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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Dec, 2025
아침 7시 출근, 밤 11시 퇴근이 기본이 되던 날
아침 7시 출근, 밤 11시 퇴근이 기본이 되던 날 3시 17분 또 눈 떴다. 알람 전에 눈 뜨는 게 1년째다. 슬랙 알림이 먼저 깬 건지, 내가 먼저 깬 건지 모르겠다. 일단 핸드폰 든다. 개발팀에서 밤새 푸시한 커밋 7개. 기획팀장이 올린 기능 명세서. 영업 김대리가 새벽 2시에 올린 고객사 피드백. 다들 언제 자는 거지. 아내가 뒤척인다. 핸드폰 불빛 때문인가. 침대 밖으로 나간다. 거실 소파에 앉는다. 현금흐름표 연다. 8개월. 런웨이 8개월 남았다. MRR 1200만원. 지난달보다 80만원 올랐다. 성장률 7.1%. 나쁘지 않다. 근데 VC들은 최소 15%는 봐야 한다고 했다. 계산기 두드린다. 직원 8명 인건비, 사무실 월세, AWS 비용, 마케팅 비용. 고정비만 월 2800만원. 적자 1600만원. 곱하기 8개월 하면 1억 2800만원. 통장 잔고 1억 5천. 7천만원 남는다. 아니다, 세금 빠지면 실제로는 5천. 5천으로 뭘 하나.7시 03분 성수역 2번 출구. 커피 산다. 아메리카노 톨사이즈. 샷 추가. 5500원. 예전에는 이 돈도 아까웠는데, 이제는 안 마시면 오전을 못 버틴다. 공유오피스 4층. 카드 찍는다. 삐- 제일 먼저 온 건 나다. 불 켠다. 에어컨 온도 24도 맞춘다. 의자에 앉는다. 노트북 켠다. 슬랙 데스크톱 버전 실행. 어제 밤 대화 쭉 읽는다. 개발팀이 API 응답속도 개선했다고 한다. 0.8초에서 0.3초로. 좋다. 디자이너가 새 랜딩페이지 시안 올렸다. 어, 괜찮네. 근데 CTA 버튼 색이 좀... 영업팀이 미팅 잡았다. 수요일 오후 2시, 여의도. 직원 500명 규모 제조사. 좋아. 답장 단다. "수고했어요", "좋은데 CTA는 논의 필요", "미팅 전 자료 준비 부탁". 시계 본다. 7시 41분. 팀원들 출근까지 1시간 19분 남았다. IR 덱 연다. 46페이지. VC한테 "시장 규모 근거 부족하다"는 피드백 받았다. TAM, SAM, SOM 다시 계산한다. 국내 중소기업 수 680만개. 우리 타겟은 직원 50~500명 기업. 약 18만개. 솔루션 도입률 12%. 객단가 연 480만원. 시장 규모 1조 384억. 엑셀에 수식 입력한다. 출처 링크 단다. 슬라이드 수정한다. 커피 한 모금. 식었다.9시 12분 팀원들 출근했다. "대표님 일찍 오셨네요." "응, 좀 일찍 왔어." 매일 듣는 말. 매일 하는 대답. 회의실 예약한다. 오전 스탠드업. 9시 30분. 개발팀 진호, 서연, 민재, 준석. 기획팀 혜진. 디자인팀 유나. 영업팀 대리 김성훈, 박지영. 8명 전부 모인다. "어제 고생 많았어요. 다들 일찍 퇴근했어요?" 아무도 대답 안 한다. 웃음만 나온다. "오늘 할 일 공유하죠." 진호가 말한다. "결제 모듈 API 연동 마무리할게요. 오늘 중으로요." 서연이 말한다. "대시보드 차트 렌더링 최적화 들어갑니다." 민재가 말한다. "QA 이슈 7건 픽스했고, 배포는 내일 새벽 예정입니다." 새벽 배포. 또 밤샌다는 거다. "고생이 많아요. 근데 꼭 새벽이어야 해요?" "서비스 다운타임 최소화하려면요." 맞는 말이다. 할 말 없다. 혜진이 말한다. "고객사 피드백 정리해서 오후에 공유드릴게요." 유나가 말한다. "랜딩페이지 시안, CTA 색상 3가지 안 준비했어요." 성훈이 말한다. "수요일 미팅 자료 오늘 완성합니다." 지영이 말한다. "신규 리드 12건 확보했어요. 콜드메일 응답률 8.3%예요." 다들 잘한다. 진짜 잘한다. 근데 다들 피곤해 보인다. "수고해요. 점심은 같이 먹어요." 회의 끝.1시 18분 점심 먹었다. 회사 근처 김치찌개집. 1인분 9000원. 9명이면 8만 1천원. 회사 카드 긁는다. 이 돈도 고정비다. 한 달이면 243만원. 연간 2916만원. 계산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계산한다. 팀원들은 밥 먹으면서 농담한다. 웃는다. 그때만큼은 가볍다. 나도 웃는다. 같이 웃어야 한다. 대표가 무거우면 팀도 무거워진다. "지영씨 콜드메일 응답률 진짜 높네요. 어떻게 한 거예요?" "제목에 고객사 pain point를 구체적으로 넣었어요. '업무 자동화'보다 '엑셀 작업 시간 70% 단축' 이렇게요." "오, 좋은데요. 이거 다른 메일에도 적용해봐요." 이런 대화. 편하다. 회사 얘기 아닌 얘기도 한다. 준석이가 말한다. "주말에 부모님 만나러 가요. 명절 아닌데도 뭐라 안 하시려나." 민재가 말한다. "형,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는데요?" "사업 접고 대기업 가래요." 다들 웃는다. 나도 웃는다. 근데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부모님 말이 틀리진 않다. 6시 47분 저녁 먹을 시간 없다. VC 화상 미팅 7시. 20분 전에 자료 최종 점검한다. 회의실 들어간다. 노트북 연결한다. 줌 링크 클릭한다. 7시 정각. 상대방 입장. "안녕하세요. 박창업 대표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자료 잘 봤습니다." 30분 발표. 15분 질의응답. "시장 규모는 이해했는데요, 경쟁사 대비 차별점이 명확하지 않네요." "저희는 UI/UX에 집중했습니다. 비개발자도 5분 안에 자동화 워크플로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근데 경쟁사도 노코드 표방하잖아요?"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학습곡선이 훨씬 낮습니다. 고객사 온보딩 시간이 경쟁사 대비 40% 짧습니다." "데이터가 있나요?" "네, 고객사 10곳 평균 온보딩 시간 측정했습니다. 자료 공유드리겠습니다." 질문이 계속된다. 대답한다. 또 질문. 또 대답. 45분 지났다. "네, 일단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검토해보겠다. 이 말이 제일 무섭다. 됐다는 건지, 안 됐다는 건지 모른다.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회의 종료. 혼자 남았다. 한숨 나온다. 9시 33분 아직 일한다. 회의실에서 나왔다. 자리로 돌아왔다. 팀원들 반 이상 남았다. 진호, 민재, 준석은 헤드폰 끼고 코딩한다. 혜진은 Figma 켜놓고 화면 설계한다. 다들 집중한다. 나도 일한다. IR 덱 수정한다. 경쟁사 비교 슬라이드 추가한다. 차별점 3가지 명확하게 정리한다.학습곡선 40% 단축 온보딩 시간 평균 2.3일 고객 이탈률 4.2% (업계 평균 12%)숫자로 말해야 한다. 감으로 설득 안 된다. 슬랙에 메시지 온다. 성수 투자사 김 이사. "대표님, 다음 주 화요일 오전 미팅 가능하신가요?" 답장 바로 보낸다. "네, 가능합니다. 시간 알려주세요." 3초 만에 답장 온다. "10시 저희 사무실로 오시죠." "네, 감사합니다." 미팅 하나 더 잡혔다. 21번째 IR 미팅. 20번 중에 5번 거절당했다. 10번은 "검토하겠다". 5번은 아직 진행 중. 확률 계산하면 안 되는데 자꾸 계산한다. 25% 거절. 50% 보류. 25% 진행. 진행 중인 5곳 중에 1곳만 투자해도 된다. 일단 해보자. 11시 09분 퇴근 준비한다. 노트북 덮는다. 가방에 넣는다. 자리 정리한다. "다들 수고했어요. 먼저 들어갑니다." 진호가 말한다. "대표님도 수고하셨어요." 민재가 말한다. "내일 봬요." 헤드폰 낀 채로 손만 흔든다. 엘리베이터 탄다. 1층 내려간다. 밖으로 나간다. 11시 15분. 성수동 밤거리. 사람 많다. 카페, 술집, 편의점. 다들 웃는다. 나도 웃어야 하는데 피곤하다. 지하철 탄다. 2호선. 집까지 40분. 앉는다. 핸드폰 꺼낸다. 슬랙 본다. 민재가 커밋 푸시했다. 11시 22분. 진호가 이슈 코멘트 달았다. 11시 28분. 다들 언제 집에 가나. 나도 언제 집에 가나. 집 도착. 12시 03분. 현관문 연다. 조용하다. 불 다 꺼져 있다. 아내랑 딸 자고 있다. 씻는다. 침대에 눕는다. 아내가 뒤척인다. "왔어?" "응, 자." "오늘도 늦었네." "미안." "괜찮아. 자." 괜찮지 않다는 거 안다. 근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 감는다. 내일 또 7시 출근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3시 41분 또 눈 떴다. 알람까지 3시간 19분 남았다. 핸드폰 든다. 슬랙 본다. 준석이 배포 완료했다. 새벽 3시 12분. "배포 완료. 이슈 없음. 퇴근합니다." 3시에 배포하고 3시 12분에 퇴근. 12분 만에 검증하고 간 거다.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근데 뭐라 할 수 없다. 나도 똑같이 했으니까. 런웨이 계산기 연다. 습관이다. 8개월. 여전히 8개월. 시나리오 3개 돌린다. 보수: MRR 월 5% 성장, 8개월 후 잔고 2300만원 중립: MRR 월 10% 성장, 8개월 후 잔고 5800만원 낙관: MRR 월 15% 성장, 8개월 후 잔고 9200만원 셋 다 추가 투자 없으면 죽는다. 투자 받아야 한다. 무조건. 21번째 IR, 22번째 IR, 30번까지 가도 된다. 한 곳만 투자하면 된다. 될 거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아내가 뒤척인다. 나도 눈 감아야 한다. 근데 잠이 안 온다. 7시에 출근해야 한다. 11시에 퇴근할 거다.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언제까지 이럴까. 투자 받으면 나아질까. 시리즈 A 받으면 편해질까. 거짓말이다. 더 바빠진다는 거 안다. 근데 멈출 수 없다. 이미 8명이 나를 믿고 있다. 8개 가정이 이 회사에 달려 있다. 런웨이 8개월. 버텨야 한다. 일단 해보자.새벽 3시, 런웨이 계산하다가 또 눈 떴다. 내일도 7시 출근이다.