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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 23 Dec, 2025
점심, 유일하게 팀원들과 함께하는 시간
점심, 유일하게 팀원들과 함께하는 시간 12시 30분 슬랙에 메시지 올렸다. "점심 누구 같이?" 5분 안에 답장 온다. 개발팀 민수가 제일 빠르다. "저요!" 기획자 지은이도 손든다. 영업팀 두 명은 외근. 디자이너 수진이는 미팅. 결국 네 명. 나, 민수, 지은, 개발자 현우. "어디 갈까요?" 지은이가 묻는다. "된장찌개?" 민수가 말한다. 어제도 된장찌개였다. "파스타 어때요?" 현우가 말한다. "예산이..." 내가 웃으며 말한다. 결국 된장찌개. 사무실 뒤 골목 백반집. 7000원짜리.걸어가면서 민수가 말한다. "대표님, 어제 그 버그 고쳤어요." "오 진짜?" 내가 답한다. "네. 새벽 4시까지 걸렸는데." 미안하다. 말은 안 한다. 민수는 알 것이다. 현우가 끼어든다. "형 또 밤샜어요?" "어쩔 수 없었지." 지은이가 웃는다. "우리 회사 사람들 다 새벽형이네요." 아니다. 새벽형이 아니라 잠을 못 자는 거다. 골목 모퉁이 돌았다. 백반집 보인다. 할머니가 운영하신다. 우리 얼굴 다 아신다. "어서 오세요!" 할머니 목소리. "안녕하세요!" 우리가 동시에 답한다. 구석 자리 앉는다. 항상 그 자리다. 메뉴판 볼 필요 없다. 다 외운다. 된장찌개 정식 네 개. 공깃밥 하나 더. 물 따라 마신다. 시원하다. 민수가 말한다. "날씨 좋네요." "응." 현우가 답한다. "주말에 뭐 해요?" 지은이가 묻는다. 민수가 답한다. "집에서 쉴 거 같은데요. 넷플릭스나 봐야지." 현우가 말한다. "저는 여자친구 만나요." 지은이가 웃는다. "부럽네요. 저는 친구 결혼식이요." 다들 나를 본다. "나?" 내가 말한다. "딸이랑 놀아줘야지." "몇 살이에요?" 민수가 묻는다. "세 살." "귀엽겠다." 지은이가 말한다. 귀엽다. 요즘 제대로 못 놀아줬다.밥이 나왔다 된장찌개 김이 모락모락. 밥 한 공기. 반찬 네 가지. "잘 먹겠습니다." 숟가락 든다. 밥 한 입. 된장찌개 한 입. 맛있다. 진짜 맛있다. 회사에서는 컵라면 먹는다. 혼자 회의실에서. 키보드 치면서. 여기서는 다르다. 사람들이랑 같이 먹으니까. 민수가 말한다. "이 집 김치 진짜 맛있어요." "할머니가 직접 담그신대." 지은이가 답한다. "대박." 현우가 김치 한 입 먹는다. 나도 김치 먹는다. 시원하다. 적당히 익었다. 밥 먹으면서는 별 얘기 안 한다. 그냥 먹는다. 가끔 "이거 맛있네", "물 좀 주세요" 정도. 회사 얘기 안 나온다. 버그도 안 나온다. 투자도 안 나온다. 런웨이도 안 나온다. 그냥 밥 먹는다. 이게 좋다. 중간쯤 현우가 말한다. "대표님, 요즘 많이 힘드시죠?" 갑자기 나온 질문이다. "응?" 내가 답한다. "아니 그냥... 표정이 좀..." 민수가 끼어든다. "형, 우리 알아요. 투자 받으려고 뛰어다니시는 거." 지은이도 말한다. "저희도 도울 수 있는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목이 메인다. 안 그래야 하는데. "괜찮아." 내가 웃는다. "다 잘 될 거야." "저희 믿어요." 민수가 말한다. "대표님이 포기 안 하시면 저희도 안 할 거예요." 현우가 덧붙인다. 된장찌개 한 입 더 먹는다. 뜨겁다. "고맙다." 내가 말한다. "진짜로."후식 식혜 나왔다. 서비스다. 할머니가 주신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식혜 마신다. 달다. 차갑다. 지은이가 말한다. "이번 주 스프린트 잘 끝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진짜?" 내가 묻는다. "네. 기획 거의 다 정리했어요." 민수가 말한다. "개발도 70% 왔어요." 현우가 덧붙인다. "다음 주면 QA 들어갈 수 있어요." 좋은 소식이다. 오랜만에. "잘하고 있네." 내가 말한다. "당연하죠." 민수가 웃는다. 식혜 다 마셨다. 컵 내려놓는다. 시계 본다. 1시 20분. 50분 지났다. "슬슬 가야겠다." 내가 말한다. "네." 다들 답한다. 계산하면서 카운터 앞에 선다. 할머니가 웃으신다. "28000원이에요." 카드 꺼낸다. 회사 법인카드.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맛있게 먹었어요." 내가 답한다. 밖으로 나온다. 햇빛 눈부시다. 민수가 말한다. "배불러요." "나도." 현우가 답한다. 지은이가 웃는다. "오후에 졸리겠다." "커피 마시자." 내가 말한다. 사무실로 걸어간다. 네 명이. 사무실 앞 엘리베이터 탄다. 4층 누른다. 문 열린다. 사무실 보인다. 다시 시작이다. 개발. 기획. 회의. 슬랙 메시지. 하지만 괜찮다. 조금은. 아까 그 50분이 있었으니까. 팀원들이랑 밥 먹었으니까. 회사 얘기 안 하고 그냥 밥만 먹었으니까. 민수가 자리 앉는다. 현우도. 지은이도. 나도 앉는다. 노트북 연다. 슬랙 알림 17개. 한숨 쉰다. 작게. 하지만 웃는다. 조금. 오늘 점심은 좋았다. 3시쯤 슬랙에 민수가 메시지 보냈다. "대표님, 아까 점심 맛있었어요. 내일도 같이 가요!" "ㅋㅋ 그래." 내가 답한다. 지은이도 이모지 단다. 하트. 현우도 답한다. "저도요!" 내일도 된장찌개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 50분이 있으니까. 회사 얘기 안 해도 되는 그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만 숨 쉴 수 있으니까.점심 시간, 내가 대표가 아닌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