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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부모님은 '다시 취직해라' 하신다

부모님은 '다시 취직해라' 하신다

명절이 무섭다 명절 전날 밤이다. 짐 싸면서 한숨 나온다. 부모님 뵈러 가는데 무겁다. 선물 챙기고, 마음은 안 챙겨진다. 전화 왔다. 어머니다. "창업아, 내일 몇 시에 와?" "11시쯤요." "그래, 조심히 와. 근데... 아버지가 할 말씀 있으신대." 끊었다. 뭔지 안다. 또 그 얘기다. 지난 추석 때도 그랬다. 설날에도 그랬다. 이번에도 피할 수 없다. '사업 접고 다시 취직해라.'네이버를 왜 나왔냐고 5년 다녔다. 네이버 PM. 연봉 8천만원. 스톡옵션 있었다. 복지 좋았다. 부모님 자랑이었다. 그만뒀다. 3년 전이다. 부모님은 이해 못 하신다. 지금도. "네이버면 평생 다녀도 되는 곳인데." "그걸 왜 차버려?" "지금 뭐 하는 건데, 그게 네이버보다 나아?" 대답 못 한다. 현재 월급? 0원이다. 투자금으로 버틴다. 통장 잔고? 개인 돈 2300만원 남았다. 숫자로 보면 부모님 말씀이 맞다. 아버지는 평생 공무원이셨다. 안정이 최고였다. 어머니는 은행원이셨다. 정년까지 다녔다. 그분들 눈에 내 선택은 미친 짓이다. "요즘 경기가 어떤데 창업을 해." "망하면 어쩌려고." "애는 벌써 셋째인데." 틀린 말씀 아니다. 전부 맞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투자금은 남의 돈이라고 추석날이다. 친척들 모였다. "창업이 잘 돼?" "요즘 벌이는 어때?" "투자는 많이 받았어?" 시드 3억 받았다고 했다. 다들 놀란다. "와, 3억!" "돈 많이 벌겠네!" 아니다. 착각이다.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돈 네 돈 아니잖아." "남의 돈으로 사업하는 건데." "못 갚으면 어쩔 거야." 맞다. 투자금은 빚이다. 갚아야 한다. 수익으로. 현재 월매출 1200만원이다. 8개월 전 500만원이었다. 성장한다. 근데 느리다. 런웨이 8개월 남았다. 프리A 못 받으면? 끝이다. 직원 8명 월급, 사무실 임대료, 서버비, 마케팅비. 한 달에 4000만원 나간다. 이 숫자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그만둬, 당장." 확실하다.실패 사례를 보내주신다 카톡이 온다. 어머니다. 기사 링크다. "스타트업 폐업률 90%... 창업 5년 내 대부분 문 닫아" 또 온다. "청년 창업 실패자 5년간 3배 증가" 또 온다. "빚더미 앉은 전 창업자의 고백" 받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어머니는 걱정하신다. 진심으로. 아들이 실패할까봐. 빚더미에 앉을까봐. 가족이 힘들어질까봐. 사랑이다. 안다. 근데 무겁다. 전화 온다. "창업아, 기사 봤어?" "네." "이런 거 보면 엄마는 무섭더라."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잖아." 대답 못 했다. 사실 나도 무섭다. 밤마다 검색한다. '스타트업 실패 사례', 'B2B SaaS 망한 이유', '시드 투자 후 폐업'. 읽는다. 전부. 새벽 2시까지. 우리랑 비슷한 케이스 많다. 다 망했다. 나도 저렇게 될까? 모른다. "취직하면 바로 팀장이잖아" 아버지 친구분이 인사팀장이시다. 큰 기업이다. "경력 5년이면 바로 팀장으로 들어올 수 있어." "연봉도 창업 때보다 안정적이고." "한번 생각해봐." 제안 받았다. 3개월 전이다. 아버지가 연락처 주셨다. "한번 만나보기만 해라." 안 만났다. "왜 안 만나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사업 접고 다시 가면 돼." 피봇이 아니라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이해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36살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력서 내면 연락 온다. PM 경력 있다. 레퍼런스 괜찮다. 월급 700만원, 스톡옵션, 4대보험, 퇴직금. 안정이다. 근데 못 한다. 왜? 모르겠다. 그냥 못 한다. 이미 시작했다. 직원 8명이 나를 믿는다. 투자자가 기대한다. 고객사 12곳이 우리 솔루션 쓴다. 여기서 그만두면? 전부 버리는 거다. 그럴 수 없다. 아내가 버티는 이유 아내는 아직 다닌다. 대기업 마케터다. 연봉 6500만원이다. 우리 집은 아내 월급으로 산다. 대출 이자, 생활비, 딸 어린이집비. 미안하다. 매일. "미안해." "뭐가?" "내가 벌어와야 하는데." "괜찮아. 나 아직 다니잖아." 아내는 불평 안 한다. 신기하다. 시댁에서는 압박한다. "사위가 언제까지 그럴 거야?" "애도 있는데 좀 안정적으로 살아야지." 아내가 막는다. 매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잘 될 거예요." 고맙다. 진짜. 근데 불안하다. 아내가 언제까지 버틸까? 지치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힘들어하면? 새벽에 이런 생각 한다. '차라리 취직할까?' 아침이 오면 지운다. 출근한다. 일한다. 반복이다. 성공하면 이해하실까 가끔 상상한다. 프리A 받았다. 10억이다. 밸류 50억 찍었다. 언론에 났다. "주목받는 B2B SaaS 스타트업" 부모님께 기사 보여드린다. "아빠, 봤어요?" "그래... 잘됐구나." 인정받는다. 처음으로. "네이버 그만둔 거 잘했네." "네 선택이 맞았어." 상상이다. 아직. 현실은 다르다. 런웨이 8개월이다. VC 미팅 5개 남았다. 다 거절당하면? 끝이다. 투자 못 받으면 정리한다. 직원들 보내고, 사무실 빼고, 부모님께 말씀드린다. "아빠 말이 맞았어요. 다시 취직할게요."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확률? 40%쯤 된다. 무겁다. 명절 다음날 월요일 출근했다. 성수동 사무실이다. 팀원들이 묻는다. "대표님, 연휴 잘 보내셨어요?" "응, 잘 쉬었어." 거짓말이다. 하나도 안 쉬었다. 부모님이랑 대화하고, 친척들 질문 받고, 아내 눈치 보고, 새벽에 현금흐름표 봤다. 근데 팀원들 앞에서는 밝게 웃는다. "오늘 회의 2시지? 준비됐어?" "네!" 회의 시작한다. 이번 주 스프린트 계획이다. 기능 하나 더 붙인다. 고객사 요청이다. 개발 일정 2주 걸린다. "할 수 있어?" "해보겠습니다." 팀원들은 모른다. 내 통장에 2300만원밖에 안 남았다는 거. 부모님이 '그만둬라' 하신다는 거. 알려줄 수 없다. 대표니까. 회의 끝났다. 혼자 남았다. 핸드폰 본다. 어머니한테 문자 왔다. "창업아, 건강 챙겨. 너무 무리하지 말고." 눈물 날 뻔했다.부모님은 틀리지 않으셨다. 나도 확신 없다. 그냥 하는 거다.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