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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 미팅 20개, 거절 10개, 보류 10개, 진행 중 5개의 수학

VC 미팅 20개, 거절 10개, 보류 10개, 진행 중 5개의 수학

월요일, 11번째 미팅 VC 미팅이 11시였다. 강남역 근처 카페. 2층 구석 자리. IR 덱은 어젯밤에 또 고쳤다. 51번째 버전. 트랙션 슬라이드에 지난달 MRR 그래프 추가했다. 상승 각도가 좀 더 가파르게 보이게. "안녕하세요, 박창업 대표입니다." 악수. 명함 교환. 커피 주문. 30분 발표, 20분 질의응답. "고객사 리텐션은 어떻게 되나요?" "경쟁사 대비 차별점이 뭔가요?" "런웨이는 얼마나 남았죠?" 대답했다. 준비한 대로. "네, 좋습니다. 내부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안다. 90%는 거절이다. 카페 나왔다. 1시 20분.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 3시에 또 미팅.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 샀다.엑셀 파일, 20줄 사무실 돌아와서 엑셀 켰다. 파일명: "투자유치_진행현황_2024.xlsx" 20개 행. 각각 VC 이름.A열: VC명 B열: 미팅일 C열: 상태 D열: 후속 액션 E열: 메모C열을 본다. "거절" 10개. "검토중" 10개. "2차 미팅" 3개. "DD 진행" 2개. 계산했다. 성공률 25%. 아니다. DD 진행도 떨어질 수 있다. 실제 성공률은 10%일 수도. F2 셀에 커서 놨다가 지웠다. 숫자로 계산하면 더 우울해진다. 거절 메일의 패턴 "검토 결과, 현 단계에서는 투자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트랙션이 더 나온 후 다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부 투심에서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거절 메일은 대부분 비슷하다. 정중하고, 짧고, 이유는 애매하다. 첫 거절 메일 받았을 때는 3일 동안 멍했다. 다섯 번째는 하루. 열 번째는 한 시간. 이제는 30분. 읽고, 상태 업데이트하고, 다음 메일 쓴다. 적응이라고 해야 하나. 둔감해진 건가. 카페인이 필요하다. 네 번째 커피.보류의 의미 "검토중"이라는 상태가 제일 애매하다. 기대해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2주 지나면 문자 보낸다. "안녕하세요, 박창업입니다. 검토 진행 상황 여쭤봐도 될까요?" 답장은 반반이다. "아직 내부 논의 중입니다." 또는 무응답. 무응답이 답이다. 사실상 거절. 그래도 엑셀에서는 "검토중"으로 남겨둔다. "거절"로 바꾸면 숫자가 너무 적나라해진다. 자기기만인 걸 안다. 그래도 필요하다. 이 정도 완충은. 4주 지나면 그때 바꾼다. "거절"로. 통장 잔고는 매달 줄어든다. 런웨이는 7개월 남았다. 아니다. 다음 달 급여 나가면 6개월. 목요일, 17번째 미팅 여의도였다. 대형 VC. 30층 오피스. 엘리베이터에서 넥타이 매만졌다. IR 발표는 이제 외운다. 51번 했으니까. 이번에는 파트너급이 들어왔다. 좋은 신호인가. 아니면 그냥 루틴인가. "시장 규모는?" "6500만원 MRR이면, CAC는 얼마죠?" "번율은?" 대답했다. 숫자로. 숫자가 약하다는 걸 안다. 나도. 그래도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고객사 인터뷰 결과 보면, NPS는 68입니다." "작년 대비 MRR 성장률 340%입니다." 파트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 2차 미팅 잡겠습니다." 엘리베이터 내려오면서 한숨 쉬었다. 긴장 풀린 거다. 기대감 아니다. 아직 모른다. 2차도 떨어질 수 있다. 편의점 들렀다. 삼각김밥 또 샀다. 저녁 7시인데 이게 첫 끼다.금요일 밤, 혼자 팀원들은 다 퇴근했다. 10시 30분. 나만 남았다. 회의실에서 노트북. 다음 주 미팅 3개 준비해야 한다. 각 VC마다 IR 덱을 조금씩 바꾼다. 이 VC는 B2B 중심이니까 기업 고객 비중 강조. 저 VC는 기술 중심이니까 특허 슬라이드 추가. 52번째, 53번째, 54번째 버전. 창밖을 봤다. 성수동 불빛. 다른 스타트업도 불 켜져 있다. 다들 비슷하겠지. 투자 받으려고 뛰어다니고. 휴대폰 진동. 아내 문자. "저녁 먹었어? 딸이 아빠 보고 싶대." "응, 먹었어. 조금만 더 하고 갈게." 거짓말이다. 아직 안 먹었다. 컵라면 하나 끓였다. 회의실 정수기 물로. 먹으면서 엑셀 또 켰다. 20줄. 10거절, 10보류, 5진행. F2 셀에 커서 놨다. "=COUNTIF(C:C,"진행중")/COUNTA(C:C)" 엔터. "25%" 지웠다. 계산하면 더 힘들다. 그냥 하나씩. 내일 미팅, 모레 미팅. 될 때까지. 토요일 아침, 21번째 준비 주말인데 노트북 켰다. 딸이 옆에서 그림 그린다. "아빠, 뭐 해?" "일." "또?" "응, 또." 미안하다. 말은 안 했다. 월요일에 21번째 미팅이다. 신규 VC. 초기 스타트업 중심. IR 덱 55번째 버전 만든다. 트랙션 슬라이드, 팀 슬라이드, 로드맵 슬라이드. 숫자 체크. 오타 체크. 그래프 각도 체크. 1시간 걸렸다. 저장하고 닫았다. 딸이 그린 그림 봤다. 우리 가족. 아빠가 제일 작게 그려져 있다. "아빠 왜 이렇게 작아?" "아빠가 맨날 안 보여서." 가슴이 뜬다. "미안. 조금만 더 하면 아빠 시간 많아질 거야."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다. 런웨이 6개월. 투자 안 받으면 정리해야 한다. 그럼 시간 많아지겠지. 그게 좋은 건가. 모르겠다. 월요일, 21번째 미팅 또 강남이다. 10시 30분. 30분 발표. 20분 질문. "좋습니다. 2차 미팅 잡겠습니다." 또 이 말. 기쁘지 않다. 익숙하다. 2차도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성공률 25%. 아마 더 낮을 거다. 그래도 간다. 22번째, 23번째, 24번째. 계속 간다. 다른 방법이 없다. 팀원 8명 월급. 사무실 월세. 서버 비용. 멈출 수 없다. 사무실 돌아왔다. 엑셀 켰다. 21번째 줄 추가. 상태: "1차 완료" D열에 썼다. "2차 미팅 대기" 저장. 닫았다. 책상 서랍에 타이레놀 있다. 두 알 먹었다. 물 없이. 수요일, DD 미팅 17번째 미팅했던 VC에서 연락 왔다. "실사 진행하겠습니다." 드디어. 20개 중에 DD까지 온 건 3번째다. 재무제표, 주주명부, 고객 계약서, 코드 리뷰. 다 준비했다. 일주일 걸렸다. 개발팀장이 밤새 코드 정리했다. "대표님, 이거 투자 되는 거죠?" "아직 몰라. DD도 떨어질 수 있어." 사실이다. 작년에 DD 진행하다 떨어진 적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25%보다는 높다. 아마 50%? 계산하지 말자. 또 우울해진다. 그냥 최선을 다하자. 될 때까지. 저녁 9시. 혼자 남았다. DD 자료 마지막 체크. 괜찮다. 빠진 거 없다. 내일 제출. 퇴근했다. 11시 20분. 아내랑 딸은 자고 있다. 조용히 씻고 누웠다. 천장 봤다. 20개 미팅. 10개 거절. 10개 보류. 3개 DD. 숫자가 머릿속에서 돈다. 25%. 50%. 10%. 잠이 안 온다. 휴대폰 켰다. 새벽 2시 47분. 창업 실패 사례 검색하려다가 껐다. 보면 더 불안해진다. 대신 엑셀 켰다. 어두운 화면에 20줄. F2 셀. 지워진 계산식 자리. 커서만 깜빡인다.성공률을 알면서도 계속 미팅을 잡는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