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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

경쟁사 뉴스레터를 보는 시간

경쟁사 뉴스레터를 보는 시간

새벽 4시 15분 잠이 안 와서 노트북을 열었다. 슬랙에 아직 안 읽은 메시지 47개. 메일함에 미팅 요청 3건. 그리고 뉴스레터 하나. "○○테크, 시리즈A 120억 투자 유치" 심장이 멈췄다.정확히는 3초간 숨을 못 쉬었다. 화면을 다시 봤다. 120억. 시리즈A. 리드 투자자가 저기네. 우리가 3번 거절당한 그 VC. 마우스 커서가 떨렸다. 기사를 클릭했다. "월 매출 3000만원 돌파, 전년 대비 400% 성장" "기업 고객 80곳 확보" "시장 점유율 1위 목표" 우리 월 매출은 1200만원이다. 기업 고객은 23곳. 시드 투자 3억 받은 게 1년 반 전이다. 새벽 4시에 이걸 보고 있다. 스크롤을 내렸다 대표 인터뷰가 나왔다. 사진도 있다. 밝게 웃고 있다. 팀원들이랑 같이 찍은 단체 사진. 다들 행복해 보인다. 사무실은 강남 어딘가. 창문이 크다. "시장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고객들이 먼저 찾아오는 단계죠." 읽으면서 욕이 나왔다. 우리는 영업팀 2명이 발로 뛴다. 한 곳 계약하는 데 평균 3개월. 데모 10번 하면 1곳 계약. 그것도 소액 플랜. 핸드폰을 내려놨다. 다시 들었다. 기사를 캡처했다. 슬랙 '경영진' 채널에 올릴까 말까 고민했다. 올리지 않았다. 대신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비교하기 시작했다 우리 MRR: 1200만원 저기 MRR: 3000만원 우리 성장률: 월평균 8% 저기 성장률: 전년 대비 400% 우리 투자금: 3억 (1년 6개월 전) 저기 투자금: 120억 (지금) 런웨이 계산을 다시 했다. 현금 2억 4000만원 남음. 월 번레이트 3200만원. 7.5개월 남음. 7.5개월 안에 시리즈A를 따내든지. 아니면 망하든지. 저기는 120억으로 2년은 버틴다. 마케팅 돌리고 개발자 더 뽑고 영업 조직 키우고. 그러면 시장 점유율은 더 벌어진다. 우리는 7.5개월. 키보드에 이마를 박았다. 5시 30분 커피를 내렸다. 다섯 번째다. 위가 쓰리다. 약 먹어야 하는데 귀찮다. 기사를 다시 읽었다. 댓글도 봤다. "축하합니다!" "대단하시네요" "부럽습니다 ㅠㅠ" 링크드인도 확인했다. 저기 대표 포스팅. 좋아요 430개. 댓글 68개. 다들 축하한다고 난리다. 우리가 시드 받았을 때는 좋아요 12개였다. 핸드폰을 뒤집었다.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깜빡인다. 바꿔야 하는데 계속 미뤘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저 회사는 뭐가 달랐을까. 우리 제품이 나쁜 건가. 세일즈를 못 한 건가. IR을 못 한 건가. 타이밍이 나빴나. 운이 없는 건가. 아니면 내가 부족한 건가.출근 시간 7시가 됐다. 첫 출근은 보통 개발팀 막내다. 7시 40분쯤 온다. 화장실 가서 세수했다. 거울을 봤다. 눈 밑이 까맣다. 36살 얼굴이 아니다. '괜찮은 척'을 준비했다. 슬랙에 들어갔다. 저녁에 올라온 개발 진행 상황 확인. 댓글 달았다. "고생했어요 👍" 이모티콘까지. 메일 3통 답장 썼다. IR 자료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43페이지 중 6페이지 숫자 수정. 경쟁사 분석 문서를 만들었다. 저기 강점: 자금력, 팀 규모, 마케팅 예산 우리 강점: 제품 완성도, 고객 만족도, 운영 효율 거짓말은 아니다. 우리 NPS 점수가 더 높다. 78점. 저기는 65점. 고객들은 우리 제품을 좋아한다. 문제는 고객 수가 23곳이란 거다. 7시 50분. 문 여는 소리. "대표님 벌써 오셨어요?" 웃었다. "응, 일찍 일어나서." "커피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너 먼저 마셔." 모니터를 닫았다. 경쟁사 뉴스는 안 보이게. 아침 스탠드업 9시 30분. 전체 회의. 다들 모였다. 8명. 개발 4명 기획 1명 디자인 1명 영업 2명. 평균 나이 29살. 다들 열심히 한다. 월급은 시장 평균의 70%. 스톡옵션으로 메꿨다. "이번 주 목표 공유할게요." 개발팀: 대시보드 개편 80% 완료 영업팀: 신규 미팅 6건 잡음 기획팀: 사용자 인터뷰 3건 진행 다들 잘하고 있다. 진짜로. "수고하고 있어요. 이번 주도 화이팅!" 회의 끝. 다들 흩어졌다. 영업팀 리드가 다가왔다. "대표님, ○○테크 투자 소식 보셨어요?" 심장이 또 떨렸다. 티 안 냈다. "응, 봤어." "우리도... 괜찮을까요?" 3초 멈췄다. "우리는 우리 길 가는 거야. 제품이 더 좋잖아. 고객들 반응 봐. 다들 만족한다고 하잖아." "그렇긴 한데... 저기가 마케팅 돌리기 시작하면..." "그래서 우리가 더 빨리 움직여야지. 프리A 준비 잘하고 있어. 다음 주에 VC 2곳 더 만나." "알겠습니다." 돌아갔다. 표정이 조금 풀렸다. 나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한숨 쉬었다. 3초만 쉬고 나왔다. 오후 2시 점심 먹고 카페에 나왔다. 혼자. 노트북 열었다. 경쟁사 웹사이트 들어갔다. 하나하나 클릭해봤다. UI는 우리가 낫다. 기능은 비슷하다. 가격은 저기가 20% 비싸다. 그런데도 고객이 3배 많다. 이유를 생각했다. 브랜딩인가. 마케팅인가. 영업력인가. 네트워크인가. 아니면 투자금의 차이인가. VC 미팅 때마다 듣는다. "트랙션이 더 필요합니다." 트랙션 만들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 뽑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 받으려면 트랙션이 필요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저기는 120억으로 그 고리를 끊었다. 우리는 7.5개월 안에 끊어야 한다. 핸드폰이 울렸다. VC 파트너. "대표님, 다음 주 화요일 미팅 가능하세요?" "네, 가능합니다." "IR 자료 미리 보내주시면 검토하고 만나죠."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끊었다. 43페이지 IR 덱을 열었다. 다시 봤다. "시장 규모 5조원" 맞다. "월 MRR 성장 8%" 맞다. "고객 만족도 78점" 맞다. 그런데 옆 슬라이드에 경쟁사 현황 넣어야 하나. "경쟁사 ○○테크, 시리즈A 120억 유치" 넣으면 솔직한 거다. 안 넣으면 숨기는 거다. 고민했다. 넣었다. 그 밑에 한 줄 더. "차별점: 제품 완성도 및 고객 밀착 운영 모델" 저장했다. PDF로 내보냈다. 메일 보냈다. 노트북을 닫았다. 커피를 다 마셨다. 식었다. 퇴근길 밤 11시. 사무실을 나왔다. 지하철에 앉았다. 핸드폰 열었다. 링크드인 알림 17개. 다 저 회사 관련이다. 업계 사람들이 공유하고 댓글 달고 난리다. "게임 체인저" "시장 판도가 바뀔 듯" "이제 진짜 시작이네요" 핸드폰을 껐다. 창밖을 봤다. 지하철은 어둠 속을 달린다. 집에 도착했다. 12시. 아내는 자고 있다. 딸도 자고 있다. 조용히 씻었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 할 일을 생각했다. VC 미팅 준비. 제품 로드맵 점검. 영업 파이프라인 확인. 개발 일정 체크. 그리고 프리A 마감. 7.5개월. 눈을 감았다. 저기는 120억으로 2년을 달린다. 우리는 2억 4000만원으로 7.5개월. 그런데 포기는 안 한다. 아직은.새벽엔 패배자가 됐다가, 아침엔 대표가 된다.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