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공유오피스, 월세 180만원의 무게
- 09 Dec, 2025
성수동 공유오피스, 월세 180만원의 무게
매달 25일이 되면 통장을 본다. 공유오피스 월세 180만원이 빠져나간다. 자동이체라서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매달 확인한다. 그게 습관이 됐다.
1년 전, 큰 결심
작년 이맘때 여기로 옮겼다. 그전엔 5명이 카페에서 일했다. 노트북 들고 다니면서, 자리 눈치 보면서. “이제 제대로 된 사무실이 필요해.”
투자 받고 나서 팀원들 모아놓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 성수동 오피스로 출근한다.” 다들 좋아했다. 나도 뿌듯했다.

계약할 때 1년치 계산했다. 180만원 × 12개월 = 2,160만원. “이 정도는 괜찮아. 투자금 3억 있으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수동이라서 비싼 건 알았다. 근처 스타트업들 많고, 카페 많고, VC들 자주 온다. “투자자 미팅하기 좋아. 여기서.” 그것도 이유였다.
8개월 후, 숫자들
지금 런웨이 8개월 남았다. 월 고정비 계산하면 이렇다.
- 오피스 월세: 180만원
- 직원 급여: 2,400만원 (8명)
- 서버/클라우드: 120만원
- 각종 SaaS 구독: 80만원
- 기타: 120만원
합계: 2,900만원.
월 매출은 1,200만원. 매달 1,700만원씩 까먹는다. 3억 ÷ 1,700만원 = 17.6개월이었는데. 지금 8개월 남았다.

오피스 월세가 전체 고정비의 6.2%. “6프로면 괜찮은 거 아냐?”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답한다.
근데 심리적으론 다르다. 직원 급여는 당연히 줘야 하는 거고. 서버비는 서비스 돌아가려면 필요하고. 근데 오피스는… 줄일 수 있는 거잖아.
매달 25일마다 그 생각이 든다. “이 180만원이면…”
- 마케팅비로 쓸 수 있고
- 개발자 한 명 더 뽑을 수 있고
- 런웨이 일주일 더 늘릴 수 있다.
더 큰 곳으로 못 가는 이유
팀원 8명이면 지금 사무실이 좁다. 회의실 하나에 책상 8개. 점심시간에 다 같이 있으면 답답하다.
개발팀이 “집중하기 좀 빡빡해요” 한다. 영업팀은 “전화하기 눈치 보여요” 한다. 알아. 다 맞는 말이다.
근처에 더 큰 오피스 알아봤다. 30평짜리, 월 300만원. 회의실 2개, 휴게공간 따로. 팀원들한테 훨씬 좋은 환경이다.
근데 못 옮긴다. 지금 180만원도 부담인데. 월 120만원 더 쓴다? 런웨이 계산하면 6개월로 줄어든다.

예전에 성공한 선배 창업가가 그랬다. “팀원들 환경은 투자야. 아끼지 마.” 맞는 말이다. 백 번 맞다.
근데 우리 상황은 다르다. 그 선배는 시리즈A 50억 받았다. 우린 시드 3억에 런웨이 8개월이다.
팀원들한테 미안하다. 더 좋은 환경 만들어주고 싶다. 근데 지금은… 버티는 게 먼저다.
줄일 수도 없는 이유
“그럼 더 작은 데로 옮기면 되잖아?” 맞다. 논리적으론 그게 답이다.
10평짜리 월 100만원 오피스 있다. 월 80만원 아낀다. 런웨이 반 달 늘어난다.
근데 이것도 못 한다. 이유는 몇 가지다.
첫째, 계약 위약금. 1년 계약인데 아직 4개월 남았다. 중도 해지하면 2개월치 물어내야 한다. 360만원. 그냥 버티는 게 싸다.
둘째, 이사 비용. 생각보다 돈 든다. 짐 정리하고, 이삿짐 업체 부르고, 인터넷 재설치하고. 최소 200만원은 든다.
셋째, 팀 분위기. 이미 한 번 “좋은 오피스로 간다” 했다. 그때 다들 좋아했다. 1년도 안 돼서 “다시 작은 데로 간다” 하면… “회사 어려운가?” 생각한다.
팀원들 앞에선 절대 불안한 티 안 낸다. “우리 잘 되고 있어. 걱정 마.” 매주 회의 때마다 한다.
근데 혼자 있을 때는 계산기 두드린다. 180만원 × 8개월 = 1,440만원. “이게 런웨이 거의 한 달이야.”
투자자 미팅 때 보이는 것
VC들 여기로 미팅 오면 좋아한다. “오, 성수동이네요. 여기 좋죠.” “사무실 분위기 괜찮은데요?”
그때는 뿌듯하다. “네, 팀 환경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자신 있게 말한다.
근데 집에 가면서 생각한다. “투자 안 받으면 이것도 못 지킨다.”
IR 덱에는 오피스 사진 안 넣는다. 재무제표에도 ‘임차료’ 항목 작게 쓴다. “고정비 관리 잘하고 있습니다” 강조한다.
실제로는 매달 25일마다 한숨 쉰다.
성수동이라는 상징
성수동 오피스는 우리한테 상징이다. “제대로 된 스타트업” 같은 느낌.
이 동네 카페 가면 다들 노트북 펴놓고 있다. “저 사람도 창업했나?” 생각한다. 우리도 그 중 하나다.
근데 가끔 생각한다. “다들 비슷하게 버티고 있는 거 아닐까?” 월세 내면서, 런웨이 계산하면서. 겉으로는 잘 되는 것처럼.
창업 동기 모임에서 한 형이 그랬다. “우리 강남으로 옮겼어. 월세 250만원.” 부러웠다. 투자 더 받았나보다.
한 달 후에 다시 만났더니. “야, 월세 너무 부담돼. 실수했나봐.” 웃으면서 했는데 눈은 안 웃었다.
결국 다 비슷하다. 어디든 월세는 무겁다.
8개월 후를 생각하면
프리A 준비 중이다. 목표는 15억. 받으면 이 고민 사라진다.
“그때는 더 큰 오피스로 옮기자.” “회의실 2개 있는 데로.” 팀원들한테 약속했다.
근데 투자 받을 확률은 모른다. 지금까지 VC 20곳 만났다. 진행 중인 곳 5곳. 확정은 없다.
매일 밤 시나리오 3개 계산한다.
낙관: 15억 투자 받는다. → 큰 오피스 이사, 팀원 5명 더 뽑기.
중립: 5억 투자 받는다. → 현재 오피스 유지, 팀원 2명 추가.
보수: 투자 못 받는다. → 계약 끝나면 작은 곳으로, 팀 구조조정.
보수 시나리오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180만원의 진짜 무게
매달 25일. 오피스 월세 180만원 자동이체.
숫자로 보면 고정비의 6%. 심리적으론 매일 짓누르는 무게.
“팀원들한테 더 좋은 환경 못 만들어줘서 미안하다.” “투자 못 받으면 이것도 못 지킨다.” “그래도 지금은 버텨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머릿속에서 돈다.
큰 오피스로 옮기고 싶다. 팀원들 좀 더 편하게 해주고 싶다. 근데 지금은 못 한다.
작은 오피스로 옮기고 싶다. 런웨이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다. 근데 이것도 못 한다.
그래서 매달 180만원을 낸다. 자동이체지만 매번 확인한다. 그게 내 방식이다.
내일도 출근한다
새벽 3시. 현금흐름표 보다가 노트북 닫는다.
내일 아침 7시에 출근한다. 팀원들 오면 웃으면서 “좋은 아침” 한다. “오늘 할 일 체크하자” 한다.
180만원 고민은 혼자 한다. 팀원들은 몰라도 된다. 그게 대표 역할이다.
8개월 남았다. 그 안에 뭔가 터뜨려야 한다. 투자든, 매출이든, 뭔가.
지금은 버틴다. 매달 180만원 내면서.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거다.
오늘도 통장 확인했다. 180만원 빠져나갔다. 내일도 출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