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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은
- 21 Dec, 2025
'데이터로 보여줘' - 직관은 믿지 않는 PM의 습관
'데이터로 보여줘' - 직관은 믿지 않는 PM의 습관 네이버에서 배운 것 네이버 PM 5년 했다. 그곳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숫자 없는 의견은 의견이 아니라는 것. "이거 좋을 것 같은데요." "사용자들이 원할 것 같아요." "경쟁사도 이렇게 하던데요." 신입 때 이런 말 했다가 선배한테 들었다. "데이터는?" 그때부터다. 모든 회의에 숫자 들고 들어갔다. 클릭률, 체류시간, 전환율, 이탈률. 로그 분석, A/B 테스트, 코호트 분석. 말할 때마다 근거를 댔다. 5년 하다 보니 몸에 배었다. 창업하고도 똑같다.팀원들과의 온도차 창업 초기, 팀원들이 힘들어했다. "대표님, 이 기능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아요." "데이터는?" "...아직 없는데 사용자들이 원할 것 같아서요." "어떤 근거로?" 기획자가 표정 굳는 게 보였다. 나는 악역이 되어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런웨이 8개월 남은 스타트업이다. 틀린 선택 한 번에 회사 죽는다. 감으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 실업자다. 개발자가 말했다. "이 기술 트렌디해요.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ROI는?" "...일단 해보고 측정하면 안 될까요?" "개발 기간 2주. 그 2주면 핵심 기능 고도화 할 수 있어. 그게 더 급해." 차갑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내 역할이다. 영업팀이 보고했다. "A사가 관심 있대요. 미팅 잡을까요?" "매출 규모는?" "중소기업인데..." "직원 수, 예상 계약 금액, 결제 주기는?" 디테일 물어보면 다들 준비 안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물어보는 거다.새벽 3시의 스프레드시트 오늘도 잠 못 잔다. 침대에 누웠는데 걱정이 올라온다. '이번 달 MRR 목표 달성 가능할까?' 일어나서 노트북 켠다. 아내가 뒤척인다. 미안하지만 확인 안 하면 못 잔다. 스프레드시트 연다. 우리 회사 대시보드다.이번 달 신규 계약: 3건 (목표 5건) 평균 계약 금액: 42만원 (목표 50만원) 해지율: 8% (목표 5% 이하) 남은 영업일: 9일계산기 두드린다. 최선의 시나리오, 최악의 시나리오, 현실적 시나리오. 세 개 다 돌려본다. 최선: 5건 더 계약, 평균 55만원 = 목표 달성 최악: 2건 계약, 1건 해지 = 목표 60% 달성 현실: 3건 계약, 평균 45만원 = 목표 75% 달성 75%. 나쁘지 않다. 하지만 VC한테는 안 좋게 보인다. "성장 둔화"라고 쓸 거다. 또 다른 시트 연다. 캐시플로우다. 현금: 1억 3200만원 월 고정비: 1650만원 런웨이: 8개월 직원 한 명 더 뽑으면? 7개월. 마케팅 비용 늘리면? 6.5개월. 사무실 이전하면? 5개월. 숫자가 머릿속을 돈다. 시나리오가 끝없이 이어진다. 새벽 4시가 됐다. 겨우 노트북 덮는다.투자자 미팅에서 IR 준비할 때도 똑같다. 덱 50번 넘게 고쳤다. 초기 버전은 비전, 미션, 팀 소개로 가득했다. VC 두 군데 만났다. 반응이 미지근했다. "트랙션은?" "성장률은?" "유닛 이코노믹스는?" 그제야 알았다. 투자자들도 숫자로 본다. 당연하다. 그들도 LP한테 설명해야 한다. 덱을 다시 짰다.슬라이드 1: MRR 그래프 (작년 대비 380% 성장) 슬라이드 2: CAC vs LTV (LTV/CAC 비율 3.2) 슬라이드 3: 리텐션 커브 (12개월 90% 유지) 슬라이드 4: 파이프라인 (2억 규모 계약 논의 중)스토리는 뒤로 뺐다. 숫자를 먼저 보여줬다. 미팅 분위기가 달라졌다. 20분짜리 미팅이 1시간으로 늘었다. 질문이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이 성장률을 어떻게 유지할 건가요?" "이 세그먼트에서 CAC가 낮은 이유는?" "엔터프라이즈로 확장 계획은?" 좋은 신호다. 관심 있다는 뜻이다. 한 VC 파트너가 말했다. "데이터 준비 잘하셨네요. PM 출신이라 그런가?" 맞다. PM 출신이라 그렇다. 숫자가 주는 안정감 사람들은 묻는다. "숫자에 집착하는 거 아니냐?" 맞다. 집착한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사람은 착각하고, 희망회로 돌리고, 편향에 빠진다. 하지만 숫자는 그냥 있다. "이거 잘될 것 같아요." "왜?" "느낌이 좋아요." 느낌은 믿을 수 없다. 특히 창업자의 느낌은. 우리는 우리 아이디어에 빠져 있다. 객관적으로 못 본다. "클릭률이 15% 떨어졌어요." "왜?" "A/B 테스트 결과 새 버튼 색상이 문제였어요." 이건 명확하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다시 바꾸면 된다. 숫자는 방향을 알려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감이 아니라 근거로. 특히 힘들 때 숫자가 버팀목이 된다. 투자 거절당했을 때, 직원이 퇴사했을 때, 경쟁사가 투자받았을 때. 불안하다. 혼란스럽다. 그때 스프레드시트 연다. 우리 MRR 그래프 본다. 작년 이맘때보다 380% 올랐다. 리텐션은 90%다. 고객들은 우리 제품 쓰고 있다. "괜찮아. 우리 잘하고 있어." 숫자가 말해준다. 직관을 버린 건 아니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직관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검증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직관에서 나온다. "이거 되겠는데?" 하는 느낌. 그건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검증해야 한다. 기획자가 말했다. "온보딩 플로우 바꾸면 전환율 오를 것 같아요." "좋아. 어떻게 검증할까?" "A/B 테스트 돌려볼게요. 100명씩 나눠서 2주 돌리고 비교하면 될 것 같아요." "좋아. 그렇게 하자." 직관으로 시작하고, 데이터로 검증한다. 이게 내 방식이다. 작년에 큰 결정했다. 가격 정책 바꾸기. 월 2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직관적으로는 무서웠다. "고객들 다 떠나는 거 아냐?" 하지만 데이터 봤다. 우리 제품 쓰는 고객들의 ROI 계산했다. 평균적으로 월 300만원어치 시간을 절약해준다. 40만원은 싸다. 인터뷰 10개 돌렸다. 7개 기업이 "40만원이어도 쓸 것 같다"고 답했다. 가격 올렸다. 해지율 2% 올랐다. 하지만 ARPU는 80% 올랐다. 매출은 76% 증가했다. 맞는 결정이었다. 데이터가 증명했다. 팀원들도 바뀌고 있다 요즘 팀원들이 달라졌다. 기획자가 회의에 온다. 손에 프린트 들고. "대표님, 이 기능 제안하려고요." "데이터는?" "여기요. 사용자 인터뷰 15건, 경쟁사 벤치마크, 예상 개발 공수 3주, 예상 MAU 증가율 25%." 웃음이 나온다. 배웠구나. 개발자도 마찬가지다. "이 기술 스택 바꾸고 싶은데요." "이유는?" "현재 응답속도 평균 2.3초, 이걸로 바꾸면 0.8초 예상돼요. 사용자 만족도 15% 오를 거예요. 레퍼런스 첨부했어요." 전보다 대화가 편해졌다. 근거 있는 제안은 받아들이기 쉽다. 영업팀장이 말했다. "이번 주 미팅 5건 잡혔어요. 다 중견기업이고, 평균 예상 계약 금액 80만원이에요. 확률은 60%로 보고 있어요." 구체적이다. 좋다. 처음엔 내가 독재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대표가 숫자만 밝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게 우리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걸. 감으로 가다가 망한 스타트업 수없이 봤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도 외롭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외롭다. 창업 동기들 만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비전이 중요하다고 봐. 숫자는 나중 문제지." "일단 만들어봐야 알 수 있잖아." "너무 데이터에 얽매이면 혁신 못 해." 그들 말도 일리 있다. 하지만 나는 동의 못 한다. 비전도 중요하다. 하지만 검증 없는 비전은 망상이다. "너 너무 빡빡한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회사 책임은 내가 진다. 팀원 8명 인생이 달렸다. 그들 가족까지 생각하면 20명 넘는다. 그 무게를 느낀다. 매일 새벽 3시에. 그래서 더 숫자를 본다. 불안을 줄이는 방법이다. 아내가 묻는다. "회사 어때?" "괜찮아. MRR 12% 올랐어." "...그게 아니라 네가 어떠냐고." 말문이 막힌다. 나는 숫자로 대답하는 버릇이 생겼다. 감정도 수치화한다. "피곤도 7/10, 스트레스 6/10, 희망 지수 8/10." 아내가 웃는다. 씁쓸하게. 숫자 뒤의 사람들 요즘 깨닫는다.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번 달 해지율 8%." 그 8% 안에는 우리 제품에 실망한 사람이 있다. 더 나은 대안을 찾은 사람이 있다. 예산이 부족해진 회사가 있다. "MAU 2300명." 그 2300명은 매일 우리 제품 켜는 사람들이다. 업무 시작할 때, 보고서 쓸 때, 데이터 찾을 때. 우리가 없으면 불편한 사람들. 숫자만 보면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안을 보면 따뜻하다. 지난주에 고객사 방문했다. 중소기업 인사팀이었다. "대표님, 이거 진짜 좋아요. 우리 업무시간 하루에 2시간 줄었어요." 팀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분 뒤로 직원들이 우리 제품 쓰는 게 보였다. 그때 느꼈다. 숫자는 추상적이지 않다. 숫자는 사람이다. "리텐션 90%"는 우리를 계속 선택하는 2070명이다. "MRR 1200만원"은 우리를 믿고 돈 내는 회사들이다. "성장률 380%"는 우리가 더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봐야 한다. 숫자는 책임이다. 내일도 스프레드시트 오늘 밤도 잠 못 잘 것 같다. 프리A 투자 미팅이 이틀 남았다. 덱 마지막 점검해야 한다. 재무 모델 다시 돌려봐야 한다. 경쟁사 숫자 업데이트해야 한다. 노트북 다시 켠다. 아내는 이미 잠들었다. 스프레드시트가 반긴다. 익숙한 화면이다. 셀과 함수와 그래프. 내 언어다. PM 시절 선배가 했던 말 떠오른다. "데이터는 네 친구다. 거짓말 안 하고, 배신 안 하고, 항상 진실을 말해줘." 맞다. 데이터는 내 친구다. 이 외로운 창업 여정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 직관은 중요하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직관은 위험하다. 비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근거 없는 비전은 공허하다. 열정은 좋다. 하지만 방향 없는 열정은 낭비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데이터로 보여줘." 이게 내 습관이다. 네이버에서 배웠고, 창업하며 더 깊어졌다. 틀릴 수도 있다. 너무 빡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런웨이 8개월. 팀원 8명. 투자 미팅 5개. 숫자는 명확하다. 갈 길도 명확하다. 새벽 4시다. 겨우 노트북 덮는다. 내일 또 스프레드시트 열 것이다. 그리고 물을 것이다. "데이터는?"숫자는 차갑지만, 그게 우리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