴스 봤다. 런웨이는 8개월밖에 안 남았다. 밤마다 '피봇해야 하나' 고민한다. 아내한테도 제대로 못 말한다. 딸이랑 놀아줄 시간도 없다. 근데 이 얘기를 어떻게 하나. "아니, 괜찮아. 재밌게 하고 있어." 웃으면서 말했다. 존경과 격리 2차는 안 갔다. "먼저 갈게. 내일 미팅 있어서." "역시 대표님은 바쁘시네요." "수고하세요!" "다음에 또 봐요!" 택시 탔다. 창밖을 봤다. 강남 거리는 밝다. 사람들이 많다. 다들 즐거워 보인다. 카톡이 왔다. 동기 단톡. "오늘 창업이 형 만나니까 좋았다" "역시 대표님 포스 대단함 ㅋㅋ"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지" 좋아요 5개. 포스. 웃긴다. 집에 도착했다. 11시. 아내랑 딸은 자고 있다. 노트북 켰다. 슬랙 확인했다. CTO가 메시지 남겼다. "내일 오전에 배포 이슈 논의 가능하신가요?" "가능. 9시 회의실." 답장 보냈다. IR 덱 파일을 열었다. 50번째 수정이다. 슬라이드 3번. "Our Traction." MRR 그래프가 올라간다. 느리지만. 이걸로 투자 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커피 내렸다. 여섯 번째다. 오늘. 대표님이라는 이름 대표님. 동기들은 존경한다고 말한다. 부럽다고 말한다. 용기 있다고 말한다. 근데 나는 그냥 매일 불안하다. 이게 성공인지 실패인지도 모르겠다. 투자 받았으니까 성공? 아니다. 직원 8명 있으니까 성공? 그것도 아니다. 매출 나오니까 성공? 적자인데. 대표라는 직함이 나를 그들과 격리시킨다. 같이 술 마시지만 같은 얘기는 못 한다. 같이 웃지만 같은 걱정은 나누지 못한다.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벽이 된다. 예전엔 같이 야근하면서 라면 끓여 먹고 욕하던 친구들. 지금은 조심스럽게 존댓말한다. "힘내세요 대표님." 고맙다. 근데 외롭다. 새벽 1시. 스프레드시트를 본다. 보수 시나리오: 5개월 후 자금 고갈. 중립 시나리오: 3개월 내 브릿지 투자 필요. 낙관 시나리오: 2개월 내 프리A 클로징. 어느 게 현실이 될까. 모른다. 일단 내일 CTO랑 배포 이슈 논의한다. 다음 주 VC 미팅 준비한다. 그다음 주 직원들 월급 입금한다. 계속 간다. "대표님"이라고 불러도 된다. 멀게 느껴져도 된다.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대표는 외롭다. 친구들 앞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