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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나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나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나 조직도를 볼 때마다 조직도 파일을 열었다.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맨 위에 나. CEO 박창업. 근데 내 밑에 괄호가 있다. (기술 고문 겸임) (영업 총괄 겸임) (재무 담당 겸임) 투자자한테 보여줄 때는 이 괄호를 지운다. "8명의 탄탄한 조직"이라고 말한다. 혼자 있을 땐 괄호를 다시 넣는다. 현실이니까.월요일 아침 9시 팀원들이 출근한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나는 이미 두 시간 전부터 있었다. 주말 동안 밀린 개발팀 이슈 확인했다. 깃헙 PR 10개, 코멘트 달았다. 9시 30분, 위클리 미팅. 개발팀장 민수가 보고한다. "API 연동 일정이 3일 밀렸습니다." 고개 끄덕였다. "괜찮아, 어떤 부분이 막혔어?" 기술적인 얘기가 10분. 나도 전 개발자니까 이해한다. 아니, 이해해야 한다. "그럼 내가 그 부분 코드 한번 봐볼게. 오늘 중으로 방향 잡자." 민수 표정이 밝아진다. "감사합니다!" CEO가 기술 고문도 하는 회사. 8명 스타트업의 현실이다.화요일 오후 2시 영업팀 지호가 노크한다. "대표님, 잠깐 시간 되세요?" 회의실로 갔다. "○○기업 미팅 어땠어?" "관심은 있는데, 기술 검증을 원합니다." 알았다는 표정 지었다. "언제?" "이번 주 금요일요." 캘린더 확인했다. VC 미팅 2개, 개발 스프린트 리뷰, 급여 이체. "내가 갈게." 지호가 미안한 표정이다. "제가 같이..." "너는 다음 주 ○○ 미팅 준비해. 그게 더 중요해." 영업 2명인데 둘 다 주니어다. 시니어 뽑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큰 딜은 내가 직접 나간다. CEO가 영업 총괄도 하는 회사. 런웨이 8개월의 현실이다. 수요일 밤 10시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다. 노트북 두 개 켰다. 왼쪽: 엑셀. 현금흐름표. 오른쪽: 슬랙. 개발팀 채널. 현금흐름표 먼저 봤다. 이번 달 매출 1200만원. 지출 5800만원. 급여 3600만원. 사무실 180만원. AWS 220만원. 기타 1800만원. 마이너스 4600만원. 통장 잔고 3억 6800만원. 8개월. 정확히는 7.9개월. 계산기 두드렸다. 시나리오 3개. 보수: 매출 월 5% 성장 → 6개월 후 투자 필요 중립: 매출 월 15% 성장 → 5개월 후 투자 필요 낙관: 매출 월 30% 성장 → 그래도 4개월 후 투자 필요 어떻게 해도 투자 받아야 한다.목요일 오전 11시 회계사한테 전화 왔다. "대표님, 부가세 신고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메일 열었다. 첨부파일 5개. 30분 걸렸다. 매입 매출 확인하고. 계정 분류 체크하고. 승인 버튼 눌렀다. CFO 없다. 경리 직원도 없다. 세무사가 정리는 해주지만.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CEO가 재무 담당도 하는 회사. 시드 스테이지의 현실이다. 점심시간. 팀원들이랑 같이 나갔다. 성수동 파스타 집. 다들 편하게 얘기한다. "주말에 영화 봤는데요." "요즘 이 게임 재밌어요." 나도 웃으면서 듣는다. 근데 머릿속은 다르다. '금요일 미팅 자료 준비했나?' 'API 이슈 해결 방법 찾았나?' '다음 주 VC 미팅 시나리오는?' "대표님, 괜찮으세요?" 디자이너 수진이 물었다. "응? 아, 괜찮아. 파스타 맛있다." 다시 웃었다. 팀원들 앞에서는 불안한 티 내면 안 된다. 리더의 불안은 전염된다. 그래서 밥 먹을 때만큼은. 진짜로 편한 척한다. 금요일 오후 4시 ○○기업 미팅. 강남역 근처 그들의 사무실. 상무님, 팀장님, 담당자 3명. 우리 쪽은 나 혼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30분 발표했다. 제품 데모 보여주고. 기술 스택 설명하고. ROI 계산해서 보여주고. 질문 20개 받았다. 기술 질문 10개. 영업 질문 10개. 다 답했다. CEO니까. 기술 고문이니까. 영업 총괄이니까.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익숙한 멘트다. 악수하고 나왔다. 지하철 탔다. 성수역 도착. 사무실 가는 길. 편의점 들렀다. 커피 하나 샀다. 오늘 여섯 번째다. 금요일 밤 11시 급여 이체했다. 8명. 총 3600만원. 한 명씩 확인하면서 이체했다. 민수, 지호, 수진, 영희, 태양, 준석, 미래, 현우. 통장 잔고 3억 3200만원. 다음 달 급여일까지 30일. 그 사이에 매출 1200만원 더 들어온다. 지출은 2200만원 나간다. 다음 달 이맘때쯤엔 3억 2200만원. 계산이 자동으로 된다. 매일 보는 숫자니까. 슬랙 열었다. 개발팀 채널. "다들 수고했어요. 주말 푹 쉬세요!" 단톡방에도 썼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주에 봬요!" 팀원들 답장 왔다. "대표님도 쉬세요!" "주말 잘 보내세요~" 노트북 덮었다. 가방 챙겼다. 불 끄고 나왔다. 택시 탔다. 집까지 15분. 창 밖을 봤다. 금요일 밤 성수동. 불 켜진 사무실들. 저 안에도 나 같은 사람 있겠지. 토요일 오전 10시 딸이 깼다. "아빠!" 안아줬다. "우리 공주 잘 잤어?" 아내가 부엌에서 나왔다. "어제도 늦었어?" "응. 급여 이체하고." 더 이상 안 물었다. 아내도 안다. 매달 똑같으니까. "오늘은 같이 있어줄 수 있어?" "오전까진 괜찮아. 오후에 IR 자료 좀..." 아내 표정이 굳었다. "미안. 다음 주엔 꼭..." "됐어. 알아서 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딸이 내 얼굴 봤다. "아빠, 놀아줘!" "그래, 놀자. 뭐 하고 싶어?" "공원!" "좋아, 공원 가자." 노트북은 가방에 넣었다. 공원 벤치에서 열 수도 있으니까. 일요일 새벽 2시 잠이 안 왔다. 노트북 열었다. VC 미팅 자료. 50번째 수정. 슬라이드 15장.문제 정의 솔루션 시장 규모 비즈니스 모델 트랙션 팀 소개 재무 계획 투자 제안팀 소개 페이지에서 멈췄다.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CEO. "전 네이버 출신 대표, 5년간 PM 경험" "시니어 개발자 4명으로 구성된 탄탄한 기술팀" "B2B 영업 경험자로 구성된 영업조직" 거짓말은 아니다. 과장도 아니다. 그냥 괄호를 뺀 것뿐이다. (CEO 겸 기술 고문) (CEO 겸 영업 총괄) (CEO 겸 재무 담당) 이 괄호들. VC들이 알까? 8명 스타트업의 CEO가. 얼마나 많은 걸 혼자 하는지. 아니, 알 것이다. 그들도 다 겪었을 테니까. 그래도 IR 자료엔 안 쓴다. "우리는 약합니다" 같은 소리니까. "우리는 효율적입니다"라고 쓴다.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들린다. 월요일 아침 7시 출근했다. 아직 아무도 없다. 커피 내렸다. 첫 잔. 깃헙 열었다. 주말 동안 올라온 이슈 3개. 하나씩 봤다. 코멘트 달았다. 해결 방향 제시했다. 슬랙 열었다. 영업팀 채널. 지난주 미팅 결과 정리했다. 다음 주 목표 썼다. 액션 아이템 배분했다. 엑셀 열었다. 현금흐름표. 이번 주 예상 입금 800만원. 예상 출금 1200만원. 마이너스 400만원. 잔고 3억 2200만원에서. 3억 1800만원 될 예정. 7.8개월. 시계 봤다. 7시 50분. 팀원들 오기 10분 전. 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36세. 눈 밑에 다크서클. 흰머리 몇 개 보인다. 웃어봤다. 연습. "좋은 아침!" 자연스럽다. 다시 자리로 왔다. 9시까지 10분 남았다. 그 10분 동안. 재무 계획 시나리오 하나 더 만들었다. 비관: 매출 정체, 직원 1명 감축 고려 → 9개월 버팀 만들고 나서 지웠다. 팀원들이 볼까봐. 8시 58분. 민수가 들어왔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웃으면서 말했다. 자연스럽게.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그리고 CEO 겸 기술 고문 겸 영업 총괄 겸 재무 담당인 나. 괄호는 IR 자료에 안 쓴다. 현실엔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