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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Dec, 2025
'데이터로 보여줘' - 직관은 믿지 않는 PM의 습관
'데이터로 보여줘' - 직관은 믿지 않는 PM의 습관 네이버에서 배운 것 네이버 PM 5년 했다. 그곳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숫자 없는 의견은 의견이 아니라는 것. "이거 좋을 것 같은데요." "사용자들이 원할 것 같아요." "경쟁사도 이렇게 하던데요." 신입 때 이런 말 했다가 선배한테 들었다. "데이터는?" 그때부터다. 모든 회의에 숫자 들고 들어갔다. 클릭률, 체류시간, 전환율, 이탈률. 로그 분석, A/B 테스트, 코호트 분석. 말할 때마다 근거를 댔다. 5년 하다 보니 몸에 배었다. 창업하고도 똑같다.팀원들과의 온도차 창업 초기, 팀원들이 힘들어했다. "대표님, 이 기능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아요." "데이터는?" "...아직 없는데 사용자들이 원할 것 같아서요." "어떤 근거로?" 기획자가 표정 굳는 게 보였다. 나는 악역이 되어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런웨이 8개월 남은 스타트업이다. 틀린 선택 한 번에 회사 죽는다. 감으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 실업자다. 개발자가 말했다. "이 기술 트렌디해요.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ROI는?" "...일단 해보고 측정하면 안 될까요?" "개발 기간 2주. 그 2주면 핵심 기능 고도화 할 수 있어. 그게 더 급해." 차갑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내 역할이다. 영업팀이 보고했다. "A사가 관심 있대요. 미팅 잡을까요?" "매출 규모는?" "중소기업인데..." "직원 수, 예상 계약 금액, 결제 주기는?" 디테일 물어보면 다들 준비 안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물어보는 거다.새벽 3시의 스프레드시트 오늘도 잠 못 잔다. 침대에 누웠는데 걱정이 올라온다. '이번 달 MRR 목표 달성 가능할까?' 일어나서 노트북 켠다. 아내가 뒤척인다. 미안하지만 확인 안 하면 못 잔다. 스프레드시트 연다. 우리 회사 대시보드다.이번 달 신규 계약: 3건 (목표 5건) 평균 계약 금액: 42만원 (목표 50만원) 해지율: 8% (목표 5% 이하) 남은 영업일: 9일계산기 두드린다. 최선의 시나리오, 최악의 시나리오, 현실적 시나리오. 세 개 다 돌려본다. 최선: 5건 더 계약, 평균 55만원 = 목표 달성 최악: 2건 계약, 1건 해지 = 목표 60% 달성 현실: 3건 계약, 평균 45만원 = 목표 75% 달성 75%. 나쁘지 않다. 하지만 VC한테는 안 좋게 보인다. "성장 둔화"라고 쓸 거다. 또 다른 시트 연다. 캐시플로우다. 현금: 1억 3200만원 월 고정비: 1650만원 런웨이: 8개월 직원 한 명 더 뽑으면? 7개월. 마케팅 비용 늘리면? 6.5개월. 사무실 이전하면? 5개월. 숫자가 머릿속을 돈다. 시나리오가 끝없이 이어진다. 새벽 4시가 됐다. 겨우 노트북 덮는다.투자자 미팅에서 IR 준비할 때도 똑같다. 덱 50번 넘게 고쳤다. 초기 버전은 비전, 미션, 팀 소개로 가득했다. VC 두 군데 만났다. 반응이 미지근했다. "트랙션은?" "성장률은?" "유닛 이코노믹스는?" 그제야 알았다. 투자자들도 숫자로 본다. 당연하다. 그들도 LP한테 설명해야 한다. 덱을 다시 짰다.슬라이드 1: MRR 그래프 (작년 대비 380% 성장) 슬라이드 2: CAC vs LTV (LTV/CAC 비율 3.2) 슬라이드 3: 리텐션 커브 (12개월 90% 유지) 슬라이드 4: 파이프라인 (2억 규모 계약 논의 중)스토리는 뒤로 뺐다. 숫자를 먼저 보여줬다. 미팅 분위기가 달라졌다. 20분짜리 미팅이 1시간으로 늘었다. 질문이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이 성장률을 어떻게 유지할 건가요?" "이 세그먼트에서 CAC가 낮은 이유는?" "엔터프라이즈로 확장 계획은?" 좋은 신호다. 관심 있다는 뜻이다. 한 VC 파트너가 말했다. "데이터 준비 잘하셨네요. PM 출신이라 그런가?" 맞다. PM 출신이라 그렇다. 숫자가 주는 안정감 사람들은 묻는다. "숫자에 집착하는 거 아니냐?" 맞다. 집착한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사람은 착각하고, 희망회로 돌리고, 편향에 빠진다. 하지만 숫자는 그냥 있다. "이거 잘될 것 같아요." "왜?" "느낌이 좋아요." 느낌은 믿을 수 없다. 특히 창업자의 느낌은. 우리는 우리 아이디어에 빠져 있다. 객관적으로 못 본다. "클릭률이 15% 떨어졌어요." "왜?" "A/B 테스트 결과 새 버튼 색상이 문제였어요." 이건 명확하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다시 바꾸면 된다. 숫자는 방향을 알려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감이 아니라 근거로. 특히 힘들 때 숫자가 버팀목이 된다. 투자 거절당했을 때, 직원이 퇴사했을 때, 경쟁사가 투자받았을 때. 불안하다. 혼란스럽다. 그때 스프레드시트 연다. 우리 MRR 그래프 본다. 작년 이맘때보다 380% 올랐다. 리텐션은 90%다. 고객들은 우리 제품 쓰고 있다. "괜찮아. 우리 잘하고 있어." 숫자가 말해준다. 직관을 버린 건 아니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직관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검증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직관에서 나온다. "이거 되겠는데?" 하는 느낌. 그건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검증해야 한다. 기획자가 말했다. "온보딩 플로우 바꾸면 전환율 오를 것 같아요." "좋아. 어떻게 검증할까?" "A/B 테스트 돌려볼게요. 100명씩 나눠서 2주 돌리고 비교하면 될 것 같아요." "좋아. 그렇게 하자." 직관으로 시작하고, 데이터로 검증한다. 이게 내 방식이다. 작년에 큰 결정했다. 가격 정책 바꾸기. 월 2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직관적으로는 무서웠다. "고객들 다 떠나는 거 아냐?" 하지만 데이터 봤다. 우리 제품 쓰는 고객들의 ROI 계산했다. 평균적으로 월 300만원어치 시간을 절약해준다. 40만원은 싸다. 인터뷰 10개 돌렸다. 7개 기업이 "40만원이어도 쓸 것 같다"고 답했다. 가격 올렸다. 해지율 2% 올랐다. 하지만 ARPU는 80% 올랐다. 매출은 76% 증가했다. 맞는 결정이었다. 데이터가 증명했다. 팀원들도 바뀌고 있다 요즘 팀원들이 달라졌다. 기획자가 회의에 온다. 손에 프린트 들고. "대표님, 이 기능 제안하려고요." "데이터는?" "여기요. 사용자 인터뷰 15건, 경쟁사 벤치마크, 예상 개발 공수 3주, 예상 MAU 증가율 25%." 웃음이 나온다. 배웠구나. 개발자도 마찬가지다. "이 기술 스택 바꾸고 싶은데요." "이유는?" "현재 응답속도 평균 2.3초, 이걸로 바꾸면 0.8초 예상돼요. 사용자 만족도 15% 오를 거예요. 레퍼런스 첨부했어요." 전보다 대화가 편해졌다. 근거 있는 제안은 받아들이기 쉽다. 영업팀장이 말했다. "이번 주 미팅 5건 잡혔어요. 다 중견기업이고, 평균 예상 계약 금액 80만원이에요. 확률은 60%로 보고 있어요." 구체적이다. 좋다. 처음엔 내가 독재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대표가 숫자만 밝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게 우리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걸. 감으로 가다가 망한 스타트업 수없이 봤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도 외롭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외롭다. 창업 동기들 만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비전이 중요하다고 봐. 숫자는 나중 문제지." "일단 만들어봐야 알 수 있잖아." "너무 데이터에 얽매이면 혁신 못 해." 그들 말도 일리 있다. 하지만 나는 동의 못 한다. 비전도 중요하다. 하지만 검증 없는 비전은 망상이다. "너 너무 빡빡한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회사 책임은 내가 진다. 팀원 8명 인생이 달렸다. 그들 가족까지 생각하면 20명 넘는다. 그 무게를 느낀다. 매일 새벽 3시에. 그래서 더 숫자를 본다. 불안을 줄이는 방법이다. 아내가 묻는다. "회사 어때?" "괜찮아. MRR 12% 올랐어." "...그게 아니라 네가 어떠냐고." 말문이 막힌다. 나는 숫자로 대답하는 버릇이 생겼다. 감정도 수치화한다. "피곤도 7/10, 스트레스 6/10, 희망 지수 8/10." 아내가 웃는다. 씁쓸하게. 숫자 뒤의 사람들 요즘 깨닫는다.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번 달 해지율 8%." 그 8% 안에는 우리 제품에 실망한 사람이 있다. 더 나은 대안을 찾은 사람이 있다. 예산이 부족해진 회사가 있다. "MAU 2300명." 그 2300명은 매일 우리 제품 켜는 사람들이다. 업무 시작할 때, 보고서 쓸 때, 데이터 찾을 때. 우리가 없으면 불편한 사람들. 숫자만 보면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안을 보면 따뜻하다. 지난주에 고객사 방문했다. 중소기업 인사팀이었다. "대표님, 이거 진짜 좋아요. 우리 업무시간 하루에 2시간 줄었어요." 팀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분 뒤로 직원들이 우리 제품 쓰는 게 보였다. 그때 느꼈다. 숫자는 추상적이지 않다. 숫자는 사람이다. "리텐션 90%"는 우리를 계속 선택하는 2070명이다. "MRR 1200만원"은 우리를 믿고 돈 내는 회사들이다. "성장률 380%"는 우리가 더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봐야 한다. 숫자는 책임이다. 내일도 스프레드시트 오늘 밤도 잠 못 잘 것 같다. 프리A 투자 미팅이 이틀 남았다. 덱 마지막 점검해야 한다. 재무 모델 다시 돌려봐야 한다. 경쟁사 숫자 업데이트해야 한다. 노트북 다시 켠다. 아내는 이미 잠들었다. 스프레드시트가 반긴다. 익숙한 화면이다. 셀과 함수와 그래프. 내 언어다. PM 시절 선배가 했던 말 떠오른다. "데이터는 네 친구다. 거짓말 안 하고, 배신 안 하고, 항상 진실을 말해줘." 맞다. 데이터는 내 친구다. 이 외로운 창업 여정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 직관은 중요하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직관은 위험하다. 비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근거 없는 비전은 공허하다. 열정은 좋다. 하지만 방향 없는 열정은 낭비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데이터로 보여줘." 이게 내 습관이다. 네이버에서 배웠고, 창업하며 더 깊어졌다. 틀릴 수도 있다. 너무 빡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런웨이 8개월. 팀원 8명. 투자 미팅 5개. 숫자는 명확하다. 갈 길도 명확하다. 새벽 4시다. 겨우 노트북 덮는다. 내일 또 스프레드시트 열 것이다. 그리고 물을 것이다. "데이터는?"숫자는 차갑지만, 그게 우리를 살린다.
- 16 Dec, 2025
'일단 해보자' - 내 입버릇이 된 말
"일단 해보자" - 내 입버릇이 된 말 새벽 3시의 결정 또 눈이 떴다. 3시 17분. 슬랙을 켰다. 개발팀 대화방에 불이 켜져 있다. 민준이가 아직도 코드 짜고 있나 보다. '대표님, API 응답속도 개선안 3가지 나왔습니다. 어떤 걸로 할까요?' 메시지가 2시 38분에 왔다. 읽었다. 답을 못 하고 있다. 1안은 안전하지만 효과가 적다. 2안은 효과는 좋은데 개발 기간이 2주 더 필요하다. 3안은 도박이다. 잘되면 대박인데 실패하면 롤백하는 데만 일주일. 런웨이는 8개월. 고객사는 다음 주 월요일에 데모를 본다. 투자자는 '트랙션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확신이 없다. 그런데 결정은 해야 한다. "일단 3안으로 해보자. 금요일까지 프로토타입만 돌아가게. 안 되면 그때 2안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4시 12분. 확신은 없지만 움직이는 게 답이다. 언제나 그랬다.네이버를 나온 이유 5년 전에는 달랐다. 네이버 PM 5년차. 기획서 쓰고, 개발팀이랑 조율하고, 데이터 보고, 보고서 만들고. 그때는 확신이 있을 때만 움직였다. A/B 테스트 3번 돌리고, 사용자 인터뷰 20명 하고, 경쟁사 분석 30페이지 만들고. 그다음에 '이거다' 싶으면 기획서를 냈다. 승인 과정도 길었다. 팀장, 실장, 본부장. 3단계를 거쳐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안전했다. 월급날은 정확했고, 복지는 좋았고, 커리어는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답답했다. '이거 해보면 될 것 같은데...' '지금 시작하면 경쟁사보다 3개월 빠른데...' '사용자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그런 생각들이 기획서 검토 단계에서 죽었다. 29살 여름, 퇴사했다. 상사가 물었다. "확신 있어?" "없습니다. 근데 일단 해보려고요." 그때부터였다. 이 말이 내 입버릇이 된 게.첫 실패, 그리고 두 번째 시작 처음 만든 서비스는 망했다. 6개월 만들었다. B2C 생산성 앱. 할 일 관리하고 습관 트래킹하고 목표 설정하고. 확신이 있었다. '이건 된다.' 런칭했다. 다운로드 132개. 유지율 8%. 매출 0원. 9개월 버텼다. 안 됐다. 돈이 떨어졌다. 팀원 2명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해산했다. 32살 겨울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다시 취업할래?" "아니." "그럼?" "일단 다시 해보려고."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B2B로 갔다. 기업용 업무 자동화. 시장은 작지만 명확했다. 피봇이었다. 방향을 180도 틀었다. 주변에서 물었다. "이번엔 확신 있어?" "없어. 근데 일단 해보는 거지." 3개월 만에 첫 고객사가 생겼다. 월 30만원. 그다음 달에 2개 더. 6개월 뒤 시드 투자 3억. 지금 2년 6개월차다. 망하지 않았다. 아직은.매일 아침의 불확실성 월요일 아침 8시. 팀원들이 모였다. 주간 회의. "이번 주 목표입니다." 화이트보드에 썼다. 신규 고객사 미팅 3건. 제품 업데이트 2개. 투자자 IR 1건. 영업팀 수진이가 물었다. "대표님, A사랑 계약 될 것 같아요?" 모르겠다. 지난주 미팅 분위기는 좋았다. 근데 결정권자가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2주째 답이 없다. "일단 팔로업 계속하자. 수요일에 한 번 더 전화해봐." 개발팀 민준이가 말했다. "대표님, 신기능 QA 나왔는데요. 버그가 17개예요." 많다. 목요일까지 고객사 데모인데. "심각한 거 5개만 골라. 그거 먼저 고치고 나머지는 다음 주. 일단 돌아가게만." 기획팀 지은이가 물었다. "대표님, 다음 분기 로드맵 확정해야 하는데요." 확정? 다음 달 현금흐름도 확신 못 하는데 다음 분기? "일단 초안대로 가자. 투자 들어오면 조정하고." 회의가 끝났다. 1시간. 확신한 건 하나도 없다. 근데 다들 움직인다. 그게 스타트업이다. 투자자 앞에서 IR 자료를 50번 고쳤다. 슬라이드 18장. 문제 정의, 솔루션, 시장 규모, 비즈니스 모델, 트랙션, 팀 소개, 재무 계획. 숫자를 봤다. MRR 1200만원. 성장률 월 15%. 이탈률 8%.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경쟁사 데이터는 공개 안 돼서 비교도 안 된다. VC 미팅 20개를 잡았다. 10개는 첫 미팅에서 거절당했다. '아직 이르다', '시장이 작다', '팀이 약하다'. 5개는 '보류'. '트랙션 더 보고 싶다', '다음 분기에 다시 얘기하자'. 5개는 진행 중. 2차 미팅까지 갔다. 실사 요청받았다. 화요일 오후 3시. K벤처스 파트너님 미팅. "박 대표님, 확신 있으세요? 이 시장에서 1등 할 수 있다고?" 확신? 없다. 근데 대답했다. "확신보다는 실행력이라고 봅니다. 지난 2년간 월 평균 2.3개 가설을 테스트했고, 피봇도 3번 했습니다. 틀리면 빨리 인정하고 방향 바꾸는 게 저희 강점입니다." 파트너님이 웃었다. "솔직하시네요." "일단 해보고 데이터로 판단하는 게 저희 방식입니다." 미팅이 끝났다. 1시간 30분. 결과는 모른다. 2주 뒤에 답 준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한숨 쉬었다. 확신 있냐고? 매일 불안한데. 그래도 움직인다. 그게 답이니까. 금요일 밤 11시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팀원들은 9시에 다 갔다. "대표님도 들어가세요." 웃으면서 "곧 간다" 했다. 노트북을 켰다. 엑셀 파일. 'Cash Flow 2024-2025'. 시나리오를 3개 만들었다. 보수: A사 계약 무산. 신규 고객 월 1개. 런웨이 6개월. 9월 파산. 중립: A사 계약 성공. 신규 고객 월 2개. 투자 실패. 런웨이 11개월. 내년 2월 위기. 낙관: A사 계약 성공. 신규 고객 월 3개. 투자 5억 유치. 런웨이 24개월. 숨통. 숫자를 봤다. 보수 시나리오 확률 30%. 중립 50%. 낙관 20%. 계산기를 두드렸다. 보수로 가면 7월부터 월급 못 줄 수도 있다. 심장이 빨라진다. 그래도. 일단 내일 출근한다. 월요일 고객사 미팅 준비한다. 화요일 개발 스프린트 회의 한다. 수요일 A사한테 전화한다. 확신은 없다. 성공할지 망할지 모른다. 근데 멈추면 확실히 망한다. 움직이면 가능성이라도 있다. 노트북을 닫았다. 집에 가자. 내일도 '일단 해보자'고 말할 거다. 그게 내 입버릇이니까. 확신 없이 걷는 법 창업한 지 2년 6개월. 확신했던 날은 하루도 없다. '이 기능이 맞을까?' 모른다. 만들어본다. 고객 반응 본다. 틀리면 고친다. '이 가격이 적정할까?' 모른다. 테스트해본다. 이탈률 본다. 조정한다. '이 사람을 뽑아야 할까?' 모른다. 일단 채용한다. 3개월 보면 안다. '투자가 들어올까?' 모른다. 계속 만난다. 거절당한다. 다시 만난다. 네이버 다닐 때는 확신이 있어야 움직였다. 지금은 반대다. 움직여야 확신이 생긴다. 아니, 확신은 안 생긴다. 그냥 다음 단계가 보인다. 그럼 된 거다. 밤 11시 47분. 집 앞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었다. 조용하다. 다들 잤나 보다. 딸 방문을 열었다. 자고 있다. 3살. 토요일에 놀아줘야지. 침대에 누웠다. 아내가 자면서 중얼거렸다. "늦었네." "응. 미안." "괜찮아. 힘들어?" "응." "그래도 할 거지?" "응. 일단 해보는 거지 뭐." 아내가 웃었다. 다시 잤다. 나도 눈을 감았다. 내일 또 '일단 해보자'고 말할 거다. 확신은 없다. 근데 괜찮다. 확신 없이 걷는 법을 배웠으니까.확신은 움직인 뒤에 온다. 아니, 안 와도 된다. 그냥 다음 발자국만 보이면 돼.
- 09 Dec, 2025
성수동 공유오피스, 월세 180만원의 무게
성수동 공유오피스, 월세 180만원의 무게 매달 25일이 되면 통장을 본다. 공유오피스 월세 180만원이 빠져나간다. 자동이체라서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매달 확인한다. 그게 습관이 됐다. 1년 전, 큰 결심 작년 이맘때 여기로 옮겼다. 그전엔 5명이 카페에서 일했다. 노트북 들고 다니면서, 자리 눈치 보면서. "이제 제대로 된 사무실이 필요해." 투자 받고 나서 팀원들 모아놓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 성수동 오피스로 출근한다." 다들 좋아했다. 나도 뿌듯했다.계약할 때 1년치 계산했다. 180만원 × 12개월 = 2,160만원. "이 정도는 괜찮아. 투자금 3억 있으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수동이라서 비싼 건 알았다. 근처 스타트업들 많고, 카페 많고, VC들 자주 온다. "투자자 미팅하기 좋아. 여기서." 그것도 이유였다. 8개월 후, 숫자들 지금 런웨이 8개월 남았다. 월 고정비 계산하면 이렇다.오피스 월세: 180만원 직원 급여: 2,400만원 (8명) 서버/클라우드: 120만원 각종 SaaS 구독: 80만원 기타: 120만원합계: 2,900만원. 월 매출은 1,200만원. 매달 1,700만원씩 까먹는다. 3억 ÷ 1,700만원 = 17.6개월이었는데. 지금 8개월 남았다.오피스 월세가 전체 고정비의 6.2%. "6프로면 괜찮은 거 아냐?"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답한다. 근데 심리적으론 다르다. 직원 급여는 당연히 줘야 하는 거고. 서버비는 서비스 돌아가려면 필요하고. 근데 오피스는... 줄일 수 있는 거잖아. 매달 25일마다 그 생각이 든다. "이 180만원이면..."마케팅비로 쓸 수 있고 개발자 한 명 더 뽑을 수 있고 런웨이 일주일 더 늘릴 수 있다.더 큰 곳으로 못 가는 이유 팀원 8명이면 지금 사무실이 좁다. 회의실 하나에 책상 8개. 점심시간에 다 같이 있으면 답답하다. 개발팀이 "집중하기 좀 빡빡해요" 한다. 영업팀은 "전화하기 눈치 보여요" 한다. 알아. 다 맞는 말이다. 근처에 더 큰 오피스 알아봤다. 30평짜리, 월 300만원. 회의실 2개, 휴게공간 따로. 팀원들한테 훨씬 좋은 환경이다. 근데 못 옮긴다. 지금 180만원도 부담인데. 월 120만원 더 쓴다? 런웨이 계산하면 6개월로 줄어든다.예전에 성공한 선배 창업가가 그랬다. "팀원들 환경은 투자야. 아끼지 마." 맞는 말이다. 백 번 맞다. 근데 우리 상황은 다르다. 그 선배는 시리즈A 50억 받았다. 우린 시드 3억에 런웨이 8개월이다. 팀원들한테 미안하다. 더 좋은 환경 만들어주고 싶다. 근데 지금은... 버티는 게 먼저다. 줄일 수도 없는 이유 "그럼 더 작은 데로 옮기면 되잖아?" 맞다. 논리적으론 그게 답이다. 10평짜리 월 100만원 오피스 있다. 월 80만원 아낀다. 런웨이 반 달 늘어난다. 근데 이것도 못 한다. 이유는 몇 가지다. 첫째, 계약 위약금. 1년 계약인데 아직 4개월 남았다. 중도 해지하면 2개월치 물어내야 한다. 360만원. 그냥 버티는 게 싸다. 둘째, 이사 비용. 생각보다 돈 든다. 짐 정리하고, 이삿짐 업체 부르고, 인터넷 재설치하고. 최소 200만원은 든다. 셋째, 팀 분위기. 이미 한 번 "좋은 오피스로 간다" 했다. 그때 다들 좋아했다. 1년도 안 돼서 "다시 작은 데로 간다" 하면... "회사 어려운가?" 생각한다. 팀원들 앞에선 절대 불안한 티 안 낸다. "우리 잘 되고 있어. 걱정 마." 매주 회의 때마다 한다. 근데 혼자 있을 때는 계산기 두드린다. 180만원 × 8개월 = 1,440만원. "이게 런웨이 거의 한 달이야." 투자자 미팅 때 보이는 것 VC들 여기로 미팅 오면 좋아한다. "오, 성수동이네요. 여기 좋죠." "사무실 분위기 괜찮은데요?" 그때는 뿌듯하다. "네, 팀 환경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자신 있게 말한다. 근데 집에 가면서 생각한다. "투자 안 받으면 이것도 못 지킨다." IR 덱에는 오피스 사진 안 넣는다. 재무제표에도 '임차료' 항목 작게 쓴다. "고정비 관리 잘하고 있습니다" 강조한다. 실제로는 매달 25일마다 한숨 쉰다. 성수동이라는 상징 성수동 오피스는 우리한테 상징이다. "제대로 된 스타트업" 같은 느낌. 이 동네 카페 가면 다들 노트북 펴놓고 있다. "저 사람도 창업했나?" 생각한다. 우리도 그 중 하나다. 근데 가끔 생각한다. "다들 비슷하게 버티고 있는 거 아닐까?" 월세 내면서, 런웨이 계산하면서. 겉으로는 잘 되는 것처럼. 창업 동기 모임에서 한 형이 그랬다. "우리 강남으로 옮겼어. 월세 250만원." 부러웠다. 투자 더 받았나보다. 한 달 후에 다시 만났더니. "야, 월세 너무 부담돼. 실수했나봐." 웃으면서 했는데 눈은 안 웃었다. 결국 다 비슷하다. 어디든 월세는 무겁다. 8개월 후를 생각하면 프리A 준비 중이다. 목표는 15억. 받으면 이 고민 사라진다. "그때는 더 큰 오피스로 옮기자." "회의실 2개 있는 데로." 팀원들한테 약속했다. 근데 투자 받을 확률은 모른다. 지금까지 VC 20곳 만났다. 진행 중인 곳 5곳. 확정은 없다. 매일 밤 시나리오 3개 계산한다. 낙관: 15억 투자 받는다. → 큰 오피스 이사, 팀원 5명 더 뽑기. 중립: 5억 투자 받는다. → 현재 오피스 유지, 팀원 2명 추가. 보수: 투자 못 받는다. → 계약 끝나면 작은 곳으로, 팀 구조조정. 보수 시나리오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180만원의 진짜 무게 매달 25일. 오피스 월세 180만원 자동이체. 숫자로 보면 고정비의 6%. 심리적으론 매일 짓누르는 무게. "팀원들한테 더 좋은 환경 못 만들어줘서 미안하다." "투자 못 받으면 이것도 못 지킨다." "그래도 지금은 버텨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머릿속에서 돈다. 큰 오피스로 옮기고 싶다. 팀원들 좀 더 편하게 해주고 싶다. 근데 지금은 못 한다. 작은 오피스로 옮기고 싶다. 런웨이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다. 근데 이것도 못 한다. 그래서 매달 180만원을 낸다. 자동이체지만 매번 확인한다. 그게 내 방식이다. 내일도 출근한다 새벽 3시. 현금흐름표 보다가 노트북 닫는다. 내일 아침 7시에 출근한다. 팀원들 오면 웃으면서 "좋은 아침" 한다. "오늘 할 일 체크하자" 한다. 180만원 고민은 혼자 한다. 팀원들은 몰라도 된다. 그게 대표 역할이다. 8개월 남았다. 그 안에 뭔가 터뜨려야 한다. 투자든, 매출이든, 뭔가. 지금은 버틴다. 매달 180만원 내면서.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거다.오늘도 통장 확인했다. 180만원 빠져나갔다. 내일도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